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8일 '종전선언'을 다시 꺼냈다. 한미 간 이해와 협력 증진을 목표로 하는 코리아소사이어티 화상 기조연설에서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 평화의 시작"이라고 했다. 또 2018년과 2019년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거론하며 "어렵게 이룬 진전과 성과를 되돌릴 수 없으며, 목적지를 바꿀 수도 없다"고도 했다.
시점과 내용 모두 부적절하다. 우선 시점이다.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북한에 사살된 게 불과 16일 전이고, '아버지가 죽임을 당할 때 정부는 뭐 하고 있었느냐'는 공무원 아들에게 "나도 마음이 아프다"고 한 게 이틀 전이다. 그리고 우리 쪽의 공동조사 요구에 북한은 묵묵부답이다. 유가족의 비통하고 애타는 마음이 얼마나 크겠나.
이런 상황에서 '종전선언' 소리를 꺼내는 것은 유족과 유족의 슬픔에 공감하는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대통령이 북한의 만행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게 한다. 설사 그렇지 않다 해도 어쨌든 이 시점에서 종전선언을 또 꺼내야 했느냐는 비판은 면하기 어렵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23일 유엔총회 화상 기조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언급했을 때도 같은 비판이 나왔다. 우리 공무원이 살해된 사실을 알고도 연설을 해야 했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한 청와대의 해명은 연설이 사전에 녹음돼 유엔에 발송된 상태라 수정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수긍하기 어렵다. 수정할 수 없다면 취소하면 될 것 아닌가. 그랬으면 국민에게 더 큰 박수를 받았을 것이다.
내용도 허황하다. 종전선언의 대전제는 북핵 폐기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연설은 두 차례 모두 이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북핵을 그대로 두고 종전선언을 하자는 소리 아닌가. 유엔 연설에 국제사회가 왜 냉담하게 침묵하고 있겠나. 문 대통령의 소망과 달리 남북 문제는 진전이 없다. 두 번에 걸친 부적절한 시점에 허황한 내용의 종전선언 연설은 이런 현실에 대한 초조함을 잘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바늘 허리에 실을 꿸 수는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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