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세 대학생 박선민 씨 "교문 들어서면 가장 설레는 순간"

입력 2020-11-01 14:21:24 수정 2020-11-02 07:32:59

팔순에 '19학번' 수성대 사회복지과 학생
30여년 환경미화 업무 10년 전 퇴직…한글 모르는 이들에 봉사하려 도전
"67세부터 초교 2년·중학교 3년·고교 9년만에 검정고시 통과 후 대학 생활"

30일 대구 달서구 자택에서 만난 박선민 씨가 자신이 공부한 수능 준비 서적을 펼쳐보이고 있다. 이통원 기자. tong@imaeil.com
30일 대구 달서구 자택에서 만난 박선민 씨가 자신이 공부한 수능 준비 서적을 펼쳐보이고 있다. 이통원 기자. tong@imaeil.com

"배우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나이는 방해되지 않습니다."

30일 대구 달서구에서 만난 수성대 사회복지과 학생 박선민(82) 씨는 "1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지만, 교문을 지나는 순간만큼은 내 생에 가장 설레는 시간"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박선민 씨는 30여 년 간 대구지역 경찰서에서 환경미화 업무를 수행해오다 10여 년 전 퇴직했다. 이후 그는 사회복지관에서 한글을 모르는 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에 도전했다. 그러나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그에겐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는 "학력의 문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라며 "사람들을 도우려고 해도 조건을 맞춰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67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부터 초등학교 2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9년을 노력한 끝에 모두 검정고시에 통과했고, 지금은 대학 생활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음악과 같은 실기 과목은 혼자 공부하기가 어려워 초등학교 등에서 직접 수업을 청강하기도 했다"며 "당시 손자, 손녀뻘인 친구들과 공부했지만,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기에 부끄럽거나 불편한 것은 없었으며 정말 고마웠다"고 전했다.

그가 이처럼 노력한 결과, 2019년 입학 당시 수성대를 비롯한 구미대, 호산대, 대구공업대 등에도 합격했었다. 박 씨는 "거리가 먼 곳도 있었지만,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는 곳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했었다"며 "학교에 가면 언제나 마음이 평온해져 방학 때도 학교에 들르곤 한다"고 지난해 방학을 회상했다.

올해 초 어깨 부상으로 거동이 힘들었던 박 씨는 지난 한 학기 동안 휴학했었다. 그는 "올해 초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수업이 이뤄지지 않아 학교에 가지 못했는데, 학교가 그리워 들리러 가던 길에 지하철 계단에서 넘어져 다치기도 했다"며 "건강해야 공부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열심히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학기에는 온라인 수업을 듣다가 지난 19일부터 대면 수업으로 전환해 학교에 다니고 있다"며 일상을 전했다.

학생이라는 직업으로 제2의 인생을 사는 그는 무공수훈유공자 배우자로 보훈청의 교육 지원도 받는다. 그는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영어가 너무 어려웠는데, 시험을 치고 성적이 낮아 혼자 울기도 해봤다"며 "그래도 노력하면 안 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선생님과 함께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9·2020학년도 대구 최고령 수능 응시자인 박 씨는 2022학년도 수능을 치르기 위해 준비 중이다. 그는 "고득점을 받기 위해 수능에 도전하는 것은 아니지만 목표로 삼은 200점을 이뤄내기 위해 노력 중"이라며 "나이가 들어도 해낼 수 있다는 긍정의 힘을 전파하고 싶다"고 말했다.

왕복 2~3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다니며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그는 내년 7월 졸업 후 편입을 할 생각이다. 그는 "지난해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공부를 하러 갔다"며 "성실하게 공부를 하다 보니 4년제 대학에 들어가 더 배우고 싶어졌다"고 진학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박 씨는 공부뿐만 아니라 레크리에이션 1급·행복코칭 지도사, 웃음치료사 등도 취득했다. 그는 "공부를 마치고 노인복지나 사회봉사를 위해 남은 생을 살고 싶다"라며 "조금이나마 지역사회의 문맹률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또 "포기하지 말고 모드 사람들이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