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FOCUS] 기자라는 위험한 직업

입력 2020-12-05 12:00:00

인도, 멕시코…기자 살해 잇따라 Vs. 선진국은 가짜뉴스로 신뢰 추락

멕시코는 언론인에 가장 위험한 국가 라는 낙인이 찍혔다. 한 멕시코 언론인이 범죄 현장을 취재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멕시코는 언론인에 가장 위험한 국가 라는 낙인이 찍혔다. 한 멕시코 언론인이 범죄 현장을 취재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최근 인도 북부에서 30대 기자가 산 채로 불태워진 끝에 숨지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1일 NDTV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북부 우타프라데시주 발람푸르의 지역 언론사 기자 라케시 싱 니르비크가 지난달 27일 자택에서 그의 친구 핀투 사후와 함께 심한 화상을 입은 채로 발견됐다. 사후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고 니르비크는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몇 시간 뒤 숨을 거뒀다.

니르비크는 숨지기 전 병원 관계자에게 자신은 마을 지도자와 그 아들에 대한 비리 혐의에 대해 주기적으로 기사를 써왔다며 "이것은 진실을 보도한 것에 대한 대가"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직후 마을 지도자의 아들을 포함한 용의자 3명을 체포했으며 이들이 니르비크의 집에 침입해 피해자들을 술에 취하게 한 뒤 알코올 성분이 포함된 손 소독제를 이용해 불태운 것으로 추정했다. 인도에서는 경악할 만한 사건들이 끊이지 않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기자가 보도에 앙심을 품은 이들로부터 잔인한 방식으로 살해된 일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기자란 직업은 사회가 안정된 국가에서는 덜하지만, 불안정한 사회에서는 때로 이처럼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특히 멕시코는 '언론인에게 가장 위험한 국가'라는 낙인이 찍힌 지 오래다. 지난달 9일 멕시코 중부 살라망카의 지역매체에서 일하던 이스라엘 바스케스 랑헬(31) 기자가 괴한의 총에 맞아 숨졌고 10월 말에는 시우다드후아레스에서 범죄 뉴스 등을 다루는 TV 앵커 아르투로 알바 메디나(49)가 11발 이상의 총에 맞아 숨졌다. 메디나는 피살 직전 경찰 비리와 주(州) 사법요원들의 미성년자 살해 의혹, 마약상 간 충돌 등의 프로그램을 다뤘으며 그 때문에 '처형 당한 것'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멕시코에선 마약 카르텔 등 범죄조직들의 강력 범죄가 잦아 범죄나 부패를 취재하던 언론인이 잇따라 살해되고 있다. 국경없는기자회(RSF) 웹사이트에는 올해 멕시코에서 피살된 언론인이 5명으로 집계돼 있으며 지난해에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10명의 기자가 목숨을 잃었다. 전쟁 중인 시리아나 아프가니스탄보다도 많은 수치다.

멕시코 일간 레포르마는 2000년 이후 살해된 멕시코 언론인들이 135명에 달한다고 전했다. 멕시코에서 다른 살인과 마찬가지로 언론인 살인의 경우도 가해자가 붙잡혀 처벌을 받는 비율이 매우 낮으며 처벌을 받더라도 약한 수준에 그쳐 언론인 살인 범죄가 그치지 않는 이유로 꼽히고 있다.

부패와 폭력이 만연한 멕시코, 전쟁 중인 시리아나 아프가니스탄의 언론인들은 외부로부터의 위험에 크게 노출돼 있는 유형이다. 좀 다른 경우지만 독재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부가 많은 아프리카나 아시아, 중남미 국가의 언론인들도 언론 자유에 제약을 받으며 때로는 인신 제재를 당하는 위험 속에서 살아간다. 이에 비해 언론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된 선진적인 국가의 언론인들은 외부로부터의 폭력에서 벗어나 있어 위험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언론 자유가 보장된 국가의 언론인들은 다른 의미에서 위험한 직업인들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SNS를 통한 가짜 뉴스의 유통이 전세계적인 문제가 되는 현실에서 사회적 공인을 받은 언론이 때로 가짜 뉴스를 전파해서 물의를 일으키기도 한다. 가짜 뉴스는 정치 분야에서 많이 나오며 선거 기간에 유통량이 급증하는데, 그때에는 부정적 여파가 커지기 마련이다. 가짜 뉴스가 아니더라도 언론사와 언론인들이 정파적 입장에서 뉴스를 다루는 일이 적지 않으며 이것이 SNS를 통해 전파되면서 사회 구성원들의 확증편향을 강화해 사회적 정치적 갈등을 고조시킨다.

이러한 문제점은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들이 겪고 있는 골칫거리이다. 최근에 대통령 선거를 치른 미국에서도 선거 과정에서 가짜 뉴스가 유통되고 갈등이 극심해 여론이 양분될 정도로 심각한 후유증을 낳고 있다. 미국은 민주주의의 본산을 자처하는 국가가 아니던가. 우리나라 역시 사회적 정치적 갈등이 심해 이러한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언론인이 자칫 사회적 정치적 갈등을 심화시키는 위험한 직업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난 4월 국제 언론감시단체인 국경없는기자회(RSF)가 펴낸 '2020 세계언론자유지수' 보고서에서 한국이 올해 42위를 기록했다. 세계언론자유지수(World Press Freedom Index)는 국가별 '언론의 자유' 실현 정도를 비교하는 평가로 한국은 아시아에서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대만이 43위, 일본은 66위, 민주화 시위에 대한 압박 등으로 언론 자유가 위축된 홍콩은 80위, 중국은 177위, 북한은 최하위인 180위였다.

한국은 지난 2006년 31위까지 올랐다가 10년이 지난 2016년에 70위로 떨어진 바 있다. 이후에 2017년 63위, 2018년 43위, 2019년 41위로 순위를 회복했다. 세계언론자유지수 1위는 노르웨이, 2위 핀란드, 3위 덴마크, 4위 스웨덴, 5위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이 상위권에 포진했다.

그러나 지난 6월 영국 옥스포드대학교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발간한 '디지털뉴스리포트 2020'에서 한국 언론의 신뢰도는 조사 대상 주요 40개국 중 최하위로 나타났다. 한국 언론은 자국민들의 신뢰도가 21%에 그쳐 최저 수준을 면치 못했고 2017년부터 올해까지 4년 연속 바닥에 머무르고 있다.

이 두가지 보고서에 비추어 보면 언론자유지수는 높은 편인데 신뢰도는 낮은 것이 한국 언론의 현주소인 셈이다. 어떠한 사안에 대해 정파적 관점에서 접근해 보도하고 과도하고 무리한 비판을 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불편부당' '정론직필'을 내세우고 한때 '사회의 목탁'으로 불리며 가치를 인정받던 기자라는 직업이 지금은 사회 갈등을 커지게 하는 위험한 직업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회 일각에서 '언론 개혁'이 거론되는 현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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