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뭉우리돌, 모난 데 없이 둥글둥글하게 생긴 큼지막한 돌이다. 모난 곳도 없고 둥글둥글하니 사람으로 치면 세상 살기 편할 것 같은데, 이 뭉우리돌은 일제강점하에서 참 많은 고초를 겪었다.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를 보면 왜놈들이 자신을 그리고 독립투사를 뭉우리돌이라 표현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서대문형무소에서 고문을 받던 선생에게 일본 순사는 이런 말을 한다. '지주가 전답에서 뭉우리돌을 골라내는 것이 상례'라고 말이다. 밭에서 고작 돌을 골라낸다고 해서 대한이 일제의 것이 되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순사의 조롱에 김구 선생은 '오냐, 나는 죽어도 뭉우리돌 정신을 품고 죽겠고, 살아도 뭉우리돌의 책무를 다하리라'고 다짐한다.
192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독립 전쟁의 해'를 선포하며 일제와의 전면적인 독립전쟁에 나선다. 올해가 2020년이니 바로 독립전쟁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정확히 100년 전, 10월 21일 아침부터 10월 26일 저녁까지 만주 일대의 독립군을 초토화시키기 위해 2만여 명의 일본군이 동원됐다. 우세한 화력과 병력을 갖춘 일본군이었지만 김좌진, 나중소, 서일, 이범석, 홍범도가 지휘하는 만주 지역 독립군 연합부대가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런데 왜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인 홍범도 장군의 묘소는 카자흐스탄에 모셔져 있는 걸까. 그런 위대한 분들이 왜 그런 곳에서 돌아가셨는지 생각해 본 적도 없던 우리의 무지함을 자각한 뒤, 세계에 남겨진 독립운동의 흔적을 기록하기 시작한 사진가가 바로 김동우다.

멕시코, 쿠바, 미국, 네덜란드,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중국, 인도까지 김동우는 아프리카, 남미, 호주 등을 제외한 전 세계에 우리의 보석 같은 독립운동 사적지가 흩어져 있다고 한다. 먼 옛날이야기처럼 막연하게 드리워졌던 역사를 눈앞에서 마주하는 생생함, 비로소 가슴 아픈 역사가 받아들여지고 먹먹해진다.
취재를 하다 보니 나라를 떠났는데 돌아갈 나라가 없어져 버려 이민의 역사가 독립운동의 역사로 발전된 곳도 많았다고 한다. 철저하게 조사를 해서 갔건만 막상 가보면 과거의 모습이 완전히 지워진 곳도 많았기에 아무 흔적조차 없는 장소에서 과거를 소환하는 일은 여간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독립군 양성을 위해 만주에 세운 신흥무관학교 터는 옥수수밭으로 변해 버렸고, 북간도 동굴 벽에 새겨진 태극기는 말로만 전해지던 곳을 그가 세상 밖으로 드러낸 것이다. 낙석이 생기는 아찔한 절벽을 기어올라 당도한 그곳에서 마주한 태극기, 우리는 기억해 주지 못했건만 독립군이 새겨 놓은 태극기는 아직 너무도 선명해 눈시울이 붉어졌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감정을 추스르며 글을 쓰려는데 모니터 앞에만 앉으면 자꾸 엉엉 울게 됐다는 김동우 사진가. 괜히 이런 작업을 해서 왜 이렇게 아파야 하는지 후회가 됐다지만 마치 이 시대의 뭉우리돌처럼 독립운동의 흔적을 추적해 온 그 덕분에 우리는 귀한 역사를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100년이란 시간, 우리의 기억 속에 독립전쟁은 얼마나 남아 있을까. 옅어진 역사의식에 마음이 무겁다면 100년 전 수많은 뭉우리돌의 저항 정신이 담긴 사진 속에서 잊어버린 역사를 되새겨보길 바란다.

석재현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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