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오랜 관습이나 분위기 같은 것이 어느 순간 확 바뀌어있음을 실감할 때가 있다. 가장 놀라운 것 중 하나는 '남아선호' 관념의 변화다. 결혼하면 대 이을 아들 낳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의무의 하나였던 우리네였다. 아들 낳으려다 줄줄이 딸부자집이 되기도 했고,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해 평생 냉대받고 죄인처럼 살아야 했던 여성들도 적지 않았다. 철옹성같던 남아선호가 언제적 얘긴가 싶게 요즘은 '여아선호' 가 대세이다.
공공장소에서 홀연 담배연기가 사라진 것도 그러하다. 아파트 뒤란 같은데서 눈치 보며 담배 피우는 흡연족이 때로 안쓰러워 보일 정도이다.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닫기 버튼을 누르던 습관도 이전만큼 자주 볼 수 없다. 기질 탓인지 바뀌는 것도 '빨리빨리'다.
요즘 또하나 피부로 느끼는 변화상은 '1인 가구' 급증세이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2020년 6월 현재 우리나라 주민등록 가구의 38.5%가 1인 가구로 역대 최고치라고 한다. 그 다음이 2인 가구(23.1%).
2000년대초만 해도 노부모가 결혼한 자녀와 함께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움직일 수 있는 한 자식에게 부담 주고 싶지 않다" 며 따로 사는 예가 많다.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미혼 자녀들도 늘어나는 추세라 이래저래 1인 가구가 증가할 수 밖에 없다. 인구는 줄어드는데 집 수요는 오히려 늘어나는 현상과도 맞물려 있다.
집집이 식구들로 오글오글했던 때가 있었다. 1970, 80년대만 해도 한집에 자녀 서너명은 보통이었다. 7, 8남매도 더러 있었고, 10남매를 넘나드는 집도 아주 드물지는 않았다. 조손 3대가 사는 집은 10명 내외 식구들로 북적였다. 빠듯한 살림에 지지고 볶으면서도 칡넝쿨처럼 서로를 보듬으며 살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어느샌가 1인 가구가 주류인 세상이 됐다.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혼밥(혼자 밥먹기)' '혼술(혼자 술 마시기)' '혼영(혼자 영화보기)' '혼행(혼자 여행하기)' 등 '혼'자 돌림 라이프 스타일이 등장한지도 꽤 됐다.
'혼술'이나 '혼영' '혼행' 은 개성이나 취향에 따른 것이라 별 문제가 없다. 반면 '혼밥'은 좀 다르다. 단촐한 밥상을 앞에 두고 홀로 밥을 우물거리노라면 세대를 막론하고 옆구리가 허전해지는건 왜일까.
사실 가족이 있어도 저마다 분주한 탓에 함께 밥 먹을 기회가 좀처럼 없는 것이 현대인의 생활이다. 하지만 두레밥상이 있던 시절은 달랐다. 그땐 아침저녁으로 온 식구가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고교생 때 였던가, 아침에 여덟 식구가 두 개의 밥상으로 나뉘어 부지런히 수저를 놀릴 때면 늘 라디오에선 경쾌한 멜로디의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인사를 나눕시다 명랑하게, 일년은 365일~♬". 밥을 먹는 우리의 마음도 절로 명랑해지곤 했다.

밥상에선 종종 아버지의 지적도 있었다. 밥 한숟갈에 이삼십번은 씹어라, 흘린 밥 알은 주워먹어라, 젓가락으로 반찬 휘정거리지 마라 …. 두레밥상은 곧 밥상머리 교육의 현장이었다.
주전부리 부실하던 그 시절, 비오는 날의 수제비나 '정구지 찌짐', 포실포실 분이 나는 찐감자 등은 두레밥상 위의 행복이었다.
롱다리 식탁의 등장으로 숏다리 두레밥상은 자취를 감추었다. 식구 수도 줄어 급기야 1인 가구가 대세이다. 냉장고엔 음식물이 가득하지만 사람들은 "입맛이 없다"고들 한다.
시인 공광규의 시 '얼굴반찬'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으려나.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새벽 밥상머리에는/ 고기반찬이 가득한 늦은 밥상머리에는/ 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 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넣고/ 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간 것입니다/ 밥상머리에 얼굴반찬이 없으니/ 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

'식구(食口)'란 '함께 밥 먹는 사람'이다. 오늘의 우리에게 가족은 있으나 식구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입맛 돋궈주는 정겨운 '얼굴반찬'이 없어지는 것이다. 식구를 불러모으던 두레밥상이 문득 그립다.
장맛비 그치자 기다렸다는 듯 매미 소리 그득하다. 7년여 시간을 땅 속에서 견디다 나온 매미가 나무 위에서 목청껏 노래하는 날은 고작 2주 내외.
끝자락 비가 다시금 오락가락 하는 사이 매미들이 또 맹렬히 울어댄다. "매미든 사람이든 한번 왔다가 가는 건 도긴개긴 아닌가요~ 하수상한 이 세상, 모쪼록 재미나게 사세요~"라고 외치는 듯 하다.
전경옥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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