김광재 칼럼니스트
코로나19 대유행 초기에 '아프리카 오지의 나라, 차드의 아름다운 문인 무스타파 달렙의 글'이 SNS를 통해 확산된 적이 있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서방 강국들이, 기업들이, 시위대와 조합들이 못 해내던 휴전, 가격 인하, 사회보장 강화 등을 성취해냈으며, 사람들이 연대의 가치를 이해하게 만들고 휴머니즘을 일깨워 주었다는 내용이다. 일상이 붕괴되는 낯선 현실 속에서 불안과 혼란을 겪던 사람들은 그 글이 전하는 긍정의 메시지에서 위안을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선뜻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외출할 수 없는 주인들 때문에 차고 안에서 최고급 차들이 잠자고 있으며, 그런 식으로 단 며칠 만에 세상에는 사회적 평등(이전에는 실현 불가능해 보였던)이 이루어졌다'는 구절이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20여 년 전 이른바 'IMF 사태'를 겪은 나라의 국민으로서 가진 의구심이다. 그때 최고급 차를 몰고 한산한 거리를 질주하던 사람들이 '이제 운전할 맛이 난다'고 했다는 풍문이 떠돌기도 했었다. 다수는 몰락하고 소수는 큰 이득을 챙기는 현실에 대한 자조 어린 말이었겠지만, 어쨌든 IMF 사태 이후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
자연재해나 팬데믹의 발생은 평등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과 남겨진 결과는 평등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경험칙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과정에서 낮은 쪽이 높은 쪽을 걱정하고, 없는 쪽에서 덜어내 있는 쪽에 보태주는 것을 정의로운 일로 여기기까지 한다는 사실이다.
요즘 미국의 상황도 흥미롭다. 코로나19에 감염돼도 최선의 의료 서비스를 받으며 사흘 만에 회복하고 엉덩이춤을 추는 지도자를, 감염되면 병원에도 가보지 못할 국민들이 열광적으로 지지한다. 죽어가면서도 대통령이 주장하는 코로나19 음모론을 믿고, 대선 이후 한 달 만에 2억달러의 정치자금을 모아준다. 이것이 21세기의 병리적 현상인지, 아니면 늘 그런 식이었으나 최근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2천500년 전 동아시아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노자(老子)가 썼다고 전해지는 도덕경 77장에 이런 말이 있다. "하늘의 도는 마치 활을 당기는 것과 같다. 높은 쪽은 아래로 누르고 낮은 쪽은 위로 올려준다. 남는 쪽은 덜어내고 모자란 쪽은 보태준다. 하늘의 도는 남는 쪽을 덜어내 모자란 쪽을 보태주지만 사람의 도는 그렇지 않다. 모자란 쪽을 덜어내어 남는 쪽을 봉양한다."
하늘의 도, 즉 자연이 평등을 추구한다는 뜻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그것은 사람의 관점에서 하는 말이다. 노자가 하늘의 도와 사람의 도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그렇게 말한 것이고, 정확하게는 자연의 도는 무차별적이라는 정도로 해석하면 충분하겠다. 인간 사회는 차별과 불평등을 심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노자는 말을 이어간다. "누가 남는 쪽의 것으로 세상을 봉양할 수 있겠는가, 오직 도가 있는 자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는 남는 쪽의 것을 덜어내어 부족한 쪽에 보태주는 것은 기대하지도 않는다. 다만 부족한 쪽에서 더 덜어가지 않는 것만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말한다. 인간은 결국 코로나19를 이겨낼 것이다. 어려움을 겪는 중에 들려오는 희망과 긍정의 말은 위로가 되지만, 미래 삶의 모습까지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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