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차라리 윤석열 해임을 건의하라

입력 2020-10-25 14:44:57 수정 2020-10-26 00:20:48

노동일 경희대 교수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검찰청 국정감사를 마친 뒤 차량에 탑승한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 표정. 연합뉴스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검찰청 국정감사를 마친 뒤 차량에 탑승한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 표정. 연합뉴스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장관도 총장도 편들기 싫다. 여당도 야당도 손들어주기 싫다. 꼴 보기 싫고 역겨울 따름이다. 법무부 장관도 검찰총장도 국회의원도 모두 주권자인 국민을 대신하여 나라 일을 보는 사람들이다. 언필칭 공복이라 하지만 한마디로 머슴들이다. 주인의 시선은 아랑곳없이 머슴들끼리 멱살잡이를 하는데 누구 편을 들고 누구 손을 들어준다는 말인가.

문을 닫는 공장과 가게들이 날로 늘어가는 대한민국의 위기 상황이 그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가. 공직자들이 밤을 새워 머리를 맞대도 모자랄 판이다. 아침부터 새벽까지 하는 일이 시정잡배보다 못한 막말과 삿대질 공방이라니. 꼴 보기 싫고 역겹지 않으면 이상하다.

법무행정, 검찰 개혁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마구잡이 장관에 안하무인 총장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합리적으로 그런 일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절차가 마련되어 있다. 문제된 수사지휘권도 검찰청법에 정해진 대로 행사하면 그만이다.

2005년 서울중앙지검은 강정구 동국대 교수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했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방침을 보고 받은 천정배 법무장관은 헌정 사상 첫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천 장관이 김종빈 총장에게 수사지휘서를 보내 불구속 수사를 지시한 것이다. 김 총장은 천 장관의 지휘를 수용하면서 사직의 변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김 총장은 "역대 장관이 지휘권 행사를 자제한 것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 우려 때문이다. 장관이 구체적 사건의 피의자 구속 여부를 지휘한 것은 심히 유감이다"면서도 "지휘권 행사가 타당하지 않다고 따르지 않는다면 총장 스스로 법을 어기게 된다"고 했다. 수사지휘권 행사의 모범 사례이다.

검찰총장이 검찰 수사를 지휘하지만 법무부 장관은 수사와 관련해서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장관은 검찰총장을 통해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법무부 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는 검찰청법 제8조의 정신이 그것이다.

추 장관은 이른바 검·언 유착 사건과 라임사건 관련 두 번이나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 헌정 사상 몇 번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 훼손 우려 때문에 자제해야 하지만 꼭 필요하다면 발동할 수 있다. 문제는 검찰총장을 배제하는 지휘권 행사이다. '검찰총장만을 지휘한다'는 규정을 볼 때 총장의 지휘권을 박탈하고 장관 스스로 사건 처리 방향을 지시하는 것은 위법 소지가 있다.

윤석열 총장 역시 문제가 있긴 마찬가지다. 장관의 지휘권 행사가 위법·부당했다면 따르지 말았어야 한다. 최소한 위법·부당함을 지적하고 이의를 제기했어야 한다. 본인 스스로 위법·부당한 지시는 따를 필요가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뒤늦게 국회에 출석해서 책상을 두드리며 큰소리 치는 걸 작심발언이라고 박수 칠 이유가 없다. 마구잡이 장관에 안하무인 총장이라고 한 건 그런 이유에서다.

윤 총장 사퇴 압박은 추 장관만이 아니다. 여당 의원들은 물러나라는 말을 아예 노골적으로 한다. 정의로운 검사라며 윤석열 검사를 칭송해 마지않던 자신들의 발언이 멀쩡하게 존재하지만 말을 바꾸는 데 추호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정치는 그래야 하는지 몰라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이다.

적폐청산 과정에서 사갈시하던 인사에 대해 이제 대망론까지 펼치는 야당 역시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기는 마찬가지다. 어쨌든 이런 혼란이 지속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나라의 기강이 허물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윤 총장의 말처럼 문재인 대통령이 윤 총장을 재신임한 게 사실이라면 여권은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 장관도 의원들도 윤 총장 사퇴 압박을 중지해야 한다. 하지만 윤 총장이 도저히 그 직을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면 여당은 정식으로 해임을 건의해야 마땅하다.

해임은 못하고 스스로 물러나게 해야만 할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야당 정치인 수사를 하지 않고, 측근과 가족 수사에 관여한 검찰총장이라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한시라도 직에 머물 수 있는 자격이 없다. 공식적으로 해임을 건의하여 인사권자의 판단을 구해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는 언행을 이쯤에서 그치기 바란다. 인사권자는 대통령이지만 궁극적 인사권자는 국민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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