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창록 경상북도경제진흥원장
며칠 전 기업을 한 군데 방문했다. 영덕에 있는 수산물 사업을 하는 3년 된 기업이었다. 이윤의 60% 이상은 기부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는 사회적기업이었다. 짧은 시간에 20억원 매출을 올릴 정도로 회사는 커졌고,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 좋은 사람을 뽑는데 자꾸 나간다며, 대표는 회사를 어떻게 성장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생존을 걱정하는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성장을 걱정한다면 분명히 좋은 일인데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중소기업의 성장 방식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에 대한 나의 대답이 선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특징은 기하급수적 변화와 그 변화의 속도로 인한 기하급수적 성장의 시대라는 것이다.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차이는 무엇인가? 단순히 업력의 차이인가? 2015년 창업한 마켓컬리는 처음부터 중소기업이라고 불리지 않았다. 몇 년 전 블룸버그는 GE를 124년 된 스타트업이라고 불렀다. 우리 중소기업들이 스타트업처럼 이 기하급수적 성장의 시대 혜택을 보기 위해서, 인재들이 일하고 싶어 몰려오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첫째는 시선의 지향이 변해야 한다. 현재가 아닌 미래로 시선의 지향이 변해야 한다. 중소기업이 현재에 시선을 맞추고 있다면 스타트업은 미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래서 스타트업들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담대한 목표(MTP: Massive Transformative Purpose)를 가지고 있다. 시선이 미래에 있으니 스타트업들은 그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성장을 지향한다.
둘째는 개방형, 수평적 조직문화에 기반한 일하는 방식이다. 기하급수적 변화의 시기는 코로나와 같은 통제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변화가 일상인 시대라는 것이고 이 시대 어떤 조직도 조직 내부의 자원만 가지고는 이 변화를 따라갈 수 없다. 넷플릭스의 핵심 경쟁력인 시네매치 알고리즘도 넷플릭스 경진대회를 통해 전 세계 천재들의 힘을 빌려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셋째는 제품이나 비즈니스 모델에서 파괴적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 대부분의 창조는 배열을 달리한 편집이라는 얘기가 있다. 시각을 다르게 하면 된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집에 있지 않는 시간에 배송이 되고 그러다 보니 배송과 사용 간에 큰 불일치가 있었다. 마켓컬리는 단지 배송 시간을 새벽으로 바꿈으로써, 받은 제품을 바로 요리해 아침으로 먹게 함으로써 배송과 사용 간 불일치를 해결했다. 그 결과 2015년 연 매출 100억원 규모였던 새벽 배송 시장은 2018년 4천억원 규모로, 2019년 1조원 정도로 성장했다.
'중소기업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과거 중소기업의 성장 방식이 이제는 유용하지 않다는 뜻이다.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대기업으로 가는 성장 방식은 파이가 커지는 고도성장기에 가능한 산술급수적 방식이다. 세계적으로 저성장으로 대변되는 오늘날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처럼 힘껏 달려야만 제자리인 시대로, 기하급수적 성장이 아니면 정체 또는 죽음인 시대이다.
이제 크기에 기반한 중소기업이라는 말은 없어져야 한다. 중소기업이라는 말은 기업을 규정하는 얘기가 아니라 기업 성장 단계의 한 시기를 지칭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중소기업 모두가 스타트업으로 거듭나 4차 산업혁명 시대, 이 기하급수적 성장의 시기를 즐기기를 기대한다면 지나친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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