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요틴을 만든 기요틴은 기요틴에 당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공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기요틴에 비유했지만 사실과 다소 다르다. 프랑스 혁명기 공포정치의 상징이었던 기요틴은 파리대학 해부학 교수 조제프이냐스 기요탱 박사의 이름을 땄다. 하지만 그는 76세를 일기로 자연사했다.
실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이는 자코뱅파 공포정치의 주역이었던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다. 1년 6개월 남짓한 집권 기간에 무려 1만7천여명의 목을 자른 로베스피에르는 반대파의 쿠데타가 일어나자 자신의 머리도 기요틴 아래로 내미는 신세가 된다.
◆자기가 꼰 새끼줄에 자기가 묶이다
자승자박 또는 자업자득의 역사적 교훈은 한국 보수정치사에서 찾을 수 있다. 2009년 7월 한나라당은 종합편성채널(종편) 개설을 위한 방송법·신문법· IPTV법 등 '미디어 3법'을 강행 처리했다.
이 과정에서 본회의장 국회의장석을 점거하고 법안 심사보고, 제안설명, 질의 및 토의 등 국회법 절차까지 모두 생략해 '날치기 처리'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야권은 의원직 총사퇴를 선언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야당 의원들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하지만 헌재는 "절차상 위법하나 법안이 무효는 아니다"며 기각한다. 이명박 정부는 2010년 12월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매일경제신문 등 4곳에 종편 개설을 허가했다.
보수정권에 의해 탄생한 종편은 역설적으로 보수정권을 무너뜨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박근혜 정부 4년차인 2016년 7월, 조선일보 계열의 TV조선은 미르-K스포츠재단 비자금 조성 의혹을 최초 보도했다.
10월에는 중앙일보 계열의 JTBC가 최순실의 것으로 추정되는 태블릿 PC에 대통령 연설문 등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폭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본격 점화한다. 민심은 폭발했고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2016년 12월 국회에서 박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됐다.
◆11년 후 '날치기' 재현한 민주당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공수처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는 과정은 11년 전 한나라당을 연상케 한다. 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 대선 1호 공약인 공수처가 야당의 발목잡기로 출범이 지연된다고 판단, 법안을 뜯어고쳐 야당의 비토권을 삭제했다.
국민의힘이 안건조정위 신청으로 맞서자 민주당은 '여당보다 더한 여당'으로 불리는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을 동원했다. 안건조정위는 이견이 첨예한 법안에 대해 숙려기간을 최대 90일간 두는 제도지만 민주당은 딱 90분 만에 마무리 지었다.
이어진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와 본회의도 속전속결이었다. 전체회의에서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이 반대토론을 신청했지만, 민주당 소속 윤호중 법사위원장은 야당 의원들의 항의로 장내가 정리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권 전체로부터 '날치기 처리'라는 항의가 빗발쳤지만 민주당은 임시국회 본회의를 열고 결국 공수처법 개정안 통과를 밀어붙였다. 이로써 공수처는 야당의 견제 없이 정부여당의 의지대로 구성, 운영되는 길이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는 "공수처가 신속하게 출범할 길이 열려 다행"이라며 "공수처 설치는 성역없는 수사, 사정·권력기관 사이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 부패없는 사회로 가기 위한 오랜 숙원이자 국민과의 약속"이라고 강조했다.
◆공수처 앞세워 20년 집권 가능할까
로베스피에르 사후, 지식인들은 그를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유를 없애는 자가당착을 저질렀다.(한나 아렌트)", "문제의 근원인 경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정치의 힘에만 기댔다.(마르크스)" 등으로 평가했다.
이는 최근 원로 진보학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내놓은 문재인 정권에 대한 분석과 묘하게 닮았다. 그는 현 집권세력과 관련, "새로운 정치 계급으로 등장한 학생운동 세력이 문제의 해결자가 아닌 문제 그 자체가 돼 버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수처는 반대 당(黨) 인사, 또는 정치적 비판자에 대해 공적, 사적으로 제재를 가하기 쉽다"며 "법이 정치 투쟁의 중심에 서면서 정치가 여론 동원, 경찰 조사, 검찰 기소와 같은 비정치적이고 사법적인 절차에 의해 압도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년 집권론을 주창하며 공수처 출범을 서두르는 진보진영이 꼭 귀 기울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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