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공정과 정의

입력 2020-09-01 12:02:31

고석봉 대구가톨릭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고석봉 대구가톨릭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2020년 한해도 어느덧 가을로 접어들고 있다. 올 상반기 우리나라 국민들은 언제 끝날지 모를 코로나 사태, 긴 장마와 홍수, 태풍 그리고 최근에는 정부와 의료계의 타협점 없는 극한 대결 등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도자의 최고의 명연설은 아마도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의 연설인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말로 민주주의를 가장 간결하면서도 알맞게 표현했고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하며 결과가 정의로운 사회'를 외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도 훌륭한 연설이었다.

두 연설을 합치면 민주 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알 수 있다. 즉 자유민주 정부는 국민을 편안하게 하면서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대우받고 행복할 수 있도록 사회, 경제, 교육 제도를 끌고 갈 막중한 책무가 있다.

지금 사회적 큰 이슈인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의 핵심은 의대증원 확대와 공공보건의료대학원(공공의대) 설립 정책이다. 정부와 일부 언론은 이 갈등이 집단이기주의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의료계는 정부가 우리나라 20~30년 뒤를 내다보는 장기적인 보건의료발전계획 차원에서 신중하고 면밀하게 다루어져야 의료정책을 공론화 논의도 없이 힘을 앞세워 너무나 졸속으로 진행 하려는 비민주적 절차에 있다고 주장한다.

의료계는 현재 지역 간 의료격차, 필수 비인기 전공과목 인력부족 등에 충분히 공감하지만, 정부의 비현실적인 대책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을 뿐더러 장차 더 많은 문제를 창출할 것이라는 게 의료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최근 정부는 국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교육제도, 노동정책, 일자리 창출, 에너지정책, 경제의 핵심인 부동산 정책을 전문가 기관을 배제하고 친정부 단체와 공론화 논의 없이 조급하게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사회적 갈등과 정책의 부작용이 여기저기 발생하고 있다. 특히 부동산 가격의 폭등은 열심히 일하는 국민들에게 큰 좌절과 의욕 상실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TV에서 어느 외국인 여자와 결혼해서 아이를 세 명 둔 30대 가장의 삶의 모습을 다룬 다큐를 보았다. 젊은 가장의 작은 꿈은 아내가 아이를 업고 아파트 계단을 매일 오르내리는 것이 안타까워서 엘리베이터가 있는 소형아파트로 이사 가기 위해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노량진 수산 시장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한푼 두푼 저축하는 우리이웃의 평범한 소시민 모습이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나라 현실은 어떤가? 한 달이 멀다하고 집값, 전세, 월세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청년실업률은 폭등하고 있다. 열심히 일하고 부지런히 저축하는 성실한 청년은 어리석고 허망한 자화상이다.

현 정부가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정의와 공정의 가치와 질서는 사라진 지 오래다. 더 안타까운 일은 이런 얼뜨기 정책을 비판하고 감시할 국회의원, 언론, 시민단체, 노동계 등 힘 있는 기관은 침묵을 넘어 이념과 진영 논리로 방조하고 있는 것 같아 더욱 암울하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국민적 통합을 통해 건전한 민주 시민사회로 발전하기를 기원한다.

고석봉 대구가톨릭병원 산부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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