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전쟁은 어떻게 인간을 괴물로 만드는가…중일 전쟁 전범의 고백

입력 2020-08-20 14:49:06

악한 사람들/ 제임스 도즈 지음/ 변진경 옮김/ 오월의봄 펴냄

2017년 12월 13일 중국 장쑤성 난징에서 열린 난징대학살 80주기 추모식. 자료사진 연합뉴스
2017년 12월 13일 중국 장쑤성 난징에서 열린 난징대학살 80주기 추모식. 자료사진 연합뉴스
책
책 '악한사람들'

"상관은 군인에게 사람을 죽이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마을에 들어갔을 때 마을 사람들 열 명 정도를 끌고 왔어요. 그들을 나무에 묶어둔 채 우리 중 열 명 정도를 나무 앞에 길게 줄지어 세웠어요. 그 다음 "죽여라"라는 명령을 받았어요.

아마 서른 명이나 스무 명 정도의 사람들이 다 함께 (그들을) 찔렀을 거예요. 부대로 돌아가서 우리 중 절반 정도는 음식을 먹지 못했어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가 되면 익숙해지고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걸 하면 실적이 올라갈 거야." 중일전쟁 전범의 고백이다. 그들은 자신에게서 악마를 발견했다.

◆악의 포르노그래피를 넘어선 진정한 성찰

강간, 학살, 고문, 생체 실험….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각종 잔악무도한 악행, 전범들은 왜 그토록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까? 악한 사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신간 '악한 사람들'은 중일전쟁 전범들의 고백을 토대로 평범하던 개인이 어떻게 전쟁 범죄의 가해자가 되는지 파헤친다.

저자는 전범들을 악한 사람들로 치부하고, 그들이 한 행동은 모두 나쁘다고 결론 내리는 쉽고 간편한 방식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전범이 저지른 잔혹한 모습을 묘사하고, 독자가 충격적인 사실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악의 포르노그래피'와 다름없으며 이는 악에 대해 심도 있게 성찰할 기회를 박탈하는 탓이다.

대신 저자는 악행은 이미 벌어진 일이고, 더욱 중요한 것은 현재까지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지 탐구한다. 지금도 일본은 한국과 중국에 대해 전쟁 역사 왜곡과 갖은 혐오발언을 일삼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은 그들이 왜 그런 짓을 저지르는지, 인간을 괴물로 만들어버리는 조직적, 구조적, 심리적 기제를 분석해 악한 사람들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이를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에 대해 답을 내리고자 한다.

이런 탐구 과정은 궁극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떤 세상을 만들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더 넓고 깊은 사유로 발전할 수 있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가해자의 증언, 인권, 트라우마를 어떻게 재현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담겨 있다.

◆전쟁을 위해…폭력을 생산하는 제도

'대량학살'(genocide)에 대해 처음 학자들은 가해자의 개인적 성격에서 공통점을 찾으려고 했지만 이런 접근 방법으로는 '악한 사람'을 구분지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개 악한 사람은 평범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부분의 학자들은 대량학살의 원인을 개인의 성격보다는 조직 정체성, 사회적 상황, 국가 이데올로기에서 찾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대량학살 연구에서 관건은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보다는 '당신은 어느 사회에 속해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폭력을 생산하는 제도에 집중한다. 많은 학자들은 대량학살을 일으키는 폭력성을 키우는 요인은 어린 시절 시작된 문화적 훈련이라고 설명한다. 일본에서는 전쟁 전 공교육 과정에 '군국주의와 천황 숭배 사상의 체계적인 주입', '전쟁터 상황에 기반을 둔 산술 교육', '탐조등, 무선 통신, 지뢰, 어뢰에 대한 일반적인 정보' 등이 포함돼있었다. 인터뷰이들도 어릴 때부터 이런 훈련을 받아왔다고 증언했다.

권위에 대한 복종을 강요하는 일본군의 신병훈련은 군인으로 하여금 사람 죽이는 일을 고민없이 실행하도록 만들었다. 군대에서는 폭력과 체벌을 통해 정상적으로 길들여진 정체성을 박탈당했고, 명령에 복종하도록 통제당했다. 아울러 장기간의 교육과 학습을 통해 주입된 '특정 존재에 대한 혐오'는 사람을 죽인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던 사람들로 하여금 혐오대상을 죽이고 싶은 마음을 갖게 했다. 전쟁 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스스로에 대해 전쟁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라 그저 상관의 명령을 따른 거라고 생각할 뿐이다.

2017년 12월 13일 홍콩에서 열린 난징대학살 80주기 추모식. 자료사진 연합뉴스
2017년 12월 13일 홍콩에서 열린 난징대학살 80주기 추모식. 자료사진 연합뉴스

◆전범의 고백을 기록해야 하는 이유

중일전쟁 일본군 전범들의 고백 앞에 저자 제임스 도즈는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끔찍한 고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일은 고민스러웠지만 그는 곧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저지른 범죄 일부는 은폐되었고, 거짓이 되기도 했으며, 역사책에서 왜곡되거나 사라지는 현실 속에서 그가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그는 이를 기록했다.

예컨대 일본 문부성은 1962년 교과서에서 일본군이 중국에서 저지른 전시 강간에 대한 언급을 삭제했고, 1994년 일본 법무상 나가노 시게토는 1937년에 일어난 난징대학살을 "날조된 것"이라고 했다. 2007년 아베 신조 총리는 한국 여성들을 성노예로 강제동원한 사실을 부인했다. 이처럼 최근 수십 년간 일본 정부 관료들, 학자들, 전직 군 장교들은 과거 일본제국이 저지른 만행을 부인하거나 축소했다. 그들은 여전히 사과를 거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범들의 증언은 하나의 진실로서 다뤄져야 하며 그들의 말을 기록하는 것은 그 자체로 중요한 작업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더군다나 아직 생존자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진실을 위한 투쟁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아울러 저자는 잊지 않고 자신의 조국(미국)이 벌인 전쟁에 대해서도 성찰한다. 중일전쟁과 세상 모든 전쟁은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이 그가 내린 결론이다. 356쪽, 1만9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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