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절간 같은 청와대

입력 2020-08-10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조선의 유학은 유별났다. 유학의 가치와 가르침보다 입이 앞섰다. 행동은 뒤따르지 못하기 일쑤였다. 특히 불교를 짓누르면서 이용한 사례는 조선 왕조 패망 때까지 이어졌다. 유학을 달고 다닌 이들은 절 억압에 앞서면서 절을 잘(?) 활용했다. 탄압하면서도 스님을 마치 종처럼 부렸다. 한문의 문집이나 글을 남긴 사람들 유산을 뒤지면 쉽게 찾을 만큼 사례가 풍부하다. 사람이 귀하다고 외치면서 스님은 천시했다.

산과 사찰 나들이에 스님의 길 안내에다 육체적 노동까지 시켰던 이야기는 숱하다. 스님들의 수행처인 고요한 절간에서 음주가무를 즐기고 기생까지 끼고 놀기도 했다. 사찰에서 기녀와의 동침도 기록으로 남길 정도였다. 이처럼 탄압하던 절을 나들이터 또는 놀이터로 삼았다. 또한 유학으로 부귀와 영달을 바라던 이들의 과거시험 준비 공부터로 절간이 쓰였다. 자연에 묻혀 고요한 분위기 속 부처의 가르침을 배우며 실천하던 사찰이 세속 유림의 유희와 출세 공간으로 둔갑된 셈이다.

그나마 절을 세속 번뇌와 속진(俗塵)에서 벗어난 공간으로 읊거나 그린 유림의 작품이 많아 다행이다. 특히 사찰의 종소리, 새벽 저녁 숲속 산사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배경으로 삼은 시와 글에는 긍정적인 표현이 의외로 많다. 새와 바람, 자연의 흐름 외는 들리지 않는 소리 없는 절간의 그윽하고 고요한 가치만은 유림도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들 또한 사람의 몸을 타고 난지라 힘들고 지칠 때, 절실한 성취를 위한 공간으로 절간을 외면할 수 없었을 터이니 이해할 만하다.

지난 8일 미래통합당 송파병 당협위원장인 김근식 경남대교수가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등 수석비서관들의 집단 사의에 대해 올린 글이 보도됐다. 김 교수는 "왠지 고요한 절간 같은 청와대, 사람들이 다 떠난 텅 빈 집처럼 느끼는 건 저만의 기우이자 우려겠지요"라고 말했다. 그의 주장처럼 청와대가 텅 비고 절간처럼 될지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은 인물로 넘치거나 지난날 전방 나들이로 물의를 일으킨 참모가 버틴 청와대보다 차라리 산사처럼,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입니다'라는 기업체 광고처럼, 공정한 세상을 위해 고뇌하는 절간 같은 청와대가 나을지 모를 일이다. 이를 바란다면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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