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한 해의 끝자락에 섰다. 왠지 답답하고 음울하다. 문 닫은 식당, 불 꺼진 공장, 노래 소리 끊긴 노래방, 웃음소리 사라진 교실, 담화 없는 식사 시간, 일자리 없는 청춘, 여행객을 잃은 관광지, 갈 곳 없는 비행기… 너도 섰고, 나도 섰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코로나19 확진자. 세금은 오르고, 비대면은 늘어가고… 자영업자들은 대책 없이 한숨만 나온다. 빈부격차는 더 벌어졌다.
정부는 코로나19 K방역에 몰입하다 백신 접종엔 소홀했다.
검찰총장 징계, 공수처 출범에 골몰하다 민생은 등한시했다. 누군가가 불렀던 죽창(竹槍)가가 이때 따끈따끈한 죽 한 그릇 베풀 죽창(粥倉: 죽의 곳간)가로 들렸으면 좋으련만, 허사다. 힘 빠지는 뉴스는 '고요한 밤… 어둠에 묻힌 밤'을 더 어둡고 춥게 한다. 정치도, 사업도, 청춘도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갈까, 우왕좌왕 헤맨다. 진정으로 나라를 책임진 자들은 누군가. 서로 남 탓만 해댄다. '이게 나라냐?'라며 따지고 싶어도 힘없는 백성들은 처벌이 두려워 입을 닫는다.
올 한 해는 정말 '내로남불'의 시대였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我是他非)며, 서로 소리 질러 댔다. 그런 인식 위에 무슨 법의 공정이, 어떤 보편타당한 윤리가 성립하랴. '내로남불'을 패러디한, 특정 정치인을 겨냥한 다양한 사자성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후안무치한 자들이 역겨워 TV를 끄는 사람도, 과거를 뉘우치지 않는 자들이 보기 싫어 등 돌리는 사람도 허다하다.
구한말에나 나올 법한, 나라를 말아먹고 기강을 무너뜨린 오적(五賊) 리스트를 만드는 수도 있다. 한편에선 그것을 가짜 뉴스니 뭐니 삿대질을 해댄다. 피해의식 많고 절대 '잘못했다'고 하지 않는 좀스러운, 야당 같은 여당. 양반 땟물이 덜 빠져 추진력 없는, 여당 같은 야당. 이런 시대에 서민들은 제3의 메시아를 찾고 있다. 과거 역사를 보면 백성들이 왜 그렇게도 미륵 신앙에 눈 돌렸는지 알 만도 하다.
미래의 부처인 미륵이 나타나 제발 이 더러운 세상을 구원해 달라는 피눈물의 희망을 되새겨본다. 조선시대 이래 유포되었던 '정감록' 같은 예언서는 현실 정치에 대한 강한 불신, 부정을 은유하는 것이었다. 천신만고의 한 해였으나 새해에는 설상가상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나라를 책임진 사람들은 춥고, 배고프고, 지친 민초들에게 잔머리 굴리고 꼼수 부리지 말고, 법 타령보다 밥 타령에 골몰하라. 법은 누구 편인지 공정한 물건인지 솔직히 모르겠으나, 밥은 먹어야 산다. 민주(民主)주의는 민생(民生)주의에서 시작하자. 안다, 안다 잘난 척해도(萬事知) 밥 한 그릇 따숩게 먹고 사는(食一碗) 일보다 더 성스러운 것은 없다. 온갖 그럴듯한 이념적 구호와 쇼, 그 잘난 꾀와 눈속임들도 배고픔 앞에선 허접하고 지질해진다.
껍데기는 가고 실심실학(實心實學)의 밥맛 도는 시대가 왔으면 한다. "흰 눈이 온 세상에 소복소복 쌓이면/ 하얀 공장 하얀 불빛 새하얀 얼굴들/ 우리네 청춘이 저물고 저물도록/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공장엔 작업등이 밤새 비추고." 노찾사 제2집(1989)에 수록된 민중가요 '사계'가 불현듯 떠오른다. 1년 365일 내내 밤낮없이 노동력을 착취당하면서 미싱(재봉틀)을 돌려야만 했던 여공들의 삶을 그린 노래다. 아프게도, 그런 시절을 부정하고 싶지만, 지금은 아이러니하게 그런 곳조차도 없다. 청춘이 저물고 저물도록 잘도 돌아가던 뼈아픈 공장도, 일자리도 사라졌다. 새해에는 청춘들에게 '삶 자리'를, 제대로 된 '일자리'에서 찾아주자.
정부는 법보다는 밥, 꼼수보다는 백신, 적폐보다는 적선(積善)부터 말하고 고민해야 한다. 긍정과 희망의 어법이 없는 '파사'(破邪)는 이제 과감하게 버리자. 잔머리와 꼼수를 부리다간, '현정'(顯正)은커녕 코로나19와 백신 문제가 쓰나미로 돌변하여 어느 날 자신을 삼켜버릴 수도 있다. 말 많고 탈 많은 공수처의 수사에는 누가 제일 먼저 설 것인가. 아무도 모른다. 부디 해원상생(解寃相生)으로 융평(隆平)하는 새해를 다 함께 꿈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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