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문의 한시산책] 수운정 피서(水雲亭避暑) - 정래교

입력 2020-08-20 14:51:58

하늘 복판 붉은 태양 새 울음도 지쳤는데 / 赤日中天鳥不鳴(적일중천조불명)

산 사람 말을 타고 한가하게 걸어가네 / 山人騎馬作閒行(산인기마작한행)

어느덧 산속 길로 따각따각 들어서니 / 翛然去入連山路(유연거입연산로)

솔바람 시냇물 소리, 우와 이제 살 것 같네 / 喜得松風澗水聲(희득송풍간수성)

올봄에는 모두 가보지 못했다. 일 년에 열두 번씩은 안으러 간 나무에게. 초파일엔 어김없이 찾아가던 먼 절집에, 만 송이 꽃을 피우는 내 고향집 백목련께. 백 리 밖 어느 산골 잔돌 많은 채마밭에, 안 가면 몸살 나는 경주 남산 돌탑 앞에, 지난해 높은 산으로 이사 가신 아버님께, 올봄에는 모두 가보지 못했다. 전 인류를 공포와 전율의 도가니로 와장창 몰아넣고 있는 난데없는 코로나 사태 때문이다. 올여름에도 아무 데도 가보지 못했다. 장마철에 접어들자 달포를 두고 게릴라식 물 폭탄이 마구 쏟아져서, 나라 전체가 엉망진창의 쑥대밭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제발 푸른 하늘을 좀 보게 해 달라고 기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비가 뚝 그치자 태양이 정수리 위에다 직사광선을 내리꽂기 시작한다. 습기와 열기가 뒤범벅되어 콩죽 같은 땀이 줄줄 흐르고, 밤마다 열대야가 계속되어 며칠간 잠도 자지 못했다. 이 지경이 되면 새떼들도 지쳐서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가 없다. 숲속에서 살고 있는 새들도 그런데, 하물며 더위에 막무가내 노출되어있는 사람이야 말할 것도 없다. 이제 산과 바다로 뛰어나갈 참인데 코로나가 또다시 무서운 속도로 창궐하고 있으니, 잠시 한시 속의 화자가 되어 작품 속 산속으로 피서를 떠나볼까.

보다시피 화자는 무더위를 피하기 위하여 말을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어디로 갈까? 깊은 산속 정자 수운정(水雲亭)이 그 목적지이다. 천천히 가고 있는데도 말은 어느덧 따각따각 경쾌한 발자국 소리를 내면서 적막한 산속으로 들어간다. 그 순간 솔바람이 쏴아~ 쏴아~ 불어오면서, 땀으로 뒤엉킨 머리카락을 하나하나 가다듬어 빗질해준다. 어디 그뿐인가, 계곡을 내달리는 물소리가 가세하여 악보에도 없는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우와 시원하다. 이제 살 것 같다. 저쪽 숲속 하얀 구름 아래 수운정의 천년 묵은 골기와 지붕이 어렴풋이 드러나 있다. 이제 곧 수운정에 도착하면, 먼저 시원한 냉수부터 한 사발 마셔야겠다. 그리고는 대청마루에 냅다 드러누워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면서 2박 3일간 먹지도 않고 잠이나 푹 자고 돌아올까 보다.

이종문 시조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명예교수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