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관리사무소‧경비실' 직원들?

입력 2020-09-27 16:03:19 수정 2020-09-27 16:35:23

"윗집 발소리 시끄러워"…관리실·경비실 통해 해결 중재 요청 늘어
관리실 직원 "개인 간 갈등 조정 방법 제한적·도리어 반발하는 사람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봉쇄 조치가 진행되고 있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전직 운동 강사인 76세 여성이 아파트 테라스에서 운동을 가르치자 이웃들이 동작을 따라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봉쇄 조치가 진행되고 있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전직 운동 강사인 76세 여성이 아파트 테라스에서 운동을 가르치자 이웃들이 동작을 따라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동주택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때 아닌 민원해결사 노릇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실내생활 시간이 늘면서 층간소음 등 풀기 어려운 갈등이 덩달아 늘자 관리사무소가 바빠진 것이다.

25일 한국환경공단이 운영하는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대구지역에 접수된 층간소음 관련 상담의뢰 건수는 총 95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62건)보다 69.2% 증가했다. 8월 한 달 동안만 103건이 접수돼 지난해 8월(50건)보다 2배 이상 층간소음 관련 민원이 늘었다.

대구 북구 침산동에 있는 한 아파트 단지는 최근 들어 층간소음, 담배 냄새 등 이웃세대로 인한 불편 민원이 관리사무소로 접수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했다. 500여 세대가 모여 사는 이곳은 하루에도 2건씩 관리사무소로 층간소음 관련 민원이 들어온다. 따로 통계를 내 관리하진 않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관리실에 중재와 조정을 요청하는 빈도가 훨씬 잦아졌다는 게 관리사무소 직원들의 한목소리다.

5년째 관리사무소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A(70)씨는 "올해는 낮 시간 동안에도 집에 있는 사람이 많아 예년에 비해 '윗집이 너무 시끄러우니 해결해달라'는 민원이 많다"며 "낮 시간에는 주로 내부 인테리어 공사 소리, 집을 비운 뒤 혼자 남겨진 반려견이 짖는 소리에 대한 불편 민원이 많고, 늦은 밤 발자국 소리에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관리실을 통한 문제 해결 경향은 이웃 간 얼굴 붉힐 일을 피하려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엘리베이터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몇 층에 누가 사는지 서로 아는 상황에서 이웃 간에 괜한 갈등과 오해를 쌓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재자로 사이에 낀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난감하다. 이들 역시 주민 간 문제와 갈등을 해결할 방법이 마땅찮아 소극적인 부탁에 그치기 때문이다.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르면 '관리 주체가 층간소음 피해를 끼친 해당 입주자 등에게 층간소음 발생을 중단하거나 소음 차단 조치를 권고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권고 기준은 모호하다. 조용히 해달라고 머리 숙여 부탁만 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더욱이 관리비를 명목으로 갈등 해결을 당연시하거나 거듭된 부탁에 도리어 화를 내는 주민들도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다. 대구 중구의 한 오피스텔 관리인 B(62) 씨는 "관리비를 내니까 관리사무소 직원이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본인이 직접 나서겠다며 불만을 제기하는 집이 몇 호인지 알려달라는 사람도 있다. 이럴 경우 주민 간 다툼을 조장할까봐 알려주지도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개인 간 조정이 꺼려져서 제3자에게 기대는 만큼 중재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당사자 간 직접적인 대화를 통해 해결하지 않으려는 게 현대사회의 문제이기는 하다. 다만 개인 간 갈등 해결이 어려워서 관리사무소라는 기구를 두는 건데, 관리인의 공적인 권위를 인정하고 의견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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