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준 서울정치부 차장
'선출된 권력'과 '공부해서 얻은 권력' 사이의 힘겨루기가 절정이다. 현직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 알력(軋轢)으로 비치지만 본질은 권력 집단 간 대충돌이고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선출된 권력'의 정점에는 국민이 뽑은 문재인 대통령이 자리 잡고 있다. 고시(高試) 합격자 중에서도 사법연수원 성적이 우수한 사람들만 모인 검찰에선 윤석열 총장이 총대를 멨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양측의 사활을 건 진검승부가 진행 중이다.
현 정권은 민의의 통제를 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 집단이 조직 이익만 좇으며 필요에 따라 정치 영역마저 뒤흔드는 상황을 종식시키겠다는 입장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1년 쓴 책 '문재인의 운명'에서 "검찰을 장악하려 하지 않고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보장해 주려 애썼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바로 그 검찰에 의해 정치적 목적의 수사를 당했으니 세상에 이런 허망한 일이 또 있을까 싶다"는 격정을 토로한 바 있다.
반면 검찰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엄존하는 상황이라 권모술수와 정파적 이해로부터 자유로운 중립적인 사정 기관이 필요하다고 맞서고 있다.
윤 총장은 지난해 7월 취임식에서 "권력기관의 정치·선거 개입, 불법자금 수수, 시장 교란 반칙 행위, 우월적 지위의 남용 등 정치·경제 분야의 공정한 경쟁 질서를 무너뜨리는 범죄에 대해서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장의 목소리는 더욱 적나라하다. 여당의 한 중진 국회의원은 "정치권을 진흙탕이라고 욕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주기적으로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며 "검찰은 줄 잘 잡아 충성만 하면 평생을 보장받는,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는 조직이다 보니 더욱 이기적이고 교만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구성원의 애국심, 정의감, 도덕성 등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에 검찰만 한 조직을 찾기 힘들다"며 "백보 양보하더라도 권력욕 앞에 자신의 영혼까지 서슴없이 내려놓는 정치권보다는 나라에 더 이익이 되는 집단"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역대 전적에선 검찰이 전승을 거뒀다. 그나마 참여정부가 싸움다운 싸움을 걸었지만 결과적으로 참패했고, 군에서 하나회마저 걷어냈던 문민정부도 검찰의 상대가 되진 못했다. 검찰엔 필승 공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권의 힘이 좋은 임기 전반기에는 전(前) 정권 수사에 총력을 쏟으며 살아 있는 권력의 편에 서는 방식으로 개혁 대상에서 벗어났다. 이때 현 정권 인사들의 비리와 범죄 혐의는 차곡차곡 쌓아두기만 한다.
후반기에는 그동안 보관해 온 현 정권 인사들의 비리와 범죄에 대한 수사를 시작한다. 그러면 정권은 검찰을 개혁할 수 없다. 이렇게 검찰은 외부의 수술을 피하면서 점점 더 강해졌다.
특히 검찰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 가운데 어떤 것이 죄가 되는지를 규정하는 막강한 권한(기소권)을 독점적·자의적으로 행사하면서 '거악척결(巨惡剔抉)의 상징'이 됐고, 조직이 위기를 맞을 때마다 국민의 지지를 발판으로 상황을 반전시키는 수완도 발휘했다.
이런 막강한 검찰을 상대로 현 정권이 ▷통치권자의 강력한 의지 ▷'촛불 정부' 위상 ▷절대다수 국회 의석 ▷검찰 비리(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추행 사건 등) 들추기 등을 무기로 수술을 추진 중이다.
19세기 영국의 정치인이자 역사가였던 존 달버그 액턴은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며,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선한 권력은 없다. 국민들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두 권력 중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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