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원칙주의자 김부겸이 아쉽다

입력 2020-08-30 15:51:58 수정 2020-08-31 06:35:34

당 대표 경선에서 보여준 행보
게도 구럭도 놓친 아쉬운 형국
국민 통합의 정치 다시 시작을
의기소침해 있을 그에게 당부

김부겸 자료사진. 연합뉴스
김부겸 자료사진. 연합뉴스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지난 4·15 총선에서의 미래통합당 패배 원인 중 하나로 '공천 파동'을 꼽는 데는 이견이 없다. 평론가들의 비판과 궤를 같이하면서도 나는 방송에서 조금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대구 수성갑 공천에 관해서이다. 수성을 주호영 의원을 수성갑 지역에 공천한 것은 이른바 자객 공천이었다. 자신의 지역구에서 당선이 가능한 주 의원이다. 명분은 차치하더라도 굳이 김부겸을 떨어뜨리기 위해 이리저리 동원되어야 할 군번(?)은 아니다. 물론 한 석이 아쉬운 게 선거 국면이다. 하지만 주호영도 김부겸도 지역과 대한민국의 소중한 정치 재목이다. 까치밥을 남겨 놓는 여유, 보수 정치의 품격이 아쉬운 대목이어서 비판적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정치인 김부겸의 행보를 새삼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무난하게 다선 의원이 되어 안정적인 정치 인생을 살 수 있는 길을 포기하고 대구에 도전하는 길을 택했다. 큰 꿈을 위해서이건 아니건 그의 길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 나도 그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와는 일면식도 없고 학연, 지연 어느 것 하나 연결고리도 없다. 당파를 떠나 성원하고 싶은 정치인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이유였다. 지난 2월 비례위성정당 창당이 이슈화되었을 때이다. "비례정당은 소탐대실이다. 국민을 믿고 뚜벅뚜벅 걸어가야 한다." 당시 김부겸 의원의 공개적 언급이었다. 야당에 대한 비난은 구색일 뿐 결국 여당 위성정당 창당이 기정사실화되던 시절이었다. 극렬 지지자들의 비난을 자초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그는 거침이 없었다. 그런 평소의 모습에 비해 이번 당 대표 경선에서 보여준 그의 행보는 실망과 아쉬움 그 자체이다. 내년 4월 예정된 부산·서울시장 보궐선거에 관한 언급이 대표적이다. 중대한 잘못으로 열리는 재·보궐선거의 후보자를 공천하지 않는다는 민주당 당헌에 따르면 민주당 후보자를 내지 않는 게 순리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방식이든 여당은 후보를 낼 것이다. 명분에만 집착할 수 없는 게 냉엄한 정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부겸 후보가 당헌을 개정해서라도 서울·부산시장 후보를 내야 한다고 앞장선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일부 교회가 코로나 방역에 있어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은 다들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 지지자들의 바이러스 테러'라는 김 후보의 언급은 도를 지나쳤다. 당원들의 표심을 얻어야 하는 처지를 모르는 바 아니다. 어대낙(어차피 대표는 이낙연)이라는 구호가 흔들리는 기미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당내 정치를 위해 무리수를 둔 김부겸은 게도 구럭도 놓친 형국이라 할 수 있다. 그가 평소처럼 원칙과 소신을 강조했다면 국민의 성원과 지지는 더 높아졌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난 1월 19일 자 뉴욕타임스는 민주당 경선 후보 중 엘리자베스 워런과 에이미 클로버샤 등 두 여성 후보를 지지하는 사설을 내보냈다. 흥미 있는 부분은 버니 샌더스, 조 바이든 등 선두권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였다. 샌더스 후보에 대한 평가는 매우 호의적이었다. 샌더스는 많은 진보적 의제를 미국 주류 사회에서도 낯설지 않도록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샌더스는 트럼프 못지않게 분열적이다. 국민에 대한 편 가르기를 주된 통치 수단으로 삼는 트럼프에 이어 샌더스가 대통령이 될 경우 국민적 분열과 상호 적대감이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분열 대신 통합을 추구하는 게 정치인의 가장 큰 덕목이라는 것이었다.

"뚜벅뚜벅 국민 통합의 길로 나아가겠습니다." 총선 실패 후 후원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김 전 의원이 강조한 제목이다. 미국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심각하게 분열의 정치가 횡행하는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이다. 국민에 대한 편 가르기와 상대에 대한 비난만이 정치의 기술인 듯 보인다. 이번 경선에서 보여준 김부겸의 아쉬운 모습은 어쩔 수 없는 당내 정치의 한계라 대신 변명해 주고 싶다. 의기소침해 있을 김부겸 전 의원에게 당부한다. 국민만 바라보고 국민 통합의 정치를 다시 시작해 달라고. 그 길로 뚜벅뚜벅 걸어가 달라고. 스스로에 대한 다짐도 국민이 그에게 바라는 바도 그것이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