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 시선이 머물다…「집을 짓다」

입력 2020-08-20 14:53:54 수정 2020-08-21 18:48:46

'집을 짓다'(왕수 지음/ 김영문 옮김/아트북스/ 2020)

시선이 머물다
시선이 머물다

창을 연다. 첩첩한 아파트 사이로 뒷동산 깎아 올린 백화점, 기와집 부숴 지은 마트는 서울에도 있고 부산에도 있다. 풍광은 같아지고 추억은 사라진다.

"산은 움직일 수 없다. 산은 우리보다 먼저 도착했으므로 우리는 산을 존중해야 한다."(296쪽)

저자 왕수는 문인이면서 건축가, 중국미술대학교 교수로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2012년 중국인 최초, 최연소로 받았다. 대학 수업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독학으로 터득하며 미국식 공동화 현상에 직면한 중국 건축을 비판한다. 근대 건축의 차갑고 형식적인 성격을 넘어 자신 내면의 진실을 견지하는,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건축을 하고자 한다.

건축 수필집인 '집을 짓다'는 '건축을 마주하는 태도'를 부제로 왕수의 인문 깊이와 건축 향기가 오롯이 담긴 책이다. 3차원인 건물을 1차원 글과 2차원 사진으로 버무려 의식, 언어, 대화 세 장으로 펼쳤다. 저자는 책에서 건축이 아닌 영조(營造), 설계보다는 흥조(興造) 즉 중국 전통 속에서 가져온 용어를 즐긴다. 공간의 정취를 통해 시간의 전통을 보존하려는 시선으로 집을 짓고자 하는 그만의 철학이다.

의식. 자연에서 정취를 배우는 중국인의 삶에 원림(집안 정원)은 일상이다. 자연 형태의 생장을 모방한 원림은 인공화된 도시에 자연의 생명을 살아 숨 쉬게 한다. 이에 왕수는 서구화된 건축 시스템을 과감히 던지고 집짓기를 한 편의 산수화에 빗대어 일상의 정취를 최고로 삼는다. 이웃한 건축 간의 거리를 고려하고, 수목 위치에 따라 집을 짓고, 잣나무를 따라 정자를 만들며 울타리는 만들지 않고 원림을 대중에게 개방한다.

"사람이 살아있으면 원림도 살아있고 사람이 죽으면 원림도 황폐해진다."(33쪽)

언어. 왕수의 대표적인 건축물을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자연환경에 대한 장기적인 영향이 적고 설계가 아닌 수공 작업에 의해 전체 건조 과정의 수정과 변경과정에 따라 지어진 샹산캠퍼스. 대중 만족, 전문가 만족, 리더 만족, 갑 측의 만족이라는 찬사보다 '유일하게 내 과거 생활의 흔적을 찾아주는 건축'이라는 관객의 고백이 더 벅찬 닝보박물관. 이미 잊힌 구역에 새롭고 오래된 풍경이 엇섞여서 지방색 가득한 거리로 탈바꿈한 중산로.

"이곳이 역사구역이기 때문에, 피폐했기 때문에, 관광객이 없기 때문에 개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을 도시의 훌륭한 간판으로 간주하고 이곳을 활성화하기 위해 개조해야 한다."(264쪽)

대화. 그는 좋은 건축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순수하고 이상적인 생각을 가질 것을 강조한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망각하고 흔히 할 수 있는 방법을 거부한다. 자연이 건축보다 더 아름답다고 인식하는 중국인다운 미학과 관념을 담은 살아 숨 쉬는 실물을 건조한다. 시골에서 진실한 어떤 것을 찾는다.

"역사가 이미 사라졌으므로 우리는 최소한 인간의 흔적이라도 남겨놓아야 한다."(320쪽)

집을 짓는다는 것은 단순히 형태가 생겨나는 것을 넘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경험의 공유다.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파헤쳐지고 높아져만 가는 건물들 사이로 우리의 기억은 허물어진다. 비단 건축만 그러하랴. 글로벌 물결로 나라마다 거리마다 같아지는 모양새는 저마다의 역사를 가진 우리의 삶을 한낱 기성품으로 만든다. 인공지능의 위협까지 가세한 현대 사회에, 인간의 시선이 머무는 삶을 꿈꾸는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지식을 얼마나 습득했느냐보다 세계를 마주하는 태도가 훨씬 중요하다."(27쪽)

하승미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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