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최 병장의 나훈아

입력 2020-10-05 06:30:00 수정 2020-10-05 07:50:35

가수 나훈아는 군부대 시절 공군 병장 최홍기(오른쪽)라는 본명으로 공군문화선전대에서 활동했다. 연합뉴스, 인터넷 캡처
가수 나훈아는 군부대 시절 공군 병장 최홍기(오른쪽)라는 본명으로 공군문화선전대에서 활동했다. 연합뉴스, 인터넷 캡처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단결. 1975. 12. 5. 군용열차에서.'

공군 병장 최홍기. 가수 나훈아의 군부대 시절 불린 본명이다. 공군문화선전대 소속으로 그날 대구에서 K-2 군부대 공연을 마친 그는 동대구역에서 군용열차로 서울로 되돌아가던 참이었다. 이미 입대 전부터 널리 알려진 가수였던 터라 역에 도착하자 여러 사람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는 마침 휴가로 나들이에 나섰다 부산을 떠나 서울로 가던 비둘기호 군용열차를 함께 탔던 육군 보도사병 성병조 상병을 만났다. 둘은 4시간의 짧은 만남을 마치고 대전을 좀 지난 회덕에서 헤어졌다. 그와의 군용열차 취재 사연은 부대 소식지 '건설주보'로 널리 퍼졌고, 대구 문인이 된 성 상병은 뒷날 2010년 언론을 통해 그와 35년 전 얽힌 사연을 적었다.

최 병장은 입대 전처럼 군에서도, 군을 떠나서도 명성을 날렸고, 숱한 화제 속 노래의 삶을 이어갔다. 그의 시원하고 거침없는 답변의 4시간으로 성 상병에게 잊지 못할 강렬한 인상을 준 만큼이나 뭇 사람 뇌리에 남을 사을 남겼다. 나라 훈장도 싫다 하고, 남북 관련 공식 행사 참여 요청의 완곡한 거절, 재벌가 초청 공연 거부 등 사례도 그렇다.

이런 그가 지난달 30일 KBS 공연 방송으로 또다시 화제의 인물이 되고 있다. 74세의 연륜과 풍부한 독서의 내공인 듯, 여러 말은 정치권을 들썩였고 급기야 여야 설전이 벌어지기에 이르렀다. 그만큼 그의 소신성 발언이 시대 상황과 맞물려 파장을 일으킬 만하다는 방증이다.

그의 "국민 때문에 목숨 걸었다는 왕이나 대통령을 본 적이 없다"는 말과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 없다"는 발언, 자신이 공연한 KBS를 겨냥해 "국민을 위한, 국민의 소리를 듣고 같은 소리를 내는, 이것저것 눈치 안 보고 정말 국민들을 위한 방송이 되면 좋겠다"는 주문에 이르기까지 거침없다.

지금 그의 말에 오금 저렸을 무리들이 서로를 공격하고 맞서면서 그들만의 장외 공연을 펼치고 있다. 두 무리 모두 가리키는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쳐다보는 꼴이다. 정치가 이러니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이 세계에서 제일 1등 국민"이라며 믿을 곳은 국민뿐임을 내세운 모양이다. 45년 전 후배 성 상병에게 외친 최 병장의 '단결' 구호가 이젠 '국민'으로 바뀌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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