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인 잣대로 재단하면 악순환 계속…역사 유산으로 받아들이자!
제주도 서귀포 시내에 강한 필치의 소 그림으로 유명한 서양화가 이중섭의 미술관이 있다. 미술관 일대는 생가를 포함해 이중섭 거리로 조성돼 있다.
미술과 이중섭에 별다른 관심 없는 여행객이었다면 '이중섭이 제주 출신이었나. 전망 좋네'라는 생각으로 생가를 지나갔을 것이다.
조금 관심 있게 둘러보면 이중섭 생가는 북한 출신인 그가 6·25 전쟁을 피해 1년 정도 머물렀던 곳임을 알 수 있다. 그는 남의 집 단칸방에서 피난살이를 했다.
유명인이 잠시 머문 흔적을 잘 살려 관광자원으로 만든 제주도 관계자의 노력과 상상력에 박수를 보낼 만하다.
이탈리아 나폴리시는 최근 나폴리의 '산 파울로' 스타디움 명칭을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로 변경했다. 지난달 25일 심장마비로 숨진 축구 전설 마라도나는 1984년부터 1991년까지 세리에A의 나폴리에서 활약하며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유명인의 업적을 기리고 이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마케팅 사례는 숱하다.
우리나라에는 역대 대통령의 생가와 기념관이 잘 조성돼 있다. 대통령이 태어나거나 자란 생가는 훌륭한 역사 유산이다.
그런데 역대 대통령들의 정치적인 부침이 심했기 때문일까. 대통령 생가와 기념관이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다.
포항시민연대가 포항시 북구 흥해읍 덕실마을에 지어진 '이명박 기념관' 운영 예산을 삭감하라며 지난 1일부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덕실마을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으로 포항시가 2011년 건립했다.
포항시민연대는 이 전 대통령이 대법원으로부터 범죄자로 확정됐다는 이유로 기념관 운영에 드는 인건비 등 예산 5천만원의 삭감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주민들은 기념관이 유지되길 바라고 있다. 기념관을 없앤다고 대통령이 살았다는 사실까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게 주민 의견이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도 흔적 지우기 대상에 올라 있다.
충청북도는 청남대에 세워진 두 전직 대통령의 동상 철거 논란에 대해 지난 3일 동상을 그대로 두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신 두 대통령의 사법적 과오를 적시한 안내판을 세우기로 했다.
앞서 '5·18 학살 주범 전두환·노태우 청남대 동상 철거 국민운동'은 두 대통령의 동상 철거를 요구했으며 보수 단체는 철거 반대 목소리를 냈다.
청남대는 전두환 전 대통령 집권기인 1983년 건설돼 대통령 별장으로 사용됐으며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일반에 개방됐다. 청남대 관리를 맡은 충북도는 관광 활성화 차원에서 초대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전직 대통령 10명의 동상을 세웠다.

그런데 이명박 기념관 운영 예산 삭감, 청남대 동상 철거 논란을 들여다보면 지나치게 정치색이 담겨 있다. 국민의 정치적인 관심과 수준이 높다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일부 세력이 전직 대통령의 과오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아닐까.
이명박,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만 범죄자인가. 이미 여러 차례 흔적 지우기의 대상이 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은 존경받는 훌륭한 지도자이자 어쩌면 모두 범죄자였다. 과거 통치 행위로 넘어갈 수 있는 일로 영어의 몸이 되어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도 같은 처지다.
민주화 발전 공로를 인정받는 진보나 중도 대통령들도 범죄행위로 처벌받고 사면받은 전력이 있다. 범죄행위에 연루된 가족을 둔 대통령도 여럿 있다.
역사 유산인 대통령 생가와 기념관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자. 전직 대통령들을 정치적인 잣대로 재단한다면 문재인 대통령도 퇴임 후 자신의 기념관이나 사저에서 가족과 함께 온전한 행복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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