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진 LH 대구경북지역본부장
인간은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한다. 집, 학교, 사무실 등 물리적인 공간은 매우 중요한 환경이다. 학생들의 창의성이 떨어지는 이유를 수십 년 동안 변하지 않은, 감옥과 다름없는 획일적인 학교 건물 때문이라고 역설하는 학자도 있다. 윈스턴 처칠은 일찍이 '인간이 공간을 만들지만 또한 그 공간이 인간을 만든다'고 했다. 도시 또한 인간이 만든 공간이지만 인간은 도시의 자연환경, 시설물, 다양한 활동에 의해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다.
도시계획은 인간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도시의 공간계획을 짜는 것이다. 인구, 산업구조, 경제 규모, 사회문화적 요구 등 다양한 변수를 토대로 설계되어진다. 인구수는 가장 중요한 변수이다. 인구가 늘어나면 기본적인 인프라 수요가 증가하고 주택 공급도 늘어나야 한다. 하지만 지방 중소도시의 인구는 최근 10년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산업구조 변화도 중요한 변수이다. 1960년대 이후 제조업 중심으로 대량 고용이 이루어졌으나 2000년대 이후 첨단산업과 서비스 위주 산업이 발전하면서 상대적으로 더 적은 고용, 더 적은 공간을 필요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도시계획은 과거의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여 수립되는 경우가 많다. 시·군의 인구 추계는 항상 늘어날 뿐 줄어들지 않는다. 엄청난 길이의 도로를 건설해야 하고 새로운 공장과 아파트 건설을 위한 토지개발은 계속 이어진다. 이로 인해 도시 경계는 외곽으로 끊임없이 확산돼 왔으며 상대적으로 원도심은 점점 쇠퇴하고 생활환경은 열악해져 왔다. 예산 사용은 비효율적이고 주민들의 세부담은 증가한다.
이제 도시공간의 중장기적인 발전계획을 수립함에 있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우선 도시 간, 지역 간 협력과 연대의 틀을 갖추어야 한다. 인구, 노동력, 기반시설, 주력산업, 역사, 문화, 지리적 여건 등에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도시를 거점으로 하고 이를 중심으로 주변 도시와의 연계성을 강화하여야 한다. 거점도시들 간에도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높여야 한다. 최근 대구시와 경상북도의 행정 통합 논의는 이러한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다음으로 단일도시 내에서는 물리적인 도시 확장보다는 기존 원도심 활성화에 더 많은 역량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 정부에서도 이미 매년 10조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해 도시재생뉴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도시재생이 복잡한 도시 문제 해결을 위해 물리·환경적, 경제적, 사회적 해결책이 망라된 종합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지만 형식적 틀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도시재생의 개념을 정립한 피터 로버츠 교수의 지적처럼 계획은 언제나 수정될 수 있으며, 분야별 전략들을 반드시 한꺼번에 같은 속도로 진행할 필요도 없다. 지역 여건에 따라 도로, 주차장 확보 등 물리적인 환경 개선만을 다룰 수도 있고, 재개발·재건축 중심의 정비사업을 추진할 수도 있으며, 주민 역량 강화 프로그램만을 제공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도시공간 계획 수립에서도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는 거버넌스 구축을 제도화해야 한다. 국가, 광역시도, 기초단체 등 각 위계별로 공무원, 전문가, 학계, 지역 주민, 시민사회단체 등으로 구성된 협의체를 만들고 여기서 결정된 사항이 계획에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특정 정치세력이나 자본권력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명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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