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옥경의 과학둘레] 브라보 미니멀 라이프

입력 2020-09-07 17:00:00

백옥경 구미과학관 관장
백옥경 구미과학관 관장

휴대전화가 손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 날이 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난 시간에 풀을 발라 놓은 듯 새로 고침을 누르는 손가락이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뉴스에 시선을 붙든다. 심심풀이 시간 죽이기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날엔 대가가 따른다. 몸과 마음이 물먹은 솜처럼 처진다.

저녁 시간을 휴대전화 들춰보기로 택한다는 건 적어도 내겐 그닥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시간을 달리 보낼 방법이 줄어든 요즘 스마트기기를 사용해 디지털 서비스에 시간을 보내는 비율이 예전에 비해 크게 증가하고 있다 한다. 구현할 수 있는 모든 편리한 기능에 콘텐츠를 더해가는 휴대전화는 잘만 이용하면 일상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어주지만 그만큼의 역기능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리듬감 있게 바뀌는 장면과 자막에 익숙해지는 마당에 오백 페이지 두께의 종이책을 읽으라면 어떨까. 벌레로 느껴지지 않을까. 예전만큼 상대방의 말과 표정에 집중하는 게 가능할까. 손가락 하나면 해결되는데 사무치게 그립다는 표현이 쓰일 데가 별로 있을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 뒤에 느끼는 성취감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무기력한 생활, 자존감 저하, 잘못된 습관에 관한 청소년 상담 전화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성 문제와 우울 같은 정신건강 상담도 증가하고 있다 한다. 모두 장기적인 실내 생활로 인한 부작용으로 휴대전화 사용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 빈둥거리는 시간까지 놓아주려 하지 않는 휴대전화. '디지털 미니멀리즘'의 저자이자 컴퓨터공학자인 칼 뉴포트는 디지털기기의 일상적인 폐해는 고독을 느낄 시간을 주지 않는 거라 한다.

고독이라면 물리적인 고립을 의미하지만 여기서의 고독은 외부로부터 입력되는 정보에서 자유로운 상태를 말한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각자가 따로 접속되어 있다면, 즉 고독하지 않다면 물리적으로 고독하지 않아도 외롭다. 보여주기식의 랜선 콘텐츠를 보여주는 대로 보고 있는 나는 본질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내가 된다. 만일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즉 고독하다면 물리적으로 고독해도 외롭지 않을 수 있다. 사람에게든 자신에게든 무엇에든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미니멀리즘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에 도움이 되는 소수의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다른 활동은 내려놓는 기술 활용 철학을 말한다. 그 점에서 '미니멀 라이프'와 맥을 같이한다. 주로 물건에 해당되지만 그것 또한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 무언지를 알고 그 외의 것을 과감히 줄이는 삶의 방식이다. 한 평 비우기 프로젝트처럼 집 안의 한구석을 정해 자주 사용하는 꼭 필요한 물건들만 남기고 나머지를 버린다.

그 대상은 대부분 오지 않을 언젠가를 위해 쌓아둔 것이다. 미래를 위한 과거의 것들을 치우고 나면 꽉 찼던 공간이 넉넉해진다. 생각만 해도 기분 좋다. 마치 새소리와 물의 감촉이 명징한 휴가지에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하늘을 마주하고 물 위에 떠 있는 기분이다. 그곳에는 오로지 내게 집중할 수 있는 새털 같은 가벼움이 있다.

물에 뜬다는 건 가벼워진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같은 부피의 물보다 가벼워야 날아갈 듯한 호사도 누린다. 숨을 크게 들이쉬면 몸 안에 빈 공간이 만들어져 물에 뜨기 위한 조건이 마련된다. 그러나 그것만이 다는 아니다. 아르키메데스가 왕에게서 의뢰받은 금관이 진짜인지 판별하기 위해 고민하다 물을 가득 받은 욕조에 몸을 담그는 순간 번개 치듯 떠오른 생각으로 알게 된 현상, 유레카라고 외치며 욕조에서 뛰쳐나오게 만든 발견, 바로 부력이다. 그가 알아낸 것은 넘쳐흐른 물의 양은 물에 잠긴 몸의 부피와 같고 물에 잠긴 부피가 클수록 더 큰 부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부력을 받기 위해 가능한 한 몸의 많은 부분이 물에 잠기도록 한다. 두려움을 버려서 가능한 일이다. 어쩌면 집착까지 비워 날아갈 듯한 자유로움을 얻는 부력은 버리고 또 버려서 충만함을 얻는 미니멀리즘과 통하는 데가 있다. 집착이든, 물건이든, 정보든 무언가를 채울수록 공허해지고 비울수록 충만해진다니. 돌이킬 수 없는 거대한 랜선의 바다에서 헤어나올 비움이 어울릴 법한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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