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전망]흔들리는 공정과 정의

입력 2020-09-30 05:00:00

조장되고 확산된 이념 대결 속에 흐려진 공정과 정의
진보와 보수가 정의와 불의의 기준마냥 포장돼

문재인 대통령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21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제2차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21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제2차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수용 서부지역본부장
김수용 서부지역본부장

나라 일을 둘러싼 갈등의 양상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옳고 그름의 논쟁을 떠나서 죽이고 살리고의 문제가 돼버렸다. 고도의 정치적 공작이 의심스러울 만큼 분열이 조장된 상태이고, 그런 와중에 공정과 정의에 대한 국민들의 가치관마저 흔들릴 지경이다. 진보와 보수, 여당과 야당으로 나뉘어 갈등의 대척점을 이루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첨예한 이해관계의 대립을 정치적 신념처럼 포장한 데 그칠 뿐이다. 보수와 진보는 가치관의 차이일 뿐 그것이 정의와 불의를 나누는 잣대는 될 수 없다. 보수는 무능하고 썩어 빠진 적폐이고, 진보는 진실되고 정의로운 개혁이라고 내건 기치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을 때엔 먹혀 들었을 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한때 극심한 이념적 대립이 있었고, 그런 과정에서 전쟁이라는 극단적 선택과 희생도 겪었지만 이제는 끝났다고 믿었다. 정권들이 집권을 도모하고 사익을 극대화하려고 이념 대립을 공공연히 부추기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런 과정도 모두 거쳐 조화로운 다양성의 시대로 나아간다고 믿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조장된 분열의 시기를 맞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이상 과열은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1차 원인이다. 그런데 투기 세력을 모든 사태의 주범으로 내몰아 이들만 척결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듯 호도하고 있다. 그것은 지엽적인 해결책 중 하나일 뿐이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내 집 한 채 마련한 사람들이 손가락질받는 형국이 됐다. 투기는 근절해야 하지만 집 한 채 갖고 싶다는 소망이 탐욕으로 비난받아선 안 된다.

의료 분쟁이 벌어지자 정부는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일등 공신처럼 치켜세우던 의사들을 이기적이고 몰염치한 집단으로 매도했다. 의사들이 기득권을 지키려고 악다구니를 부리는 것도 옳지 않지만 공감대를 이루지 못한 정부 정책이 그저 다수를 위한 선의로만 포장돼서도 안 된다. 정작 국민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선택의 여지도 없이 강요되는 비급여 처치, 터무니없이 낮은 의료보험 수가로 인한 외과 및 산부인과 등 일부 진료 과목의 외면, 의사와 환자 사이 정보의 비대칭성 등이다.

법무부 장관 아들 문제도 마찬가지다. 오랜 시간을 끌면서 온갖 갈등을 양산한 문제에 대한 검찰의 결론을 두고 정부와 여당이 목이 터져라 외쳐 대는 검찰 개혁의 공정한 산물이라고 여기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백번 양보해서 검찰이 내린 결론이 옳다고 치자. 그러면 아들의 휴가와 관련해 자신은 물론 보좌관도 일절 관여한 사실이 없다고 국회에서 강변했던 법무부 장관의 말은 어떻게 된 것인가. 이것이 과연 공정인가.

대통령의 말처럼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 다만 역사 이래 어느 나라, 어느 시기에서도 모두가 동의하는 균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는 없었음은 명심해야 한다. 매우 오랜 시기에 걸쳐 조금씩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을 뿐이다. 대통령이 공정을 37차례 외쳤다고 해서 어느 날 세상이 공정해지지는 않는다.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면 공정과 정의는 더욱 요원해진다. 국민들의 명철한 판단을 흐릴 목적으로 보수와 진보의 대결 구도를 더욱 조장하고 그러면서 내 편이 저지른 잘못을 흐지부지 덮어버리거나 아무 잘못이 없는 듯 포장해 버린다면, 그래서 잠시 국민들을 속일 수는 있겠지만 결코 길지 않을 것이다. 혹독한 자기 검열 없이 칼춤을 추듯 휘둘러대는 권력은 썩는다. 그리고 붕괴의 조짐은 내부 분열로부터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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