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19일 보건복지부 장관 등 정부 관계자들과 대한의사협회,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 등이 처음 만난 '의·정 간담회'.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등의 정책을 추진하려는 정부와 이에 반발해 파업으로 맞서고 있는 의료계가 타협점을 찾고자 마련된 자리였다.
의사 출신 복지부 대변인은 "오늘 참을 인(忍)을 세 번 쓰고 나왔다"면서 "의약분업 때도 필수 의료를 뺐는데 전공의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고 강압적 태도로 나섰다. "이 시국에 단체행동이라니…"라며 훈계로 일관했다고 참석한 전공의가 밝힌 바 있다. 의사와 학생을 밖으로 내몰게 만든 원인을 제공한 책임은 전혀 생각지 않는 장면이다.
의정 간의 첨예한 대립은 전공의와 전임의까지 파업에 가세했고, 의대생들도 동맹휴학과 의사 국가시험 보이콧으로 선배 의사들에게 힘을 보탰다. 지난달 4일 의협과 정부·여당 간의 '의료정책 추후 재논의' 합의 이후 우여곡절 끝에 전공의, 의대생들은 병원과 학교로 돌아왔지만, 국시 거부로 저항했던 본과 4학년들만 '오리알' 신세가 됐다. 결국 희망자에 한해 지난달 8일부터 국시가 치러지고 있다.
당시 복지부는 "시험을 보겠다는 명확한 의사표시가 없어, 추가적인 국시 응시 기회를 논의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했다. 학생들이 단체행동을 잠정 유보하겠다는 말로는 부족하다는 것. 의대 교수들은 정부의 이러한 '시그널'을 바탕으로 제자들을 설득했다. 결국 의대생들은 '국시 응시'로 마음을 돌렸다.
하지만 복지부는 이후 태도를 바꾸었다. "국민적 동의가 없다면 추가 응시 기회를 주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물밑으론 의대생들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재응시 기회를 부여하는 것 자체가 형평성 공정성에 위반되며, 국민적 동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여권의 한 대선주자는 한술 더 떠 "예외를 허용하더라도 충분한 반성과 사죄로 국민 정서가 용인이 가능해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다.
국내서 의사 국시가 정상적으로 치러진 뒤 합격률이 60~70%에 그치자 의사 수급 문제로 추가 시험이 진행된 적이 1984년과 1995년 두 차례 있었다. 미국과 캐나다는 올해 코로나19 확산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기 위해 의사면허 실기시험을 내년으로 통째 연기했다.
학생들은 의료 현안에 대해 순수한 마음으로 나섰고, 이는 궁극적으로 국민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한 의대 교수는 "의대생들의 단체행동은 국민들 피해가 없었다는 점에서 의사들 파업과는 분리해서 봐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전국의대교수협의회도 "의대생들이 사과를 한다면 학교와 교수들에게 해야지, 정부가 왜 대국민 사과를 종용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의대생에게만 추가 시험이 주어지는 '특혜'는 옳지 않다. 성인인 만큼 행동에 책임이 따라야 한다. 그렇지만 정부가 그들에게 구제를 할 듯 말 듯 여지를 남기면서 '때리기'를 계속하는 것은 치졸하다. 특혜가 없다는 원칙을 세웠으면 끝까지 유지하면 된다. 결정권을 가진 어른들이 힘을 과시하며 상처를 주려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학생을 굴복시켜야만 체면이 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정부는 의료계가 반발하는 여러 정책을 들고 나온 것은 공공의료 자원 확충이 그만큼 급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 정부가 2천700여 명의 의사 배출이 없어도 내년 인턴과 공중보건의 수급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장담하고 있다. 이런 이율배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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