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며칠 남지 않았지만 책상 위에 놓아둔 달력 메모칸은 휑하기만 하다. 그나마 뜨문뜨문 있던 약속마저 모진 코로나19 삭풍에 모두 지워졌다.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앞에 2020년은 이렇게 을씨년스럽게 저물어 가고 있다.
백신 개발 소식을 비웃듯 확산세는 여전히 가파르다. 통계 웹사이트 '월드오미터' 기준으로 16일 현재 세계 누적 확진자는 7천400만 명에 육박한다. 지난해 12월 31일 중국 우한에서 처음 보고된 지 1년 만에 지구촌 100명 중 1명이 감염된 셈이다.
전염병이 핵폭탄·기후변화보다 훨씬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한 2017년 발언으로 새삼 주목받았던 빌 게이츠는 최근 더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정상 생활 복귀가 2022년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마저도 미국의 해외 백신 지원, 높은 접종률을 전제로 했다.
그의 말대로 코로나19 종식은 전 세계의 일치된 대응이 있어야 가능하다. 부럽긴 해도, 어느 나라에서 먼저 백신 접종이 시작됐는지는 다음 문제다. 저 먼 이국 어디에서라도 방역에 구멍이 뚫린다면 결코 안전하다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정부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불안하기만 하다. 선진국 아닌 나라에서조차 접종이 시작됐는데도 '문제 없다'는 정부 변명만 들어야 할 처지라서다. 보건복지부·외교부 등 관계 부처가 '백신 도입 특별전담팀'을 꾸린 게 벌써 6개월 전이다.
그래서인지 시중에는 온갖 유언비어가 떠돈다. 총선 직전 뿌려졌던 재난지원금처럼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직전에 접종이 시작될 것이란 소문도 있다. 편 가르기, 이벤트 정치에 특화된 현 정부라면 벌써 1호 접종자 선정은 마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한국이 대응에 실패한 것은 아니다. 지난 2월 감염병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해 봉쇄 조치를 시행하겠다는 여당 지도부의 배려 없는 발언에도 묵묵히 거리두기를 실천한 대구경북의 희생 덕분이다. '배려'는 여기에서 쓸 수 있는 가장 점잖은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월드오미터 통계를 자세히 살펴보면 "코로나 상황에서 대한민국에 사는 것이 좋다"는 전직 총리의 '문비어천가'는 낯 뜨겁기만 하다. 인구 100만 명당 누적 확진자에서 한국이 161위(886명)인 반면 경제 경쟁국이라 할 대만은 209위(130명), 베트남은 214위(118명)이다. 개발도상국만 있는 것도 아니어서 뉴질랜드는 420명으로 180위에 그쳤다.
'코로나19 청정 지역'에는 공통점이 있다. 경제적 타격을 무릅쓰고 과감히 내린 확산 초기 국경 폐쇄와 철저한 감염자 추적이다. 대만은 지난 2월 6일, 뉴질랜드는 3월 19일, 베트남은 같은 달 22일부터 외국인 입국을 전면 금지했다.
이처럼 각국이 자국민 안전과 포스트 코로나 대책에 몰두하는 동안 우리 정부와 의회는 과연 뭘 했나? 온 국민을 피곤하게 만든 검찰 조지기, 집값 폭등만 야기한 임대차 3법 밀어붙이기, '민주주의의 순기능'이란 궤변의 극치를 보여준 합법적 필리버스터 강제 종결…. 후대의 엄혹한 평가를 피해 가기 어렵다.
자신에게 이로운 일에만 기를 쓰고 덤벼드는 부라퀴들이 득시글거리는 정치권을 보면서 세밑에 수피 바야싯의 시 구절만 속절없이 되뇐다.
'젊은 시절 나는 혁명가였고, 주님께 드리는 나의 기도는 이와 같았다. 제게 세상을 뒤바꿀 힘을 주소서. 중년에 이르러 나의 기도는 이렇게 달라졌다. 가족과 친지들만 변한다 해도 저는 만족하겠나이다. 이제 늙어서야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던가를 알게 됐다. 나의 유일한 기도는 이것뿐이다. 저 자신을 변화시킬 은총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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