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기춘 위력에 의한 간음 실형…'위력' 범위는?

입력 2020-11-26 15:36:25 수정 2020-11-26 15:47:47

법원 "유도계 인사와 친분 있는 왕 씨, 미성년 제자에 위력 인정돼"
실제 성범죄 폭행, 협박 없는 경우 많아…'비동의간음죄' 신설 주장도

미성년 제자를 성폭행한 한 혐의(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구속기소 된 왕기춘 전 유도국가대표가 지난 6월 26일 오전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대구지방법원에 도착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성년 제자를 성폭행한 한 혐의(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구속기소 된 왕기춘 전 유도국가대표가 지난 6월 26일 오전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대구지방법원에 도착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지방법원이 지난 20일 미성년 제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전 국가대표 유도선수 왕기춘(32) 씨에게 '위력에 의한 간음' 등 혐의로 징역 6년을 선고하면서 성범죄에서 '위력'의 범위 및 성립 요건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애초 왕 씨는 강간, 강간미수,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지만 검찰은 재판 중 위력에 의한 간음 및 간음 미수 혐의를 추가했다. 법원은 "왕 씨는 피해자가 진학을 원하는 대학, 학과 출신이며 유도계 인사와 친분이 있는 점을 고려할 때 피해자에게 위력을 행사해 성폭행을 한 것으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위력'이란 피해자의 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힘으로, 유·무형력 모두를 포함한다. 특히 무형력은 가해자의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지위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판례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나이, 키, 체중이 현저히 차이가 날 때 ▷가해자가 욕을 하거나 때릴 듯이 겁을 준 경우 ▷가해자가 연예기획사 대표, 피해자가 연습생인 사건 등을 위력에 의한 성폭력으로 인정했다.

법원은 피해자가 미성년자인 경우 위력의 범위를 보다 넓게 인정하는 편이다. 이달 15일 대법원은 10대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 명목으로 성행위를 요구한 군인에 대해 "이 같은 요구는 채무를 변제할 수 없는 피해자에게 성행위를 결심하게 한 중요한 동기가 될 수 있으며, 자유의사를 제압할 만한 위력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피해자가 성인인 경우에도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 인정된 사례가 있다.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지난해 9월 징역 3년 6월의 실형이 확정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대표적이다. 당시 법원은 "안 전 지사의 사회적 지위나 권세는 비서인 피해자에게 충분한 무형적 위력으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강간죄의 성립을 폭행·협박이 아닌 상대방의 동의 여부로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범행 당시 폭행·협박이 없었다면 강제성을 인정하기 어려워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미영 대구여성회 사무처장은 "성폭력상담소의 피해자 상담 결과 강간 사건의 70% 이상에서 폭행·협박이 수반되지 않았다는 조사가 있다"며 "폭행·협박이 없는 경우 법원이 피해자가 '관계에 어느 정도 수긍을 했다'고 보고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는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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