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의 갈림길, 나가사키/ 서현섭 지음/ 보고사 펴냄
일본 가톨릭의 성지라 불리는 '작은 로마'이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 투하의 비극을 지닌 나가사키에는 또 다른 이름이 있다. 에도막부 쇄국 시대, 일본이 나가사키에 '데지마'라는 해외 무역 창구를 마련하면서 나가사키는 일본 근대화의 디딤돌이 됐다.
◆일본 근대화의 분기점, 나가사키
도쿄, 후쿠오카, 요코하마, 나가사키에서 외교관과 대학교수로 18년을 지낸 서현섭은 이 경험을 바탕으로 나가사키와 근대화와 대해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해 신간 '한중일의 갈림길, 나가사키'를 펴냈다.
그는 근대화를 태동시킨 나가사키시를 중심으로 나가사키의 역사와 문화, 나가사키와 한국, 중국과의 관련되는 이야기를 총망라해 모두 담았다. 한 권의 '나가사키 아카이브'를 만든 셈이다.
책은 '근대화의 출발점 나가사키' '근대화의 디딤돌 나가사키' '나가사키의 빛과 그림자' '나가사키에 드리운 조선의 그림자' 등 총 4부로 구성돼있다. 나가사키와 관련된 역사, 사회, 인물, 한국·중국과의 관계를 총망라해 들여다보며, 사진물과 그림 자료가 곳곳에 삽입돼 이해를 돕는다.
일본 열도 서쪽 끝에 위치한 나가사키는 고대로부터 대륙과 일본을 잇는 가교 역할을 했으며, 막부의 직할령으로 일본 유일의 무역항으로 번영을 누려 왔다. 또한 대륙과 서양에서 유입된 외래문화와 일본 문화가 융합되어 나가사키만의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었다.
2018년 현재 나가사키현의 가톨릭교회에 소속되어 있는 신자 수는 약 6만2천 명으로 현 전체 인구의 약 4.4%다. 일본 전체의 가톨릭교회 신자는 전체 인구 대비 약 0.34%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나가사키가 '작은 로마'라 불리는 이유를 알 만하다.
쇄국 시대에 일본이 나가사키에 데지마라는 서양을 향한 통풍구를 마련하면서부터 한국과 일본은 전근대와 근대의 갈림길에 들어서게 된다. 이를테면 나가사키는 한중일 근대화의 분기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카스텔라 고향, '나비부인' 배경…나가사키의 여러 면면
에도 막부(1603~1867)는 권력의 확립과 유지를 위해 통상의 상대와 교역항을 제한하는 '쇄국정책'을 택했다. 그러나 에도 막부가 대외 교류를 전면적으로 금지한 것은 아니며 일본 역사 교과서에는 에도시대 국제 관계를 쇄국 일변도로 기술하기보다는 나가사키, 사쓰마, 마쓰마에, 쓰시마 등 '네개의 창구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16세기 중엽까지 한촌에 불과했던 나가사키는 포르투갈인이 도래하면서 일본 유일의 무역항으로 주목을 받게 됐다. 도쿠가와 막부는 1634년 나가사키의 유력 상인 25명에게 공사비를 갹출해 '데지마'라는 부채꼴 모양의 인공섬을 만둘어 포르투갈인을 수용했다. 이후 1641년 히라도의 네덜란드 상관을 데지마로 이동시키면서 데지마 상관은 일본에서 유일한 서양 문화 전래 창구가 됐다.
이처럼 에도시대 일본은 쇄국을 표방하면서도 나가사키의 데지마 상관을 통해 국제 정세 변화를 탐지하고 천문, 지리, 의학 등의 서양학문을 수입해 배우고 익혔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유럽상관의 각축장 히라도, 국제적 환락가 마루야마, 중국인 격리 장치 도진야시키, 짬뽕의 발상지 시카이로 등에 대한 소개가 실려있다. 나가사키 카스텔라, 덴푸라를 소개하는 장은 미식가 독자의 눈길을 끌고, 오페라 3대 걸작 중 하나인 '나비부인'이 나가사키를 배경으로 미국 해군 중위와 일본 게이샤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는 나가사키에 씻을 수 없는 상처다. 당시 나가사키는 미쓰비시 나가사키 조선소의 세계 최대급 전함 무사시의 건조, 나사사키 병기 제작소의 어뢰 제조 등 군수공업적 성격이 강한 도시였다. 원폭 투하로 인한 사망자는 나가사키시 24만 시민 중 약 7만 4천 명, 부상자는 약 7만 5천 명으로 추산된다. 현재 원자폭탄 투하 중심지와 그 주변에는 원폭자료관, 평화공원 등 관련 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저자는 "근대화를 태동시킨 나가사키라는 무대에 등장한 일본인들의 왕성한 지적 호기심, 정통과 이단을 가리지 않은 유연한 사고방식, 그리고 철저한 프로정신이 일본으로 하여금 한국, 중국과는 다른 역사적 길을 걷게 했다는 역사의 단면을 평이하게 풀어 보았다"며 " 동아시아 속 일본과 일본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264쪽, 1만5천원.
▷저자 서현섭은
주일한국대사관 발령을 계기로 일본과 인연을 맺어 주일대사관 참사관, 후쿠오카 총영사, 요코하마 총영사 등을 역임했다. 부경대학 초빙교수, 일본 규슈대학 특임교수, 나가사키 현립대학 교수 등을 지냈고, 현재는 나가사키 현립대학 명예교수로 일산 노인종합복지관에서 일본 신문 사설 강독을 맡고 있다.
'일본은 있다' '지금도 일본은 있다' '일본인과 에로스' '일본인과 천황' '근대조선의 외교와 국제법 수용' '모스크바 1200일'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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