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 연구자
세로가 한 뼘 조금 넘는 작은 그림이지만 소전 손재형이 '단원선생(檀園先生) 신품(神品) 소전(素荃) 배관(拜觀)'으로 배관기를 써 넣은 바대로 신품이다. 신선과 동자의 신발 윤곽선 바깥에 원 바탕이 조금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비단 전체에 엷은 바림으로 색을 올렸음을 알 수 있다. 아래쪽이 조금 짙어 안정감이 있는 가운데 담채의 오묘한 공간감이 신비롭게 감돈다. 악기를 연주하며 어디론가 가고 있는 이 신선은 중국 명나라 때 도석화 화보인 『선불기종(仙佛奇蹤)』(1602년)에 나오는 한상자(韓湘子)이다. 들고 있는 것은 대나무로 만든 타악기인데 왼손으로 받쳐 든 굵은 대나무 통을 오른손에 쥔 대나무 채로 두드려 소리를 내는 어고간자(漁鼓簡子)라고 한다. 한상자는 피리도 좋아해 피리 부는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두 인물은 다채로운 선질(線質)의 선과 은은한 담채로 묘사되었는데 한상자의 머리와 어깨를 감싸고 있는 두건을 보면 그 간솔하고 우아하면서도 적확한 세필 선묘와 투명함을 나타낸 색 표현이 감탄스럽다. 그림 왼쪽에 나란히 표구된 옥색 종이의 글은 이 신품을 한 때 소장했던 석농(石農) 김광국(1727-1797)의 감상문이다. 김광국은 김홍도의 그림이 칭송 받고 있지만 남종화에 없는 필법이라며 무시하는 수장가도 있다고 했다. 18세기에도 문인지화(文人之畵)인 남종화를 편애하는 감상가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광국은 화법이 북종화에 가깝다고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고 하며 열린 감상안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신선이 없다면 모를까 있다면 반드시 이런 모습일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곧 신선을 신선답게 그렸다는 뜻인 것 같다.
신선은 인간의 몸을 가지고 시공을 초월해 영생하는 존재다. 대부분 실존했던 인물이라고 하는데 한상자도 그렇다. 자(子)는 존칭이고 이름은 상(湘)인데 당나라 때 문장가인 한유의 조카(또는 종손)로 신선 여동빈을 스승으로 삼았다. 영원한 수명을 얻었다고 하는 신선의 수도 적지 않아 중국의 신선 전기집 중 『열선전전(列仙全傳)』(1600년)에는 서왕모에서부터 581명에 달하는 신선의 이력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 8명을 팔선(八仙)으로 꼽는데 한상자, 여동빈을 비롯해 종리권, 장과로, 이철괴, 조국구, 남채화, 하선고 등이다. 성별로 보자면 하선고는 팔선 중 유일한 여선(女仙)이고 남채화는 성별이 불분명하다고 한다.
도교는 불로장생의 신선을 이상으로 삼고 유교는 완성된 인격체인 성인(聖人)을 목표로 삼지만 영원히 사는 일도, 불멸의 이름을 남기는 일도 도달하기 어려운 것은 같다고 하겠다. 신선을 그린 그림이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부터 나타나니 신선의 역사는 우리나라에서도 유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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