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환의 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 루이 14세와 추미애

입력 2020-11-16 13:46:13 수정 2020-11-16 17:33:26

감옥으로 간 사법행정

베르사이유 루이 14세 기마상
베르사이유 루이 14세 기마상

김문환 역사저널리스트
김문환 역사저널리스트

◆베르사유 거울의 방 루이 14세

몽파르나스(Montparnasse). 고대 학문과 예술의 수호신 아폴론 신전이 있던 최고의 신탁 장소이자 학문과 예술의 수호 9여신 뮤즈의 고향인 델포이 파르나소스산을 본뜬 파리 센강 남쪽 지역을 가리킨다. 구릉(Mont·몽)이던 이곳에 몰려든 17세기 프랑스 학생들이 아폴론과 뮤즈, 학문과 예술을 떠올리며 붙인 몽파르나스는 18세기 나폴레옹 시대 도시 개발로 평지가 됐지만, 이름은 그대로 남았다.

몽파르나스역에서 기차를 타면 파리 남서쪽 20㎞ 지점의 베르사유(Versailles)에 10분 만에 닿는다. 드넓은 광장에 황금색 철문을 배경으로 높은 기마상이 우뚝 솟았다. 베르사유 궁전을 건설한 루이 14세다. 지구촌 각지로 뻗어 나간 프랑스 제국주의가 벌어 들인 돈으로 백성들 굶주림을 뒤로한 채 베르사유 궁전을 지었다. 1803년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파리로 보낸 대사에게 나폴레옹이 1천500만달러라는 헐값을 받고 판 미시시피강 유역 루이지애나(Louisiana)는 루이(Louis)왕의 땅이란 뜻이다. 당시 루이지애나는 미시시피강 서쪽 전부여서 신생 독립국 미국의 기존 영토보다 2배나 넓었다.

◆"L'État, c'est moi"(국가, 그것이 나야)

루이 14세는 프랑스 왕정사에서 가장 강력한 독재정치를 폈다. 그 상징적 수사가 "L'État, c'est moi"(국가, 그것은 곧 나다· 짐이 곧 국가)라는 말로 잘 알려진 이 말은 1655년 4월 13일 파리 의회에서 고작 18세로 현대 민주주의 국가라면 이제 막 투표권을 가질 나이의 루이 14세가 의원들 앞에서 당당하게 내던진 말이다.

의회를 무시하며 왕의 권한은 신이 주신 것이니 의원들이라도 간섭하지 말라는 왕권신수설과 절대왕정의 상징이 됐다. 당시 루이 14세는 최고 법원을 왕권에 복속시키는 작업을 진행했다. 법원이 국민과 국가를 위한 길이 아니라고 반발하자, 국가가 곧 나라고 외친 것이다. 사법권을 장악하기 위해 던진 루이 14세의 말이 40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이역만리 동방의 한국인들 가슴에 이렇게 절실하게 꽂힐 줄이야….

◆추미애 장관, 의회에서 거짓말의 일상화

법무부는 지난 12일 한동훈 검사장을 예로 들며 '피의자 휴대전화 비밀번호 공개 법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참여연대와 민변 등 각계의 반발이 거셌지만,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다음 날 국회에서 "그런데 그런 압수수색영장을 거부하고 핸드폰을 감추려고 하는 검사장도 있잖습니까. 압수수색영장 자체를 부정하는… 현장에서…"라고 한동훈 검사장을 가리키며 추진 강행을 내비쳤다. 한동훈 검사장은 법적인 권리대로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았을 뿐 압수수색 영장을 거부한 적이 없다. 추 장관의 거짓말이다.

5일에도 추 장관은 국회 법사위에 출석해 윤석열 김찰총장이 "서울중앙지검에 특활비를 주지 않아 수사팀이 애로를 겪는다"고 말했다. 거짓이었다. 검찰 전체 특활비의 16%를 서울중앙지검에 지급했다. 추 장관은 아들 휴가 의혹에 대해 국회 등에서 무려 27번이나 거짓을 말했다. 거짓의 일상화다. 법무부는 영어로 'Ministry of Justice'(정의), '정의부'다. 거짓으로 정의를 참칭하는 행태에 강준만 교수는 10월 펴낸 신간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에서 "모든 게 내로남불"이라고 더불어민주당, 정부를 비판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바르트의 함축(Connotation)…'권력 사유화'

추미애 장관이 정성호 민주당 의원이자 국회 예결위원장에게 14일 페이스북을 통해 '친애하는 정성호 동지에게'라는 글을 공개했다. 섬찟하다. 2020년 10월 10일 조선노동당 창당 75주년 열병식에서 김정은이 "친애하는 동지들! 영광스러운 우리 당 창건절이 왔습니다…"가 떠올라서가 아니다. 그보다 더 위험한 함축 의미(connotation)가 내포돼 있기 때문이다. 장관이 예결위원장을 민주당 동지로 부르는 것은 이들이 국가 권력을 사유화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롤랑 바르트의 기호학 해석을 빌리면 '동지'라는 기표(signifier)는 '같은 당 한편'이라는 기의(signified)이며 '동지=같은 당 한편'이라는 기호(sign)다. 그러나, 여기에는 국가공무원의 역할과 민주당원의 역할을 동일시하는 국가=민주당이라는 엄청난 '권력사유화'의 2차 의미, 즉 함축(connotation)이 도사린다. 사유화된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니 민주당 내 누구도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진중권은 13일 페이스북에 '매드우먼 하나에 법무부 기능 완전 상실'이라고 썼다. 어찌 법무부뿐이랴. 대한민국 통치 시스템의 붕괴다. 민주당, 우리가 곧 국가이니 의회를 제압한 루이 14세처럼 의회를 무시하며 거짓을 일삼아도 되는 나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일찌감치 예언한 문재인 대통령의 점술 능력에 혀를 내두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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