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디 베케트 지음/ 이주헌 감수/ 김현우 옮김/ 예담/ 2001
그림으로 떠나는 삶의 여행
"홀로 기도하는 고독한 생활에서 벗어나 떠난 이번 여행에서 나는 영국 내 여섯 군데의 훌륭한 미술관을 방문했다. 그동안 복사화로만 볼 수 있었던 작품의 진면목을 그곳에서 직접 확인했으며, 그 순간의 기쁨을 이 글을 통해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책장을 넘기면 첫 페이지에 오롯이 적혀있는 문장이다.
웬디 수녀는 BBC 방송의 텔레비전 시리즈 '웬디 수녀의 모험'과 '웬디 수녀와 함께 떠나는 미술 여행'을 통해 잘 알려져 있으며, '예술에 관한 한 최고의 이야기꾼'이라는 찬사를 듣고 있다. 저자는 '현대 여성 예술가', '예술과 신성'을 비롯한 예술잡지와, '인디펜던트', '선데이 타임스' 등의 일간지에 글을 쓰고 있다.
웬디 수녀는 "예술에 대한 애정은 나에게 있어 신을 사랑하는 한 방법"이라고 했다. 리버풀, 케임브리지, 옥스퍼드, 솔즈베리 근교의 윌턴 하우스, 버밍엄, 에든버러로 걸음을 옮기며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다. 작품을 감상하는 데는 시간과 소박함과 개방적인 마음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기적이지 않은 삶의 태도 '삶 한 잔에 예술 한 조각' 감미로운 차 향기와 같은 살뜰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니콜라 푸생의 '포키온의 재가 있는 풍경'에 잠시 머문다. 전쟁에서 졌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하게 화형을 당했던 아테네의 장군. 영혼마저 쉴 수 없게, 시신을 묻을 수 없게 했으므로 아내는 죽음을 무릅쓰고 재를 모으고 있다. 그렇게 모은 재를 물에 타서 마셨고, 포키온은 무덤을 가지게 되었다. 아내의 몸이 그의 무덤이 된 셈이다.
진정한 자유는 어디에 있는가? 창살보다 더 지독하게 우리를 가두는 것은 바로 스스로가 부여한 욕망의 감옥이 아닐까? 구에르치노의 '감옥에 갇힌 성 요한을 방문한 살로메' 그림을 보고 있으면 커다란 재앙만이 두 사람 앞에 남아 있음을 느낀다. 책장을 좀 더 넘기니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바람'이 흐르는 시간 속에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불고 있다. 이 작품은 인상주의가 무엇인지 완벽하게 보여준다.
15세기에 발견된 원근법은 실로 새로운 것이었다. 파울로 우첼로의 '숲속의 사냥', '새'라는 의미를 가진 우첼로라는 작가의 이름도 깊은 뜻을 지녔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새만 볼 수 있는 사슴, 그것이 바로 이 작품의 소실점이다. 삶 속에 숨겨진 고요하고 비밀스러운 중심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한곳을 향해 달려가는 그림 속 다양한 표정들이 흥미롭다.
사볼드의 '피리 부는 소년'은 "소년이 불고 있는 피리는 키츠(Keats)의 시 '아무 음조도 없는 소곡에 맞추어'를 생각나게 한다. 들리지 않는 피리소리를 배경으로 누군가를 응시하는 소년은 지나가는 우리를 붙잡고 삶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듯하다."(101쪽) 웬디 수녀는 어디에서 주워들은 말들은 염두에 두지 말고 솔직하게 작품을 대하라 한다.
영화 '아메리칸 퀼트'에 보면 할머니들이 모여 지나온 삶을 회상하며 조각보를 만들어 간다. 진심을 다해 걸어온 발자국이 모여 무늬가 되고 사랑이 머무는 퀼트가 된다. 예술 또한 삶을 벗어날 수가 없고, 삶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만이 진정 예술을 이해하는 길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삶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가 충만하다. 예술을 감상한다는 것은 마음 벅찬 일이다. 한 폭, 한 폭의 그림들이 현실 너머의 무한한 곳까지 데려다 준다.
정화섭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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