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장애인과 장애인 안내견

입력 2020-12-08 13:39:15

손수민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손수민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얼마전 대형마트에 장애인 안내견으로 훈련받는 강아지를 데리고 갔다가 입장이 거부당한 일로 인터넷이 떠들썩했다. 사람들은 분노했고 마트는 사과문을 올렸다. 간접적으로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다는 뜻으로도 느껴져 장애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로서 감사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런데 장애인 안내견은 이해받는데 장애인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여전히 남아있다.

재활의학과 병동에 병실이 없어 타과 병동에 입원했던 승희 어머니가 앞으로는 재활의학과 병동에만 입원하겠고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말이 어눌하고 잘 못 걷는 승희를 외계인 보듯 하는 타과 환자들의 시선이 너무 힘들다"고 털어놨다.

진우 어머니는 외래진료 때 장애인 콜택시에 대해 질문하다 갑자기 눈물을 흘리셨다. 그는 "제가 차가 없어 늘 지하철을 타는데 이날따라 진우가 계속 울자 앞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께서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애를 울린다. 답답한 모자라도 벗기면 낫지'하면서 모자를 확 벗겼다 깜짝 놀라 다시 모자를 씌우더라구요. 순간 지하철 안 사람들이 다들 진우를 쳐다보는데 너무 속상해서 바로 내렸어요"라고 털어놨다.

진우는 유전자 질환으로 얼굴 생김새가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르다. 남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어머니는 늘 큰 모자를 씌우고 다녔는데 할머니가 진우 외모에 당황했던 것 같다.

그런가하면 병원에 대한 유난히 요구사항이 많아 기억에 남는 보호자도 있다. 까다로운 수경이 어머니의 요구로 병원에서 미처 신경쓰지 못했던 부분이 개선되는 장점도 있었지만, 수경이 치료 전에는 치료실 전체를 소독해 달라거나 특정 브랜드의 담요를 사서 침대에 깔아달라는 등 병원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도 많다보니 치료사들이나 간호사들은 늘 수경이 어머니를 어려워했다.

어느 날 회진을 도는데 갑자기 수경이 어머니가 "교수님, 저는 죽기 전에 수경이한테 엄마소리 듣고 죽을 수 있을까요?"라고 말을 걸어왔다. 늘 예민했던 수경이 어머니가 1년 365일 중 300일을 치료다니면서 비는 소원은 단 하나 수경이에게 엄마 소리를 듣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순간 나도 울컥해서 고개를 돌렸던 것도 같다.

치료사와 간호사들에게 이런 수경이 엄마의 소원을 이야기해주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수경이 엄마만 나타나면 긴장했던 병동 사람들이 "힘들 땐 단거"라며 과자를 슬쩍 쥐어 준다거나 "오늘따라 젊어 보이세요"라고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고, 이날 나는 처음으로 수경 엄마의 웃는 모습을 봤다.

상처가 많은 환자들과 보호자들은 더 예민하고, 때론 까칠하며, 또 그만큼 매일매일 갑옷을 껴입는다. "너무 힘들면 제게라도 털어놓으세요"라는 내 말에 "겨우 버티는 중인데, 그걸 열면 제가 무너질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보호자도 있다.

코로나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 중 하나는 역설적이게도 나만 괜찮다고 괜찮은 게 아니라 '다 함께 좋아져야 좋아진 거다'라는 메시지인 것 같다. 나만 웃고 있다고 행복한 건 아니지 않을까. 우리의 말 한마디, 시선 한 줄기에 내 보호자들의 갑옷이 한풀 벗겨지고 모두 함께 편안해질 그 날을 기대해 본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