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영주댐의 비극

입력 2020-10-29 15:27:02 수정 2020-10-29 18:55:58

박일선 전국댐피해극복협의회 의장

박일선 전국댐피해극복협의회의장
박일선 전국댐피해극복협의회의장

학교만 갔다 오면 가방을 던져 버리고 강으로 달려갔다. 올갱이 잡고 모래무지, 수수미꾸리, 피라미와 숨바꼭질할 수 있는 '달내'(獺川)는 하늘이 주신 놀이터였다. 내 자식도 누릴 수 있었던 이런 행복한 공간은 충주댐 건설로 영영 사라졌다.


언젠가 경북으로 마을 답사를 다니던 때가 있었다. 그러던 중 내성천을 만나게 됐다.


나지막한 산 아래 오순도순 모여 있는 아름다운 한옥촌보다도 발길을 먼저 끌어당긴 것이 있었다. 드넓은 황금 모래밭, 잠자듯 흘러가는 '내'(川), 물결에 닿을 듯 말 듯 태극을 그리며 겸손히 놓인 외나무다리였다. 어쩌면 이런 완벽한 조화가 있을까. 천지인(天地人) 삼신합일(三神合一)이 예로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마치 엄니 배 속 양수에 떠 있던 태아의 평온함이 느껴져 오는 듯했다. 댐으로 빼앗긴 달래강의 아름다움이 내성천엔 고스란히 살아 있었다.


그런데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영주댐 건설 후 내성천은 옛 모습을 크게 잃었다. 그 많던 고운 황금 모래는 어디로 가고 버드나무와 풀숲이 모래사장을 덮고 있다. 명경지수 같던 내성천은 썩고 악취가 나기까지 한다. 1급수 어종은 사라졌다. 마치 잘 살고 있던 사랑하는 이가 어느 날 느닷없이 괴한에게 납치돼 험한 일을 겪고 눈앞에 서 있는 것 같은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이 가슴을 뒤덮는다.


이런 희생을 치르고 세워진 콘크리트 산 영주댐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내성천보존회 자료에 따르면 2016년 7월 시작된 준공검사는 '2017년 1월 준공검사 종료, 19.5% 수위에 그친 채 끝내 방류, 준공검사 불합격'됐다.


이어진 2017년 7월 2차 검사는 '2018년 3월 준공검사 종료, 18.8% 수위에 그친 채 끝내 방류, 준공검사 불합격'되었다니 믿기지 않는다. 토목 기술이 세계적인 대한민국에서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왜 지금까지 사회문제화되지 못했는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환경부 '영주댐 처리 방안 마련을 위한 협의체'(이하 협의체)는 지난 15일 방류를 결정했다. 이에 영주 지역 단체들은 천변에 천막을 치고 방류 중단 철야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7일 환경부 국장 등이 현지를 방문해 영주 지역민과 간담회를 가졌다.


영주시장은 '영주댐 처리 방안을 위한 협의체'를 재구성할 것과 환경부와 영주시가 '영주댐 관련 용역을 공동으로 발주'할 것을 제안했다. 이는 당연한 요구다.


환경부 입맛에 맞는 외지인들로 조직을 만들어 영주댐 문제를 결정하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 그동안 영주댐 관련 반복된 용역도 정부와 수자원공사에 의해 일방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런 결과를 영주 지역과 내성천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순순히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는가? 갈등 해결은 그 주체를 중심으로 논의 기구를 만들고 일부 전문가들이 참여해 해결하면 된다. 환경부는 이제라도 지역민 의견에 귀 기울이길 바란다.


충주댐이 건설될 때 대통령은 '세계적인 호반관광도시'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그 뒤에도 선거 때만 되면 이런 공약은 단골이었다. 35년이 지난 지금 수리권(水利權)은 박탈돼 지역 발전은 후퇴하고 인구도 준 채, 그간 말잔치는 공약(空約)이 되고 말았다. 대한민국 어디에도 댐 때문에 행복해진 곳은 없다. 방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물이 새고 수없는 균열이 생긴 댐체 안전성 여부다. 왜 두 차례 준공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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