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재의 삶 갈피] 늦어도 11월에는

입력 2020-11-09 13:43:49 수정 2020-11-09 16:35:21

박 원 재 율곡연구원장
박 원 재 율곡연구원장

11월이다. 언제부턴가 11월이면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최승자, 「삼십세」)는 시 구절이 떠오르곤 한다. '11월'이라는 달이 지니는 어정쩡함,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나태주, 「11월」)의 어정쩡함 때문이다. 무엇을 새로 시작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또 그냥 이렇게 끝내기도 뭣한 애매함 같은 것.

11월을 '지난달과 별 차이 없는 달'이라고 했다는 아메리카 인디언 엘곤퀴족의 생각도 이랬을까? 아니면 11월을 아예 '이름 없는 달'이라 불렀다는 주니족보다는 그래도 덜 비관적이라고 자위해야 할까?

테와푸에블로라는 이름의 부족은 '만물을 거두어들이는 달'이라고 하여 11월을 결실과 연결 지었다지만, "가을에 거둔 곡식 얼마나 하였는고/ 몇 섬은 환자하고 몇 섬은 왕세하고/ 얼마는 제반미요 얼마는 씨앗이며/ 도지도 되어내고 품값도 갚으리라/ 시곗돈 장릿벼를 낱낱이 수쇄하니/ 엄부렁하던 것이 나머지 바이 없다."(「농가월령가」 11월령)고 한탄한 옛 농부에겐 그 결실도 풍요와는 거리가 멀었던 듯하다.

얼마 되지 않는 소출을 쪼개 보릿고개 넘기면서 빌린 환곡 갚고 나라에 세금 바치고 제수미(祭需米)와 내년 농사 씨앗으로 또 조금 남기고 소작료와 손 빌린 일꾼들 품삯까지 제하고 나면 겉만 번지르르할 뿐 남는 게 없다는 얘기니, 결실의 계절이라 하더라도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을 터이다.

산다는 건 늘 이렇듯 팍팍한 일일진대, 한 해의 마감을 예고하는 전령(傳令)의 달이 찾아오면 마음이 허허로워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혹여 월령가가 읊은 절기는 음력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 지금의 시간 흐름과는 다르다고 딴지를 걸 수도 있겠지만, 11월이든 12월이든 어차피 무엇을 새로 시작하기에는 저문 달들이니 그 차이라는 것이 얼마나 본질적일지 의문이다.

한 해를 개념 없이 너무 쉽게 살아온 건 아닐까? 올해는 꼭 이루리라던 새해 벽두의 결심까지 떠오르면 이 까닭 모를 후회와 초조의 감정은 깊어진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윤동주, 「쉽게 쓰여진 시」)라고 한 시인의 심정이 이런 것이었을까? "사람이 살다가/ 누구에겐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몇 사람이라도 꼭 들어줬으면 하는 말이/ 시라면// 나는 시를 너무 함부로 쓴다."(이상국, 「나는 시를 너무 함부로 쓴다」)는 자탄은 또 어떠한가?

습관처럼 한 해를 살아오면서 '누구에겐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몇 사람이라도 꼭 들어줬으면 하는 말'이 있었던가? 있었다면 그 말을 그 '누구'에게, 그 '몇 사람'에게 건넸던가? 11월을 맞는 소회가 이 방향으로 치닫기 시작하면 "아, 나는 십일월에 생을 마치고 싶었다."(류시화, 「십일월, 다섯줄의 시」)는 시구(詩句)로 눈이 가는 것은 정해진 순서이리라.

'영원'으로 '순간'을 위로하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다. "삭이지 못한/ 가슴 속 붉은 반점"(이민우, 「단풍, 혹은 가슴앓이」)을 마침내 하나씩 내려놓는 저 나목을 보고 "나무야 떨고 섰는/ 발가벗은 나무야// 시련 끝에/ 기쁨이 오듯이// 어둠이 가면/ 아침이 오고// 겨울 끝자락에/ 봄이 기다린단다."(허영자, 「나목에게」)며 짐짓 해탈의 위안을 전해도 다시 오는 그 '봄'은 억겁의 시간을 순환하는 자연의 것이지 찰나를 살다 가는 내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정히 바꿀 수 없다면 처연하지만 의연하게 받아들일 일이다. "낮도 저녁도 아닌 시간에/ 가을도 겨울도 아닌 계절에/ 모든 것은 예고에 불과한 고통일 뿐"(나희덕, 「11월」)이라고. 그러면 혹 모를 일 아닌가? "갑자기 햇살이 엷어지고/ 나뭇잎 하나 툭! 떨어져 내리면/ 나도 옷깃을 여며야 한다// 내일을 기약하는 마른 풀잎처럼/ 다시 마음을 다잡으리라/ 늦어도 11월에는"(김행숙, 「늦어도 11월에는」) 하는 호기(豪氣)가 생겨,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한용운, 「님의 침묵」)붓는 일이 일어날지.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