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응급실 단상  

입력 2020-09-15 10:45:38

이동원 대구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이동원 대구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응급실에 열이 나는 3살 환자가 왔습니다." 눈을 비비며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였다. 정신을 차리고 소아응급실로 내려갔다. 지난 8월 21일부터 전공의 파업이 시작되고, 응급실을 비울 수 없어 과장들이 돌아가면 당직을 서고 있다. 오전 1시쯤에 응급실 환자를 정리하고, '이제 더는 안 오겠지?' 라며 잠자리에 들었는데, 2시간도 되지않아 연락이 왔다. 내려가면서 '몸이 예전하고 다르다', '시간 참 많이 흘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18년 전 전공의 1년차 때는 며칠 당직을 서도 체력이 괜찮았는데…. 지금은 하루도 안 지났는데 힘에 부친다.

소아응급실로 가서 진찰을 하고, 보호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컴퓨터로 기록하는데 어찌나 적어야 할 것이 많은지, 또 손에 익숙하지 않으니 시간이 꽤나 걸렸다. 보호자에게 아기의 상태를 설명하고, 필요한 검사와 수액 처방을 냈다. 그리고 "진찰 상에 큰 문제는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보호자를 안심시켰다. 검사결과 나오기를 기다리며 당직실로 돌아왔다. 두가지 큰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전공의 파업이다. 의사는 환자를 지켜야하고, 환자 곁에서 최선을 다할 때 의사의 힘은 나온다. 당연한 이야기다. 병원을 떠나 파업을 하는 전공의, 전임의 선생님들도 모두 동의 하는 말일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면 전공의 파업은 정당성이 잃는다. 전공의들은 자기 목소리를 낼 수조차 없다. 파업이 쉽지 않는 결정이었음에도, 그들이 파업을 하는 이유를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는다. 관할 부처도, 정부도, 정치인들도. 전공의들이 환자 옆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면, 과연 누가 관심을 기울여줄까? 반박할 수 없는 절대 명제를 근거로, 그들을 비난한다면 대화의 진정성을 신뢰할 수 있을까? 전공의들이 대화에 나설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하루 속히 이 사태가 해결되어, 환자들이 어려움없이 지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전공의들의 의견도 그들의 눈높이에서 들어주었으면 한다.

또 다른 하나는, 내가 18년전에 응급실 환자를 보던 모습이 겹쳐졌다. 그 때는 왜 그리 바쁘고 일이 많았는지, 무엇이 그리 힘들었는지 한밤 중에 응급실로 오는 아이들, 부모님들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조금 참았다가 날이 밝아서 오시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아주 인간적인 생각을 하면서. 자연히 말도 사무적이었던 거 같다. 밤새 아이가 열이 나서 급하게 아이를 안고 응급실에 온 부모님들에게 따듯한 말 한마디 건낼 수도 있었을텐데. '진찰 상에 큰 문제는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는 말 한마디를 그때는 참 하기 힘들었다. 그땐 철도 없었거니와 여유도 없었다.

다행히 검사결과 문제가 없어서, 보호자에게 설명해주고 약을 주어 집으로 돌려보냈다. '며칠있으면 괜찮을 것'라는 말과 함께. 아이 부모는 연신 "고맙다"며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사람은 세월이 지나면서 철이 드는 거 같다. '얼마나 힘들면 한밤중에 병원에 왔을까?' 라고 생각하니 아이가 눈에 들어오고, 아이 엄마, 아빠가 눈을 들어온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병보다는 아이들, 그리고 보호자들이 점점 눈에 많이 들어온다. 그만큼 그들에게 따뜻하게 해 줄 말들도 늘어간다.

전공의 파업으로 복잡한 일들이 많았지만, 응급실 당직을 서보니 나 자신을 뒤돌아 보는 시간이 되어 감사하기도 하다. 첫째는 환자들을 위함이고, 둘째는 전공의를 위함이고, 마지막으로는 3주동안 응급실을 보고 있는 나를 위함이다.

이동원 대구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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