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 이제는 사라진 전설 속 검찰 조직이다. 2013년 처음 만들 때부터 합수단의 존재 이유는 분명했다. 수법이 고도화되고 피해자가 보통 수천 명에 이르는 증권 범죄를 신속하게 수사할 수 있는 전문 수사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검사와 함께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국세청 등 전문 인력들이 함께 근무했다. 6년 반 동안 1천 명 가까운 증권, 금융 범죄자를 처벌했다. '여의도 저승사자'라는 별명의 이유다.
합수단을 공중분해한 건 추미애 법무부장관이다. 올해 1월 3일 취임한 추 장관이 20일 만에 단행한 검찰 직제 개편에서 합수단을 없앤 것이다. 법무부장관의 첫 작품이 합수단 해체인 것에 관련 내용을 아는 많은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검찰의 직접 수사를 축소하여 민생 분야에 집중케 한다는 명분과, 합수단은 직제에 없는 조직이라는 게 이유였다. 증권·금융 범죄는 '개미'로 불리는 다수의 서민들이 주된 피해자라는 점에서 대표적인 민생 범죄이다. 합수단 조직을 강화하고 검찰 공식 직제로 만드는 게 '민생 범죄 집중'의 바른 길이었다.
진짜 이유에 대한 의혹이 인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합수단의 수사를 막기 위한 조치 아니냐는 것이었다. 해체 직전 대검은 라임 펀드 사건을 남부지검 합수단에 배당하는 결정을 내렸다. 합수단 해체로 신라젠 사건은 물론 라임 펀드 사건 등 대형 금융 범죄 수사가 차질을 빚을 것은 뻔한 일이었다. 수많은 피해자들이 천문학적인 손해를 본 채 현재진행형인 사건들이다. 통상적이라면 법무부는 물론 청와대도 철저한 진상 규명을 지시해 마땅한 엄청난 규모의 스캔들이다. 하지만 추미애 장관의 법무부는 거꾸로 가는 직제 개편을 단행하고, 사소한 일에도 철저 수사를 지시하던 대통령은 언급조차 없다.
라임 펀드는 지난해 10월 환매 중단이 되면서 1조원 이상의 피해가 났다. 여당 총선 출마자와 전 청와대 행정관은 구속되었고 전·현직 여당 의원들이 수사를 받고 있다. 지금 새삼 문제가 불거진 옵티머스 펀드 사건도 비슷하다. 올해 6월 환매가 중단되고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또 다른 권력형 비리로 비화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펀드 대표자가 "정부 및 여당 관계자들이 프로젝트 수익자로 일부 참여했고, 펀드 설정 및 운용 과정에 관여돼 있다"고 염려한 문건까지 보도되었다. 문제는 검찰의 수사 의지가 의심된다는 점이다. 남부지검 합수단의 수사를 넘겨받은 서울중앙지검은 이들 사건을 조사부에 배당했다. 특수부 또는 반부패수사부가 아닌 조사부에 맡긴 것 자체가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일이다. 이성윤 지검장이 뒤늦게 '엄정 수사'를 공언하고 수사팀을 보강했지만 정권 핵심 관련자를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제 믿을 것은 일선 검사들의 정의감뿐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철저한 수사 지시가 공허한 메아리임은 검사들 스스로 잘 알 것이다. 국민이 바라보는 것은 총장도 지검장도 아니다. 직접 수사를 담당하는 검사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지이다. 그들은 스스로 '대한민국 검사'임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공직자들이다. 아무리 정권에 의해 무력화되었다 해도 검사는 검사여야 한다. '거악 척결'이 검사의 존재 이유 아니던가. 범죄를 만들어 내라는 게 아니다. 명백한 범죄 혐의에 눈감지 말라는 것이다.
이번 사건들은 정파적 시각에서 보아서는 안 될 엄중한 문제들이다. 금감원은 라임 펀드에 대해 손실액 전부를 배상하도록 결정하고 은행과 증권사는 이를 신속히 수용했다. 사상 처음으로 금융상품 투자 손실액을 판매사가 100% 물어주도록 결정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자본주의 시장경제 기본을 엉망으로 만드는 중대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 검사라면 당연히 분노해야 할 일이다. 검사들이 인사권에 목을 맨 채 지금 있는 권한마저 행사하지 않는다면 조만간 그나마 남은 칼자루마저 빼앗길 것이다. 그때가 되면 국민 누구도 애도의 뜻을 표하지 않을 것이다. 맛을 잃은 소금이 어떻게 되는지는 다 알고 있다. 길가에 버려져 지나는 사람들의 발에 밟힐 뿐이다. 인사권을 가진 자들이 제아무리 이리저리 휘둘렀어도 소금의 짠맛을 잃지 않은 검사들이 남아 있음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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