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자치' 없는 자치경찰제

입력 2020-11-01 15:00:00 수정 2020-11-01 18:01:09

강원경찰 직장협의회가 24일 오전 강원 춘천시 강원도청 앞에서 자치경찰제 시행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원경찰 직장협의회가 24일 오전 강원 춘천시 강원도청 앞에서 자치경찰제 시행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교영 경북본사 본사장
김교영 경북본사 본사장

당정청이 자치경찰제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12월에 법이 통과되면 내년 1월 시행된다. 자치경찰제는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급물살을 탔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촉발이 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월 "경찰법과 국정원법, 두 개의 큰 입법 과제가 남았다"고 했다. 경찰법 개정안은 자치경찰제 도입과 국가수사기관 설립 등을 포함한다. 김대중 정부부터 논의된 자치경찰제가 두 달 뒤면 현실이 된다.

그러나 톺아보면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시민들이 자치경찰제를 모른다. 지인 10명에게 '자치경찰제를 아느냐'고 물어봤다.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3명이 개념 정도를 파악하고 있을 뿐이다. 나머지는 모른다고 했다. 심지어 '자율방범대가 바뀌냐'고 되묻기도 했다. 치안 서비스는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자치경찰제는 공급자와 치안 서비스의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한다. 이렇게 중요한 제도가 사실상 '깜깜이'로 추진되고 있다.

경찰 내부 반발도 있다. 피켓 시위와 비판 글이 잇따르고 있다. 현장 의견 수렴 없이 법안이 추진되고 있다는 이유다. 한 경찰 간부는 "논란이 있다. 경찰 조직이 어수선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당정청은 7월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을 나누는 기존 이원화 방안이 아닌 국가경찰 안에서 자치경찰 사무만 분리하는 일원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원화 불가 이유는 ▷코로나19에 따른 재정 악화로 기구 신설 등에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 ▷경찰관 4만3천 명에 대한 지방직 전환이 필요한데, 희망자 부족 시 충원이 어렵다는 점 등이다. 반면, 일원화는 현재의 단일 조직 체계를 유지하는 게 골자다. 그래서 안정적이고 효율적이라고 한다.

쉽게 설명하면 일원화 자치경찰제는 이렇다. 현 지방경찰청의 조직과 인원은 그대로 두면서 자치경찰 사무만 구분하는 것이다. 자치경찰 사무는 ▷생활안전 ▷교통경비 ▷여성·청소년 관련 업무 등이다. 경찰관 신분은 지금처럼 국가직이다. 지방경찰청에는 경무관급 간부가 자치경찰 사무를 총괄한다. 이 경무관급 간부는 시·도지사 소속의 시·도자치경찰위원회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 또 시·도자치경찰위원회는 자치경찰 사무에 한해서 지방경찰청장을 지휘·감독할 수 있다.

경찰청은 최근 일원화 자치경찰제 권역별 간담회를 개최했다. 하지만 현장 경찰관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간담회가 아니라 일방적인 설명회였다는 것이다. 일원화 반대 목소리도 거셌다. 경찰 조직의 큰 변화(이원화)를 기대했는데, 일만 늘게 됐다고 한다. 지방경찰청 공무원직장협의회 등은 "일원화 안은 현재 경찰법에 자치행정 사무를 편입해 무늬만 자치경찰을 시행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고 지적한다.

자치경찰제는 치안 행정과 지방 행정의 연계성 확보, 경찰 권력의 지역 분산 등을 위해 추진됐다. 일원화 안은 이런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 제주도에서 시범 운영 중인 것만도 못하다. 앙꼬 없는 찐빵이다. 자치경찰의 조직은 없고, 자치경찰의 사무만 있을 뿐이다. 자치 없는 자치경찰제다. 이런 토대에서 지역밀착형·지역맞춤형 민생 치안은 언감생심이다. 시·도지사협의회는 지난 9월 시·도지사에게 자치경찰 인사와 조직에 관한 권한을 보장해 달라는 입장문을 국회와 정부에 전달했다.

자치경찰제는 지방 분권 이념의 산물이다. 자치경찰제의 골자는 사무·인력·조직·예산을 시·도로 넘기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가 여전히 모든 것을 쥐고 있다. 자치경찰제란 말이 공허하다. 권력기관 개혁의 지향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정권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국민에 대한 섬김이다. 자치경찰제를 포함한 경찰 개혁도 그렇다. 졸속 추진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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