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시대 전략가 손무가 쓴 손자병법에는 장수 유형 4가지가 등장한다.
용장(勇將), 지장(智將), 덕장(德將), 그리고 복장(福將)이다.
▶용장은 말 그대로 용감한 장수다. 그런데 용장은 지략이 뛰어난 지장을 이기지 못한다고 한다. 이어 지장은 덕을 베풀어 부하들이 목숨 바치며 따르는 덕장보다 한 수 아래라고 한다. 이런 덕장도 복이 많은 복장, 다시 말해 운이 따르는 운장(運將)에게는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한다.
생각해보자. 아무리 용감해도 지혜가 모자라면 판단을 잘못하거나 함정에 빠지는 등의 이유로 패배할 수 있다. 사실 싸움이란 용감함(전력)을 어찌 지혜롭게 쓰느냐(전략)의 문제다. 전력이 아무리 강해도 전략이 무너져 패배한,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사례가 역사를 살펴보면 꽤 된다. 사실 역사 속 명장들은 용장과 지장의 자질을 함께 갖춰 연전연승을 했다. 대표적으로 이순신이 그랬다.
손무는 지장과 덕장 사이 우위는 판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냥 지장이 덕장보다 한 수 아래라고만 했다. 누가 누구를 반드시 이긴다고는 안 했다.
다만 결정적 상황에서 계산된 이성보다는 끈끈한 감성이 좀 더 영향을 미쳐 승리를 가져다주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 선거만 봐도 그렇다. 선거 전략의 우위를 넘어 결국 그 시대 사람들이 원하는 인간적 매력을 어필한 후보의 승리 사례가 적잖다. 故(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강력한 '팬덤'이 대선 승리의 공통 기반이었다. 팬덤은 지지자들을 무조건 따르게 만든다는 점에서 덕장의 그것과 닮았다.
그럼에도 결국 중요한 건 결과다. 복과 운이 더 많다고 평가하는 것은, 한마디로 이미 이겼다는 얘기다. 복장이라서 승리한다기보다는, 승리한 장수가 복장이다. 장수를 지칭하는 시점이 앞서 언급한 용장, 지장, 덕장과는 다른 셈이다. 일단 이기면 다른 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리고 복(운)도 실력이다.
▶그런데 손무의 장수 유형 분류에는 오류가 있다. 모든 장수가 용장이거나 지장이거나 덕장이거나 복장이거나는 아니라서다. 그냥 평범한 장수도 많고, 수준 미만의 장수도 많다. 바로 졸장(卒將)이다.
졸장인데 용장인 줄 아는 장수는 이렇지 않을까. 예컨대 적을 향해 질러야 할 분노를 부하들을 향해 지르는 경우다. 적은 강하거나 엇비슷하거나 약하거나인데, 휘하에 있는 부하들은 약한 상대이다.
이런 졸장은 용감함을 어찌 지혜롭게 쓰느냐의 기준에서 지장도 되지 못하고, 결국 베푼 덕도 없어 부하들이 목숨 바치며 따르는 덕장도 되지 못할 것이니, 그러다 보면 들어오는 복도 걷어차는 꼴이 돼 복장 역시 되기도 힘들지 않을까.
▶최근 청와대에서는 이런 장수 유형을 갖고 비유해보기 좋은 판이 벌어진 바 있다.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비서실 소속 수석비서관들을 부하로 둔 장수이다.
앞서 그는 지난해 말 다주택 참모들에게 1주택을 제외한 주택을 처분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헌법에 명시된 사유재산과 시장경제의 원칙을 깨는 지시였다고 해석할 경우, 이는 청와대 밖 부동산 시장 투기세력 등을 향해 제대로 된 정책으로 질러야 할 분노를, 청와대 안 부하들에게나 지른 사례이다. 용장이 아니라 졸장인 경우다.
그런데 정작 자신도 서울 반포와 충북 청주에 각각 아파트를 보유하며 2주택자로 살다가, 지난 7월에서야 부하들에게 재차 1주택 제외 처분 지시를 내리면서, 그 직전! 충북 청주 아파트를 매물로 내놨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이게 자신은 물론 현 정부까지 비판의 대상으로 만든 바 있다. 지난해 말까지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보면, '왜 그런 지시를 내렸을까'+'왜 내로남불했을까'='꾀를 부리지 않으니만 못한 경우'가 됐다. 지장이 아니라 졸장인 경우다.
▶그럼에도 팀웍이 좋고 잘 될 싹수가 좀 보인다면, 그 팀의 장수는 부하들이 따르는 덕장이라고 할 수 있다. 늘 도망만 다녀야 했던 유비는 관우, 장비, 조운, 제갈량, 간옹, 손건, 미축 등 부하들이 의리로 늘 따른 덕분에 촉나라를 세울 수 있었고 또한 훗날 나관중에게 삼국지연의의 주인공으로도 선택된, 덕장이자 복장이다. 덕이 쌓여 복을 만든다.
그런데 이런 논란의 당사자들이 지난 8월 7일 단체로 사의를 표명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노영민 비서실장 및 비서실 소속 수석비서관 5명 전원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이를 두고 당시 잇따른 부동산 정책 실패 및 다주택자 비서진들에 대한 논란이 커지면서 민심이 악화한데 따른 책임을 지는 취지로 분석됐다.
아울러 집단 사의에는 분노한 민심을 좀 달래려는 취지도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후 오히려 "청와대를 떠나 집을 지키려 한다"는 손가락질이 나오는 등 민심에 되려 불을 질렀다.
이는 사의를 표명한 6명 전원을 지장이 아닌 졸장으로 평가하게 만들었다. 아니 낸 것만 못한 사표 내지는 아니 한 것만 못한 사의 표명 전략.
무엇보다도 '집 때문에 떠나려는'(것으로 보여진) 부하들의 장수인 문재인 대통령을 덕장으로 보기 힘들게 만들어버렸다.
문재인 대통령의 복장(운장) 이미지는 두 말 할 것도 없다. 부하들이 복(운)을 밖으로 내팽겨치며 국정 지지율을 떨어뜨리는 일이 그간 한 두번이 아니었다는 평가다. 요즘 여론을 살펴보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김상조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등도 함께 언급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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