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리는 정부 원전 정책…지역경제 '사면초가'

입력 2020-11-15 17:28:00 수정 2020-11-15 20:07:37

[탈원전에 신음하는 경북] 지역 분열·공동화 현상 심각
영덕…8여년간 집 수리, 증축, 매매 금지 "전원부지 해제 주민 피해 보상을"
울진…건설중단 탓 상권 매출 60% 감소, 연간 지방세 전체 세금 58% 차지

경북 울진군 신한울 1·2호기 인근에서 바라본 신한울 3·4호기 부지 모습.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경북 울진군 신한울 1·2호기 인근에서 바라본 신한울 3·4호기 부지 모습.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문재인 정부의 급격한 탈원전 드라이브가 경북 영덕과 울진을 또 한 번 찢어 놨다.

원자력발전소를 처음 도입하려던 영덕은 천지원전력발전소 건립 찬반 갈등이 숙지기도 전에 '계획부지 해제'를 두고 의견 충돌이 뒤따랐다. 당초 약속대로 원전을 짓고 집단 이주를 시켜 달라는 측과, 당장 계획부지를 해제하고 재산권 피해를 보상해 달라는 측의 이해가 충돌하고 있다.

원전에 의존해 지역 경제를 이끌던 울진은 신한울원전 1~4호기가 운영·건립 보류에 처하면서 예상치 못한 불경기에 직면했다. 공사 인부와 원전 기술자 등 외지인으로 북적이던 북면도 조용한 시골로 전락했다.

◆영덕 "재산권 피해 보상하라"

지난 12일 경북 영덕군에서 만난 주민들은 원전 건립을 두고 10년이 넘도록 계속된 분열에 몸서리치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원자력발전소 설립을 계획했을 땐 '건립 찬반'으로,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드라이브를 펼치면서 '전원부지 지정 해제' 를 두고 사분오열됐다.

처음 갈등은 원전 건립을 두고 촉발됐다.

2009년 정부의 원전 건립 방침에 대해 찬반 여론이 첨예하게 대립했지만, 주민 여론 조사에서는 찬성 의견이 많았다.

정부는 2012년 9월 영덕읍 석리, 노물리, 매정리와 축산면 경정리 일대에 걸친 324만㎡ 토지를 천지원전 '전원개발예정부지'로 지정했다. 전원부지 지정 이후 주민과 지주들은 개발 제한 방침에 따라 집수리나 증축, 부동산 매매를 금지당했다.

정부는 2008년 제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따라 이 부지에 1천500MW 가압경수로형 원전을 4기 이상 지을 계획이었다. 영덕군도 인구 감소와 경기 침체 등을 원전 유치·가동에 따른 지원금으로 상쇄하겠다는 복안이었다.

하지만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2016년 9월 경주 지진이 발생하자 일시적으로 원전 건립 반대 여론이 더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 천지원전 예정지에 있던 한 펜션이 텅 비어있다. 이 펜션은 지난 2014~2015년 한수원 우선매수 기간에 주인이 일찌감치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준헌 기자 hjh@imaeil.com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 천지원전 예정지에 있던 한 펜션이 텅 비어있다. 이 펜션은 지난 2014~2015년 한수원 우선매수 기간에 주인이 일찌감치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준헌 기자 hjh@imaeil.com

한수원은 2016년 토지 보상 절차를 시작했다. 전원부지 내 가장 많은 주민이 사는 영덕읍 석리(128가구 거주)에 대해 서는 토지 매매를 전제로 한 집단 이주 지원과 보상금 지급도 약속했다.

대다수 주민은 한수원이 제안한 '우선 매수'를 거부하고 '일괄 매수'를 요구했다. 주민 일부라도 매각에 반대해 집단 이주가 무산될 것을 우려했다. 그럼에도 일부 지주가 우선 매수에 응해 61만5천㎡(291필지)를 430억원에 팔았다. 전체 예정부지의 18.95%다.

그러나 2017년 7월 문재인 정부가 '국정기획자문위원회 100대 과제'에서 영덕 천지 1·2호기 건립을 백지화했다. 이주를 기다리던 주민들의 장밋빛 꿈은 물거품이 됐다.

주민들은 2018년 석리를 중심으로 '천지원전생존권대책위원회'를 꾸려 청와대, 산업부를 방문, 탈원전 규탄 집회를 수차례 열었다. 이들은 전원부지 주민 생활환경 개선, 원전 건설 취소 지역 지원 등을 요구하고 있다.

원전 건립 재개를 주장하는 주민 김정미(가명·81) 씨는 "집을 제때 못 팔아 크게 후회가 된다. 지금이라도 원전을 지어 고생한 주민들 마음을 돌봐야 한다"고 했다.

전원부지를 해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진환(가명·59) 씨는 "이사도, 집 수리도 마음대로 못하는 게 말이 되느냐. 원전을 안 지을 거면 당장 전원부지를 해제해 주민 재산권을 돌려주고 피해도 보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탈원전 정책에 영덕군도 난감하다. 정부가 2014~2015년 지급한 '원전 자율 유치 특별지원금' 380억원 반납을 요구해서다. 영덕군은 이 돈을 군 금고에 보관 중이지만 추후 지원금을 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금융기관에서 292억원을 빌려 쓴 상태다.

오포지구 도시개발사업, 영덕 제2농공단지 조성, 영덕국민체육센터 건립 등에 지출했다. 지원금을 반환하면 영덕군은 빚더미에 오른다. 이를 포함해 영덕군이 추산한 천지원전 백지화 피해액은 설계수명 60년간 기대 이익인 3조7천억원에 달한다.

경북 울진군 북면 부구2리의 원룸촌이 낮에도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홍준헌 기자 hjh@imaeil.com
경북 울진군 북면 부구2리의 원룸촌이 낮에도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홍준헌 기자 hjh@imaeil.com

◆ 울진 "지역 경제 초토화"

지난 13일 오후 찾은 경북 울진군 북면. 원전 관련 업체 직원들로 북적였던 이곳은 다니는 이를 찾기 힘들 만큼 한산했다. '점포 임대' 펼침막을 내건 점포들 앞으로 드문드문 대형 화물차만 지나갔다.

공인중개사 이상철(70) 씨는 "북면은 IMF 때도 불경기가 없던 곳"이라고 했다. 바로 코앞에 한울 원자력발전소를 둔 덕분이었다.

편의점, 슈퍼마켓 매출도 눈에 띄게 줄었다. 편의점 점주 김모 씨는 "원전 유지 보수 기간에는 매출이 30% 이상 뛰곤 했다. 지금은 건설이 멈춘 탓에 매출이 평소 대비 60%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경북 울진군 신한울 1·2호기 인근에서 바라본 신한울 3·4호기 부지 모습.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경북 울진군 신한울 1·2호기 인근에서 바라본 신한울 3·4호기 부지 모습.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1980년 '울진원자력건설사무소'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터잡은 한수원 한울본부 직원은 2천173명. 지난 2018년 한울본부가 원전 6기를 가동하면서 낸 지방세액만 연간 559억여원으로 울진군 전체 세수입(964억원)의 58%에 달했다. 인구 유입으로 인한 간접 효과까지 고려하면 원전이 울진 지역 경제를 이끌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지역 경제는 사면초가에 몰렸다. 기존 6개의 원전 외에 건설이 사실상 완료돼 원자로 설치까지 마친 1·2호기는 허가를 받지 못해 미가동 상태다. 토지 매입을 끝내고 터파기까지 진행하던 3·4호기는 건설이 중단된 채 백지화도 건설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에 머물러 있다. 신(新) 원전 사업이 표류하면서 유입 인구도 크게 줄었다.

경북 영덕군 풍력발전단지에서 내려다 본 영덕읍 석리·노물·매정리 천지원전 예정지 일대 모습. 홍준헌 기자 hjh@imaeil.com
경북 영덕군 풍력발전단지에서 내려다 본 영덕읍 석리·노물·매정리 천지원전 예정지 일대 모습. 홍준헌 기자 hjh@imaeil.com

울진군에 따르면 공정률 30% 수준에서 중단된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백지화될 경우 향후 60년간 울진군이 입는 파급 피해만 67조원에 이른다. 원전 운영에서 파생되는 법정지원금·지방세 수입 등 직접 피해만 따져도 2조5천12억원가량이다.

한수원과 두산중공업이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백지화될 경우 원자로 설비와 터빈 발전기 사전 제작 등에 지출한 8천157억원의 손실을 입을 것으로 울진군은 추산했다.

주민들은 정부의 '탈원전 드라이브'가 본격화된 2018년을 기점으로 지역 경제가 급격히 위축됐다고 증언한다.

이희국 북면 발전협의회장은 "탈원전에 코로나19 여파까지 겹치면서 상권이 모두 죽었고, 지역 공동화도 심각한 상황"이라며 "신한울 1·2호기 건설로 4천~5천여 명이 울진에 들어왔고, 자연스럽게 3·4호기 건설로 이어진 뒤 원전을 기반으로 자생 가능한 경제가 갖춰지길 바랐지만 모두 허사가 됐다"고 말했다.

오희열 울진 범군민대책위원회 사무처장도 "부구2리와 죽변면 원룸들은 공실 투성이가 됐고, 집이 텅텅 비어 있으니 건물 관리에 손을 놓은 곳도 많다"며 "원전이 생기면서 감자나 매실, 사과 등 특수작물 농사는 꿈도 못 꾸게 됐다. 모두 원전 수혜를 염두에 두고 포기한 건데, 탈원전으로 이중고를 겪게 된 셈"이라고 했다.

기획탐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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