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세금주도성장?

입력 2020-10-06 05:00:00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5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재정의 지속가능성 유지를 위한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방안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오른쪽은 안일환 2차관. 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5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재정의 지속가능성 유지를 위한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방안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오른쪽은 안일환 2차관. 연합뉴스
김해용 논설실장
김해용 논설실장

'부두 경제학'(Voodoo Economics)이라는 말이 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경제정책인 '레이거노믹스'를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가 경멸조로 비판하면서 쓴 표현이다. 부두(Voodoo)는 서인도제도의 악마 숭배 및 주술 종교를 일컫는다. 현대 영화의 단골 소재인 좀비(Zombie)의 원형을 제공한 흑마술적 믿음이기도 하다.

부시의 언급 이후 부두 경제학은 점차 의미가 확대되어 비합리적, 비과학적, 비현실적 경제정책을 통칭하는 용어로 굳어졌다. 이에 상응하는 한국말로는 유사경제학, 사이비경제학 등이 있겠다. 하나 더 있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론'(이하 소주성)이다.

소주성은 일단 달콤하다. 국민 가처분소득과 구매력을 끌어올려 내수 경제를 발전시키고 새 성장동력을 삼겠다니 꿈만 같다. 소주성 이론에 의하면 성장을 이끄는 것은 분배다. 낙수효과의 한계를 극복하고 성장과 분배 사이의 딜레마를 극복하겠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경제 발전에 무한동력 엔진이 하나 생기는 셈이다.

하지만 선후가 바뀌었다. 소득은 경제활동의 결과물이지 원인일 수 없다. 전체 파이는 그대로인데 누군가의 주머니에서 다른 사람의 주머니로 돈을 옮겨 놓는다고 경제가 성장할 수 있을까. "소주성은 마차로 말을 끌게 하는 격"이라는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의 지적은 핵심을 꿰뚫었다. 201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로머도 "소주성은 너무도 위험한(risky)한 모델"이라고 했다. 소득을 올려 경제를 성장킬 수 있다면 지구상에 가난한 나라는 없을 것이다.

사실, 문 정부의 집권 2년 차인 2018년부터 소주성의 폐해는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었다. 경제 주체들의 의욕은 떨어지고 퍼주기식 복지정책 여파로 도덕적 해이가 심각했다. 소주성의 간판 격인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은 근로자들의 소비 여력을 높이기보다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깎아내리고 근로자들의 고용 불안을 오히려 키웠다.

정권이 무모한 도박을 멈추지 않는 사이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팬데믹마저 터졌다. 성장은커녕 생존이 급선무가 됐다. 팬데믹으로 경제가 멈춰서다시피 하니 밑 빠진 독처럼 재정이 투입되고 있다. 소주성 로드맵을 훌쩍 뛰어넘는 확대 재정의 연속이다. 이로 인해 일시적 승수 효과로 경제적 착시 효과가 나타나겠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소주성과 코로나19가 합작해 낸 확대재정의 결과물은 부채 비율의 우려스러운 상승이다. 공공기관을 포함한 국가 부채와 가계 부채, 기업 부채 총액이 무려 5천조원에 다가섰다. 그런데도 정부는 국가채무 비율이 OECD 국가 평균치 아래여서 괜찮다고 한다. 빚이 무서운 돈이란 것은 만고의 진리다. 국채든, 증세든 결국 그 돈은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갚아야 할 돈인데도 위정자들은 마치 제 돈처럼 선심을 쓴다. 예산 짜고 세금 거두는 관료들은 비어가는 곳간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세금 쥐어짤 궁리를 하고 있다. 부동산 규제책, 주식시장 양도세 부과, 중소기업 사내 유보금 과세, 중소기업 세무조사 등 목하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일이 가진 행간의 의미는 거위털 뽑기 식의 세금 징수 시도로도 읽힌다.

부두교 신자들은 '살아 있는 시체' 좀비의 존재를 믿는다. 살아 있으면 시체가 아니니 좀비는 '뜨거운 얼음'처럼 일종의 형용 모순이다. 소주성이라는 족보 없는 이론과 코로나19 팬데믹이 합쳐진 결과 이러다가는 '세금주도성장'이라는 변종 부두 경제학이란 용어마저 등장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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