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의사들은 왜 환자 곁을 떠났나

입력 2020-09-03 17:45:44 수정 2020-09-04 14:39:07

31일 경북대병원 교수들이 본원 1층 로비에서 보건복지부의 전공의 근무 실태 파악에 반발해 피켓을 든 채 침묵 시위를 하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31일 경북대병원 교수들이 본원 1층 로비에서 보건복지부의 전공의 근무 실태 파악에 반발해 피켓을 든 채 침묵 시위를 하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장성현 경제부 차장
장성현 경제부 차장

직장 동료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부친이 다발성 디스크로 수술이 급한 상황이지만 아직 수술 날짜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했지만 전공의·전임의의 집단 휴진 사태와 맞물리며 수술을 받지 못하고 퇴원했다.

동료의 부친은 현재 척추 신경이 눌려 걷지 못하고 머리에 물이 찬 상태다. 수술이 한시가 급하지만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버티고 있다고 했다.

의료계 집단 휴진에 환자들은 수술 시기를 놓칠까 안절부절이고, 대학병원 교수들은 연일 이어지는 당직 근무에 파김치 신세다.

지역 대학병원 교수에게 상황을 물었다. "신규 환자는 못 봐요. 수술실도 이전에는 하루 20개가량 열었지만 지금은 응급수술만 2개 정도 돌리고 있어요. 수술을 하고 싶어도 마취과 인력이 없어 불가능해요."

왜 의사들은 가운을 벗었을까. 의사들의 요구를 '밥그릇 싸움'으로만 여기기엔 정부의 이번 의료정책은 비판의 여지가 크다. 필수·응급의료 인력 부족, 의료 서비스 불균형, 공공의료 분야 인력 부족 등을 공공의대나 지역의사제 등 인위적인 공급 확대로 풀긴 어렵기 때문이다.

논란의 핵심은 공공의대와 의과대 정원 확대를 통한 지역의사제 도입이다. 공공의대는 공공보건의료대학원으로 공중보건 분야와 감염·응급·분만·수술 등 필수 임상 분야, 국제 보건 분야 등에서 근무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겠다는 게 골자다.

지역의사제는 지역 내 우수 인력을 의사로 선발해 의사가 부족한 지역의 병원급 의료기관에서 공공·필수 의료 분야에 10년간 의무적으로 근무하게 하는 제도다.

필수·응급의료 전문가가 부족한 건 해당 분야 전문의가 취업할 병원이 없기 때문이다. 흉부외과 전문의 자격을 딴 후 대학병원 교수가 되지 않으면 전문성을 살려 수술할 병원이 거의 없다. 소아외과나 심장외과, 산부인과 등도 마찬가지다.

지역 간 의료 격차는 심하지만 잘 발달된 교통망으로 한두 시간이면 대도시의 대형병원에 갈 수 있는 점도 지역의사제로 해결할 수 없는 이유다. 의료취약지역을 해소하려면 응급 이송 체계를 완비하는 게 먼저라는 것이다.

공공의대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의과대에는 반드시 실습 병원이 있어야 한다. "안동병원을 의과대 실습 병원으로 만든다고 칩시다. 전공의, 전임의가 실습할 환자가 충분할까요? 서남대가 대학병원을 못 만든 이유이고, 제주도 전체를 담당하는 제주대병원이 실습이 미숙하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예요." 경북 중소도시에서 오랫동안 봉직한 의사의 말이다.

개원의인 친구는 "의사의 이기심을 자극하는 정책을 펴면 된다"고 했다. 필수·응급의료와 기피 과에 대한 의료수가를 현실화해서 수익을 낼 수 있도록 하면 민간이 알아서 취약지역에 병원을 짓고 진료과를 개설한다는 것이다. 의과대 교육 커리큘럼에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내용을 한층 보강하는 것도 대안으로 꼽힌다.

의사 단체는 3일 협상안을 마련해 정부, 여당과 대화 재개를 선언했다. 여야도 공공의료 정책 전반을 다시 논의하는 기구를 국회 내에 설치하기로 했다. 대화의 물꼬가 터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집단 휴진은 이어지고 있다.

의사들의 주장은 충분히 논의할 만하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볼모로 한 집단 휴진은 온당치 못하다. 집단행동으로 요구를 관철시키는 방식이 반복돼서도 곤란하다.

선한 목적이라도 수단을 정당화할 순 없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줄 안전망을 재구축하는 획기적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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