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속 문 닫는 경북 초·중·고교] 폐교 지역 경제 둔화·슬럼화
폐교율 높은 지역일수록 '소멸위기'…영양 가장 심각, 의성 군위 영덕 순
학교 문 닫자 학습·여가시설 줄폐업…일자리 줄고 빈집 늘고 공동화 심각
초·중·고등학교 폐교는 지방소멸의 원인이자 과정이며 결과다. 폐교는 ▷신혼부부 및 중장년 감소 ▷신생아·학령인구 감소 ▷학교·일자리 등 이주 기반 감소 ▷노후화 및 노년층 이탈·사망 ▷지방소멸의 악순환 고리 한가운데 존재한다.
폐교된 지역에는 학부모와 학생뿐만 아니라 주민들까지 활력을 잃고 있다. 주인 잃은 빈집들도 황폐한 분위기를 더하고 있다.
◆폐교율 높으면 지방소멸 '위기'
경북 내 폐교율이 높은 지역이 지방소멸 가능성이 더 컸다.
매일신문 기획탐사팀은 경북도교육청으로부터 받은 초·중·고등학교 수와 폐교 학교 수를 분석했다. 그 결과 폐교율이 높은 지역일수록 지방소멸 위험지수가 가장 심각한 '위기' 등급에 처해 있었다.
지방소멸 위험지수란 20~39세 가임기 여성 인구를 노인 인구로 나눈 값이다. 이 지수가 0.5 미만으로 떨어지면 소멸 '위험' 지역, 0.2 미만이면 '위기' 지역으로 본다.
폐교율이 가장 높은 영양군은 총 46곳의 학교 중 69.6%에 이르는 32곳이 폐교됐다. 97곳 중 63곳이 폐교된 의성군(65.6%)과 40곳 중 25곳이 폐교한 군위군(62.5%)이 뒤를 이었다. 영덕군(60.3%), 봉화군(59.7%), 예천군(59.3%), 울릉군(58.8%), 청송군(56.0%), 청도군(53.2%) 등지가 2~9위로 집계됐다.
폐교율 상위 9개 지역 가운데 예천·울릉은 다소 심각한 지방소멸 '위험' 등급, 다른 7곳은 매우 심각한 '위기' 등급으로 나타났다.
반면 폐교율이 가장 낮은 시·군은 경산시(13.2%)와 구미시(14.4%), 칠곡군(17%) 등 순이었는데, 모두 소멸위험지수가 '양호'나 '주의' 수준으로 낮았다.
폐교 증가세에 따라 경북 내 지방소멸 '위기' 지역도 함께 늘었다.
지역별 폐교 추이를 보면 1990~2000년, 2010~2020년 각각 경북 도내 폐교 수가 평소 대비 증가했다. 특히 '위기' 지역 의성군과 봉화군은 1990~2000년 급격한 폐교 증가세를 보인 뒤 2015년 이후 다시 한 번 급증세를 보였다.
비슷한 시기 경북 기초자치단체의 지방소멸 위험지수도 동반 하락했다. 2014년 경북 내 지방소멸 '위기' 지역은 군위군, 의성군 2곳에 그쳤다. 이후 2017년 청송군과 영양군이, 2018년엔 영덕군과 청도군, 봉화군이 각각 추가됐다. 2018년 '위험' 지역에 접어든 김천시 역시 지난 2015년 이후 폐교 수가 뚜렷이 늘었다. 다른 시·군도 대부분 지방소멸 위험지수가 하락세다.

◆폐교 영향으로 마을 상권 쇠락
경북 상당수 읍·면·동 지역은 30~50대 학부모 세대가 거주를 기피하면서 인구 감소세가 뚜렷했다. 학생 수도 줄어 폐교로 이어졌다. 학교가 사라지면서 귀농 인구도 줄었다.
폐교로 경제 순환도 끊겼다. 학용품, 교보재, 교복과 급식에 드는 식재료, 체육·보건에 드는 운동기구와 의약품 공급이 중단된다. 영양사·조리사·물류업자 등의 일감도 사라진다.
학교 주변 놀이시설·PC방·체육관 등 학생 여가·운동시설과 학원·공부방 등 학습 시설, 슈퍼마켓·문구점·분식집·서점 등이 줄줄이 문을 닫는다.
실제 경북 김천시 지례면에선 폐교한 지례중학교(2017년), 김천상업고등학교(2019년)를 기반으로 성업하던 주변 상권이 완전히 무너졌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김천상고 교문 맞은편 시내버스 정류소 주변에선 문구점, 분식집, 서점이 줄지어 있었다. 주민들은 학생들을 상대로 학용품이나 먹을거리 등을 팔아 생계를 이어갔다. 주변 읍·면에서 김천상고까지 원거리 통학하던 학생들에게 집 한 칸을 자취방으로 제공했다.
학생이 줄자 상권도 죽었다. 지례중에 이어 지난해 김천상고까지 문을 닫으면서 지금은 슈퍼마켓 하나만 남았다.
40년 넘게 슈퍼마켓을 운영한 70대 주인 권모 씨는 "20년 전만 해도 우리 집에 남은 방을 김천상고 학생들 자취방으로 내줬다. 하교 때 떡볶이, 어묵을 사 먹던 아이들, 자취방에서 쉬거나 공부하는 학생들 모두 손주 같아 예쁘고 기특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젠 학생이 없으니 분식 장사를 접었다. 멀찍이 마트까지 가기 힘든 주변 노인들에게 생필품과 먹을거리를 팔려고 계속 장사한다"고 덧붙였다.

◆빈집도 늘어
폐교가 많은 지역에선 지방소멸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빈집(폐가)도 늘고 있다. 살던 이가 세상을 떠나거나(고령화), 타지역으로 이주(이촌향도)한 결과다.
지난 15일 찾은 경북 김천시 지례면 한 폐가는 수풀이 무성한 채 방치돼 있었다. 대문 너머 마당은 발 딛기 어려울 만큼 잡초가 무성했고, 반투명 유리 너머로 먼지 잔뜩 묻은 가재도구와 가구들이 보여 과거를 가늠케 했다.
한 주민은 "이 마을 두 집 건너 한 집은 폐가라고 보면 된다. 깜깜한 집에선 귀신이 나올 것만 같고, 숲이 된 마당에 사는 뱀이나 벌레가 이웃집으로 넘어온다"고 하소연했다.
집을 팔려는 이도, 사려는 이도 없는 탓에 폐가는 날로 늘어 간다.
지례면 한 이장은 "집주인이나 그 후손들은 '가족 재산을 어떻게 함부로 팔겠냐'며 갖고만 있다. 평당 200만~300만원가량 받아야만 땅과 주택을 팔겠다는 이들도 많다"면서 "자녀가 다닐 학교도 마땅찮은데 집값마저 비싼 탓에 귀농 귀촌하려는 젊은 부부가 있겠느냐"고 탄식했다.
이런 상황은 경북 전역에서 두드러진다. 국회 국토교통위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김천시)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 2018년 기준 경북의 빈집(미분양 포함)은 13만6천805호로 경기도(24만9천635호)에 이어 전국 두 번째로 많았다. 경기도와 경북은 관련 집계를 시작한 2015년 이후 4년 연속 1, 2위를 차지했다.
같은 자료에서 경북 빈집은 2015년 10만8천114호, 2016년 10만7천862호(전년 대비 0.2%↓), 2017년 12만6천480호(17.3%↑), 2018년 13만6천805호(8.2%↑) 등으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폐교 막아야 지방소멸 늦춘다"
전문가들은 폐교를 막는 일이 지방소멸을 늦추는 방법이라고 분석했다.
정민석 전 전남교육정책연구소 전임연구원은 지난 3월 발표한 '학교 폐교 사례를 통한 지방소멸에 대한 경험적 분석'에서 "사람이 없으면 마을도 없어지고 학교도 없어진다. 학교 운영 문제를 해결하고자 작은 학교를 통폐합한 탓에 지역 성장동력이 떨어지는 등 큰 파장이 생긴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작은 학교가 양질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토록 해 해당 지역에 신입·전학생을 꾸준히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전 연구원은 매일신문과 통화에서 "경북교육청이 최근 도입한 자유학구제가 좋은 사례다. 큰 학교 학생 일부를 주변 작은 학교에 옮겨 가르치는 대신 해당 학교에 양질의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구상이 좋다. 폐교 위기 학교의 존재 가치를 키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큰 학교 기준의 교육 체계와 차별화한 작은 학교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 교육 당국뿐만 아니라 지자체와 지역민이 함께 학생 교육에 참여하면서 작은 학교 존속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득환 대구경북연구원 연구위원도 "학교가 없어지면 그 지역에 다시 젊은 층을 불러와도 자녀를 낳고 정착할 구심점이 없어진다. 지방소멸에 가속이 붙을 수 있다"면서 "결국 폐교는 소규모 마을에서 학생 뿐만 아니라 젊은 층도 함께 몰아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기획탐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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