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민 시인· 도서출판 브로콜리숲 대표
우리는 배달민족이다. 광고가 아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정의에 우리 민족을 지칭하는 용어라고 나와 있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힘겨운 코로나를 견딜 수 있는 데는 배달(택배)이 큰 몫을 하고 있다. 내가 사는 동네에 이런 현수막이 붙었다. '10분 늦어도 좋으니 우리 아이의 안전을 지켜주세요.' 좋은 말이고 진심으로 안전을 부르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배달 민족의 안전은 누가 지켜 주나.
배달되지 않는 것이 없다. 다른 나라에서도 우리의 배달 서비스를 부러워한단다. 아침 해가 떠오르기도 전에 집 앞에 놓여 있는 식자재, 끓여내기만 하면 팔도 진미가 마련되는 신통방통한 나라에 살고 있다. 세상만사 물류 아닌 것 없다. 물건이 강물처럼 흘러 다닌다. 막히면 큰일이다. 넘쳐도 큰일이다. 하늘로 바다로 철도로 도로로. 무거운 것·가벼운 것, 먹는 것· 못 먹는 것 등. 어찌 보면 위대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물류 덕분에 우리는 연명하고 있다. 누구는 이랬다, 자기는 택배 안 시킨다고. 과연 그럴까? 지금 쓰고 먹고 입고 있는 모든 것은 물류를 통해서 완성된 것일 텐데 말이다. 택배 없이 살려면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택배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 '너무 힘들어요'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을 절박함과 사면초가에 가슴 시리다. 달리는 호랑이 등에서 뛰어내리지 못했던 시간의 중첩이 한량없다. 종일 모니터나 바라보는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오전에 시켰는데 오후에 배달된다'던 광고가 생각난다. 그런 속도여야 했던 모양이다. 빨라야 한다. 아니, 빨라야 산다.
내가 쓰는 시에는 유독 지렁이 같은 느린 동물들이 많이 나온다. 속수무책(인간의 눈에만)의 민달팽이도 나온다. 느린 속도(인간의 눈에만)로 사는 생명체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속도 지상주의의 세상과는 아주 많이 다를 것이다. 조금 오래된 얘기지만 1시간 안에 사진을 뽑아준다던 서비스, 어떤 피자는 국내 상륙했을 당시 주문과 동시에 15분이라는 시간이 카운트다운 되는 서비스도 선보였다. 15분 이내에 식지 않게 배달하겠다는 의지였을 것이다. 다행히 이 서비스는 지금은 사라진 듯하다. 세상 모두가 경주하듯 달리고 달려 승리한 자에게만 열광과 찬사를 보냈던 것 같다. 나무늘보가 가장 빠를 때는 나무에서 떨어질 때라고 한다. '아 이 참, 나 무 에 서 떨 어 져 버 렸 네, 다 시 올 라 가 야 겠 다.' 우리는 이 띄어쓰기조차도 참기 어려울지 모르겠다. 누군가의 일을 대신 해 주는 일, 나의 수고를 누군가가 맡아 해 준다는 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한다. 택배 기사의 무뚝뚝함을 이해해야겠다. 이 지경에서 친절을 바랐다니 부끄럽기까지 하다. 택배 주문을 자제한다는 소비자 움직임도 들리고 있지만 그게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종이 상자에 구멍이 뚫리고 조금 늦어도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이 우리에게 장착될 때 배달 민족이 살 수 있지 않을까.
시인의 하루를 보내다가 밤 10시 택배기사와 집으로 올라가는 승강기 앞에서 마주쳤다. 하루는 얼마나 긴 것인가. 도대체 끝은 있는 것인가. 여섯 개들이 2ℓ 생수가 1t 탑차에서 바닥으로 쿵! 내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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