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양천세헌록이 주는 시사점

입력 2020-09-21 15:36:10 수정 2020-09-21 17:46:01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선장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선장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선장

양천(陽川)은 경북 영덕군 축산 2리인 염장의 옛 이름이다. 1800년대 전반 염장에 살던 (신)안동김씨 김병형·성균·제진 3대가 효자로서 유명했다. 경상·충청도 등지의 유생들이 영해부사와 경상관찰사에게 포상을 위한 상소를 30년간 23차례 했다. 1857년 철종이 김병형·성균 부자를 표창했고 정효각이 내려졌다. 상소문, 포상 관련 결정문, 그리고 김제진·관진 형제가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글 등을 책자로 만든 것이 양천세헌록(陽川世獻錄)이다. 이번에 국문 번역 작업이 완성되어 출간되었다.

노모의 근력을 훼손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 김병형은 하인이 대신하여 자신에게 회초리를 때리게 했다. 김성균은 3년상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부모의 묘소를 찾아 산속에 길이 났는데 그 길은 효자길, 염장은 효자마을로 불렸다.

비록 주인공들이 동해안의 변방에 살고 있었지만, 김병교 이조판서, 김응균 참판 등 20여 명과 한문으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서울 기거 중이던 이장우 영덕 현감은 1839년 김제진이 보낸 명란이 워낙 맛있어서 밥을 많이 먹었고 답례로 붓 2자루를 보낸다는 편지를 보냈다. 동해안의 명란이 이때 선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1840년 김제진에게 지인인 담양 사람이 참빗을 팔러 축산항에 가는데 잘 부탁한다고 한다. 지인은 보부상으로 보인다. 서울 조정 가까이에서 포상 청원 운동을 하던 김제진은 1853.2.23.자 편지에서 도승지가 김병국에서 조태순으로 교체되었고, 예조판서는 이경재라고 알린다. 김제진은 1856.6.27. 김관진에게 계획한 일은 예조판서 남병철에게 달려 있는데, 그를 만나기 위해 예조의 대청까지 3번이나 들어갔다가 물리침을 받았다고 불평한다.

김성균의 효행에 감동해 남포에서 실어오는 비석의 운반료를 상인이 받지 않았다는 내용도 있다. 남포에서 경상도 동해안까지 바닷길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상소문마다 15명에서 120여 명이 연명을 했기 때문에 수백 명 선조들에 대한 행적을 추적할 수 있다. 1860년 염장 동민 15명의 이름이 나온다.

이 기록을 통하여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김제진 집안은 안동에서 축산항으로 내려와 200년 동안 벼슬 없이 지냈다. 3대에 걸친 효행 이후 1900년대부터 후손들이 크게 번성했다. 김창진·정한 천석꾼, 김용한·수영 도의원(초대, 3대), 김호동 군수(안동), 외손으로 한국원(2대 국회의원), 정수창(전 상공회의소 회장), 한용호(전 대우건설 사장)를 배출했다. 효행을 대를 이어하게 되면 자손들이 번창한다는 점을 말해준다.

둘째, 유생들이 20여 회의 상소를 조정에 보냈지만 포상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정에서 상소 내용을 조사 보고하라는 명을 관찰사에게 내려보내고 확인이 된 다음에야 포상이 이루어졌다. 3번에 걸친 예조판서 면담도 모두 거절되었다. 이렇게 정효각이 내려지기까지 30년이 걸렸다. 조선시대는 엄격한 절차에 따라 행정이 집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김병교 이조판서가 보낸 편지글에서 당시 사대부들의 마음가짐을 알 수 있다. 1858년 그는 아들의 과거급제 소식을 알린다. "영광과 감축이 극에 달하여 절로 두려운 생각이 든다"고 적었다. 겸손과 자중하는 모습이다. 그는 오늘날 공직자들에게 겸손한 인품을 갖출 것을 훈계하는 것 같다.

양천세헌록은 사적기록에 더하여 서울 조정에서의 사무, 정효각을 받기 위한 과정, 사대부와 양반들의 품격 있는 교류의 방식, 동해안 바닷가 수산물의 활용 등 19세기 초중반의 사회·경제상을 알 수 있게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인공지능(AI) 등이 출현, 인간관계를 삭막하게 할 것이다. 양천세헌록은 인간관계의 출발점인 부자간의 효행에 대한 스토리이다. 경북에 산재해 있는 선조들이 남긴 아름답고 교훈적인 이야기를 발굴, 교화의 도구로 활용하면 좋겠다. 외국어로 번역해 한국정신문화의 우수성을 해외에도 알리면 우리의 국격도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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