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청춘기록’…흙수저 청춘이 꾸는 꿈

입력 2020-10-07 11:21:33

tvN 월화드라마 ‘청춘기록’, 수저는 도구일 뿐이라지만

tvN 드라마
tvN 드라마 '청춘기록' 현장 사진. tvN 제공

흙수저는 과연 금수저가 될 수 있을까. 우리 시대의 '수저계급론'은 노력한다 해도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버린 아픈 현실을 담고 있다. tvN '청춘기록'에 등장하는 청춘들이 그렇다. 과연 이들은 수저를 바꿀 수 있을까.

◆부모에 따라 좌우되는 자식의 미래라면

"요즘은 부모가 자식한테 온 평생이야." tvN 월화드라마 '청춘기록'에서 김이영(신애라)의 이 대사는 이 드라마가 깔고 있는 아픈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부와 지위로 인해 그의 아들 원해효(변우석)가 모델에서 배우로의 전향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원해효의 어려서부터의 절친인 사혜준(박보검)의 엄마 한애숙(하희라)이다.

한애숙은 김이영의 집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처지. 그는 아들에게 김이영처럼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여유가 없다. 심지어 친구 집에서 가사도우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들을 기죽게 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처지다. 그러니 "그런 세상은 죽은 세상"이며 "부모가 온전히 커버해준다는 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되물으면서도 김이영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절감한다. 오히려 그런 한애숙을 이해해주고 위로해준 건 아들이 아니었던가. "생각해보니까 엄마 인생하고 내 인생하고 다른 데 내가 왜 엄마 인생 선택해줘야 돼? 내 인생도 골치 아파 죽겠는데." 사혜준은 엄마가 친구 집에서 가사도우미일을 한다고 했을 때 그렇게 말해줬다.

'청춘기록'은 부모 세대가 등장하고 그 자식 세대가 한 동네에서 살아가며 부모 세대의 빈부와 직업이 자식 세대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는 현실을 담고 있다. 그래서 대놓고 '수저계급론'이 등장한다. 사혜준의 매니저를 자임하고 나서는 이민재(신동미)는 행복이 별거냐며 오늘이 즐거우면 된다 말하는 사혜준에게 뼈 때리는 충고를 던진다. "갖고 태어난 거 없으면 평생 가난하게 살아야 돼. 나아지지 않아. 보통 그걸 서른이 넘어서 깨달아. 20대는 꿈꿀 수 있다는 환상도 갖거든? 똑똑한 애들은 20대에도 깨달아. 이룰 수 없는 꿈보다는 돈을 벌자. 근데 넌 그 꿈에서 아직도 못 헤어 나오고 있어."

물론 이민재의 충고는 모든 게 태생으로 결정되어 있으니 포기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1초까지 다 쓰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하면 청춘들은 흙수저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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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청춘기록' 현장 사진. tvN 제공

◆연애는 무슨…덕질이 최고라는 청춘의 슬픔

'청춘기록'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꿈을 꾸며 샵에서 일하고 남는 시간에는 개인방송을 하는 안정하(박소담)가 유일하게 삶의 낙으로 여기는 건 이른바 '덕질'이다. 그가 덕질하는 대상은 바로 모델 시절부터 봐왔던 사혜준. 그러던 어느 날 사혜준이 그의 앞에 나타나고 그와 점점 가까워지게 되지만 안정하는 그러면서 어떤 슬픈 불안감을 느낀다. "덕질이 아름다운 건 현실이 아니라서야. 환상과 현실이 만나면 엉망진창이 돼." 안정하는 알고 있다 자신의 덕질이 사혜준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 놓은 환상이라는 걸. 그래서 진짜 그를 만나며 설레면서도 그 환상이 깨지는 걸 두려워한다.

그리고 안정하는 샵에서 점점 자신을 찾는 고객들이 늘어가는 걸 거슬려 하는 진주(조지승)의 노골적인 괴롭힘을 힘겨워 한다. 심지어 그의 그런 이유 없는 괴롭힘에조차 이유가 있을 거라 자위하며 자신이 잘못한 거라 생각하기도 한다. 사혜준을 만나 자신의 덕질 대상이 바로 그라는 걸 고백한 후 술에 취해 길바닥에 앉은 안정하는 그간 힘겨웠던 자신을 술기운을 빌려 슬쩍 드러낸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조건을 말한다. "반성하는 사람 좋아, 예측 불가능한 사람 싫어해. 약속 지키는 사람 좋아. 불안하게 하는 사람 싫어해." 그런데 그건 호불호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갖춰야할 기본에 가까운 것이다. 안정하가 원하는 건 대단한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것들이다.

그것은 이 청춘이 꾸는 꿈도 마찬가지일 게다. 대단한 꿈을 꾸지 못하고 기본적인 것들을 이제 꿈이라 말하는 청춘의 슬픔 같은 게 안정하에게서는 느껴진다. 덕질의 선을 넘어 누군가를 사랑하고, 기본을 넘어 그 이상의 것들을 꿈꾸지 못하는 청춘의 슬픔. 그는 말한다. "덕질과 주사. 이 두 가지를 다 갖고 있다는 게 뭘 뜻하는 지 알아?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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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청춘기록' 현장 사진. tvN 제공

◆어느 새 소확행이 꿈이 되어버린 청춘에 대한 도발

그렇다면 '청춘기록'의 청춘들은 이렇게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수저계급의 시스템 속에서 그저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사혜준은 다행스럽게도 포기하지 않는다. 배우로서 악역이지만 재벌 역할을 맡은 그는 "수저는 배우에게 도구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작은 역할에도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이민재가 말했듯 금수저들처럼 슬슬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걸 그는 안다. 마지막 1초까지 다 써야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걸.

작은 역할에서부터 존재감을 알린 사혜준은 의학드라마 '게스트웨이'에서 선배를 좋아하는 후배 역할로 대중들의 주목을 받는다. 그의 최대 무기인 외모, 그 중에서도 '멜로 눈'이 힘을 발휘함으로써 단번에 스타덤에 오른다. 하지만 그는 그런 당장의 성공에 취하지 않는다. '멜로 눈'의 장점을 극대화해야 한다며 그런 차기작을 추천하는 이민재에 반대하며 그는 자신의 연기 영역을 넓힐 수 있는 사극에 도전하겠다고 나선다.

안정하는 덕질을 포기하는 대신 사혜준과 진짜 연애에 돌입하고, 샵에서 자신을 노골적으로 괴롭히는 진주에게 더 이상 당하지만은 않겠다 선전포고를 한다. 안정적인 직장을 포기하고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 꿈을 키워가는 걸 반대하는 엄마에게도 그 사실을 밝힌다. 가진 게 너무 없어 꿈을 포기하려 했던 사혜준이나 꿈꾸는 것조차 사치로 여겼던 안정하는 그렇게 각자의 위치에 만족하기보다는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며 성장한다.

사실 최근 들어 청춘들이 등장하는 멜로드라마들은 저마다 무거운 현실을 달고 나온 바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임상춘 작가의 '쌈, 마이웨이' 같은 드라마다. 태권도 국가대표를 꿈꿨지만 단 한 번의 실수로 무너져 버린 고동만(박서준)이라는 청춘은 도무지 나아질 것 같지 않은 흙수저의 현실 속에 선 인물이었다. 또 최애라(김지원)는 뉴스 앵커가 꿈이지만 현실은 백화점 인포 데스크에서 일하는 인물이다. 이들은 말 그대로 '쌈마이'의 현실에 머물러 있지만 그렇다고 꿈을 포기하진 않는다. 서로를 응원하고 지지하며 고동만은 격투기 선수로 서게 되고, 최애라는 격투기장에서 선수를 소개하는 아나운서로 자신의 길을 찾아낸다. '쌈마이'라도 '마이웨이'를 선택하는 청춘들이다.

물론 이건 드라마라는 허구 속에서나 가능한 일일 수 있지만 이른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어느새 꿈이 되어버린 청춘에게 던지는 도발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며 행복이란 "합리적인 계획을 세우고 성실히 살아가는 이들이 삷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을 수 있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했다. 즉 행복은 현재 시제의 만족이 아니라 미래 완료 시제로 작동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 그러니 소확행이 꿈이 되버린 청춘들의 슬픔은 얼마나 큰 것일까. '청춘기록'은 그런 현실에 서 있는 청춘들이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꿈꾸는 청춘을 덕질하게 만드는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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