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 연구자
조선 영조 24년인 1748년 한 유력자가 휴식 중인 자신의 모습을 그리도록 주문했다. 아주 드문 일이었다. 돌기둥이 높직한 붉은 단청의 누각이 배경인 것은 현직에 있을 때였기 때문이다. 누각 옆 버드나무는 가지를 일렁이며 운치를 돋우고, 연못에서는 점박이 백마를 마부가 솔질하며 씻기는 중이다. 난간에 기대 이 모습을 내려다보는 주인공의 오른손에는 꽁지깃에 응주(鷹主)를 표시한 시치미와 방울, 붉은 수술 장식을 단 매가 있다. 누각 기둥의 화려한 환도는 그가 무반(武班)임을 말해준다.
무릎 앞에 있는 비단 책갑의 책, 필통 속의 붓, 벼루 위의 먹, 두루마리 등은 문무를 겸비했다는 뜻이고, 왼손을 내민 것은 막 장죽을 받아들려는 찰나이기 때문이다. 공손히 담뱃대를 올리고, 가야금을 연주하고, 술병을 가져오고, 수박 쟁반을 받쳐 든 관기인 듯한 4명이 시중을 들고 있다. 누각 아래 생김새가 준수한 개 두 마리도 그렸다. 인물과 동물의 묘사가 세세한 것은 그가 응주로서 자신의 모습을 애마, 애견과 함께 그림으로 남기려 한 까다로운 주문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호사를 누린 인물은 22세에 무과 급제하고, 몇 달 후 궁중의 궁술대회에서 세 발을 모두 명중시켜 경종에게 일약 절충장군(무신 정3품 당상관의 품계)을 제수 받은 석천(石泉) 전일상(1700-1753)이다. 전일상은 형 전운상과 형제 무장으로 유명했다. 명궁의 솜씨로 이 백마를 타고 이 사냥개를 데리고 이 매를 날리며 사냥했을 것이다. '석천한유'는 담양 전씨 문중에서 300여 년 동안 소중히 보존되어 오다 올해 충남 홍성 홍주성역사관에 기증되었다. 전운상, 전일상의 관복 전신상도 함께 기증되어 이 그림과 꼭 같은 전일상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석천한유'는 풍속화지만 주인공이 특정되어 있어 초상화의 특이한 예로 분류된다.
이 그림을 그린 김희성(김희겸이라는 다른 이름도 썼다)은 도화서 화원으로 이 해에 숙종의 어진 모사에 동참화사로 참여했다. 당시 전라우수사를 지내던 전일상이 어진화사 김희성에게 자신과 형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고 아울러 이 그림도 주문했다. 전일상은 자신을 추모할 매개물인 의례용 초상화로서 뿐 아니라 자신의 사적 정체성 또한 자손들이 기억해 주기를 원했다. 그런 바람대로 그의 후손들과 더불어 우리는 한 호걸남아로서 그의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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