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 경희대 교수
2007년 초 학술회의차 베이징의 모 대학을 방문했다. 나는 우리 헌법의 민주주의 모델을 주제로 발표를 맡았다. 선거와 책임정치 구현, 3권분립과 상호 견제 등을 설명했다. 전쟁 수행 권한을 둘러싼 대통령과 의회의 대립, 사법부에 의한 결정 등 미국의 논의를 원용한 것이었다. 탐탁지 않아 하는 중국 학자들 사이에서 공법학 교수 혼자 짧게 언급하고 넘어갔다. '시기상조'가 핵심 요지였다. 약간은 유보적이었지만 발전 방향은 맞다는 말이기도 했다. 지금은 당시와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 서구 민주주의는 중국의 정치 개혁 노선이 아니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선거에 대한 부정적 의견과 함께 중국 방식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학자들을 자주 본다. 지도자 자질이 없어도 한 번의 선거로 뽑힐 수 있는 게 선거라 말한다. 국론이 분열되고 국가 백년대계 대신 국민 영합적 정책만 난무할 뿐이라고 한다. 반면 중국은 치밀한 과정을 거쳐 지도자를 양성한다고 자랑한다. 작은 지역부터 국가적 차원까지 철저한 경쟁과 검증, 교육을 거치며 지도자의 사다리를 올라간다는 것이다.
중국 학자들의 주장에 대해 그들의 국가주의적 사정을 강변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요즘은 관점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국민을 대신할 국가 운영자를 선출하는 대의제는 체제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필수적 전제이다. 하지만 선거(election)와 선택(selection)은 일치하지 않는다. 선거는 가장 좋은 사람을 선출하는 과정이 아니다. 최선 대신 차선 혹은 차악을 선택하는 게 선거라고 한다. 세계의 근심거리가 된 미국 대선은 선거의 치명적 단면을 보여준다. 2016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부터가 그랬다. 정치와 아무 관련 없는 부동산 재벌이 하루아침에 세계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미국 대통령이 된다. 미 국민들의 정서를 자극한 덕분이지만 바로 그런 점이 문제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가. 함량 미달인 대통령,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자치의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목격했고, 지금도 보고 있다.
느닷없는 가덕도 신공항론은 선거의 또 다른 어두운 면을 드러낸다. 국가적 과제 대신 지역적 정서와 이해관계를 자극하는 고전적 수법이다. 죽기 살기로 싸우던 부울경과 TK 지자체장들이 승복을 약속한 덕에 수십 년 끌어 오던 갈등을 겨우 매듭지은 사안이다. 가덕도도 밀양도 아닌 김해공항 확장으로 말이다. 가덕도 신공항론이 내년 부산시장 보궐선거 때문임은 다 아는 얘기이다. 정부·여당은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 데 대해 한마디 설명조차 없다. 선거에서 '재미 좀 보면' 그만이지 애초 변명할 생각도 없었을 것이다. 야당이 분열되어 갈피를 못 잡는 걸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야당의 의견을 통일하라는 훈수까지 당당하게 둘 정도다. 갈라진 야당 역시 선거용이라고 폄하할 수만도 없다. 양양, 예천, 청주, 무안 등 숱한 지역 공항들이 현재 야당도 이용한 선거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가덕도가 옳은지 그른지 평가할 계제는 아니다. 다만 추진하더라도 허접한 논리만은 접어 주었으면 싶다. 김해공항 확장이 별 문제 없다면서도 근본적 재검토를 요한다는 검증위의 결론부터 허접하기 짝이 없다. 산을 깎아야 한다면 깎으면 된다. 지자체 협의가 없어서 문제라면 협의하면 된다. 태양광 설치를 위해 온 산을 깎아 대는 터에 대수로운 일도 아니다. 설사 김해공항 확장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곧바로 가덕도 신공항을 정당화시키는 것도 아니다. 검증위가 재검토를 요한다고 했으니 원점 재검토가 합당한 결론이다. 나는 어느 편도 아니다. 신공항이든 아니든 대한민국의 장래에 가장 좋은 선택을 하자는 말이다. 10조원이 든다는 현재 추산은 결국 수십조원이 드는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한두 번 경험하는 일도 아니다. 그때 가서 수십조원짜리 빈 공항을 추가한다면 국가적 낭비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 솔직히 말해 내년 보궐선거와 후년 대선 후 어찌 될지도 모르는 게 신공항의 운명이다. 다시 말하지만 '김해 백지화'가 아닌 '근본적 재검토'가 올바른 방향이다. 지금 중국 학자들을 만난다면 우리의 민주주의 모델을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부터 선거가 두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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