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를 버린 잠수함이 있었다. 태평양에 잠항 중인 한 잠수함에 탄 토끼가 갑자기 허덕거렸다. 호흡곤란이다. 토끼 관리 사병은 상황을 상관에게 보고했다. 이런 상황이면 함장은 수면 부상을 명령해야 한다. 시간은 흘러가는데, 명령은 지체되고 있다.
함장실에서 큰소리가 흘러나왔다. 부함장과 주요 참모들은 토끼의 몸부림을 무시했다. "산소측정기는 정상 신호다. 토끼가 미쳐 날뛰는 것은 다른 병 때문이다"고 했다. 또 "지금 수면으로 올라가면, 적의 초계기와 군함이 공격할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초임 장교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기계는 아직 성능이 검증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적을 두려워하면 물고기 밥이 될 수 있다"며 수면 부상을 건의했다. 부함장과 참모들은 "상관의 말에 토를 달지 마라. 군기(軍紀)가 빠져도 한참 빠졌다"며 장교들을 군율(軍律)로 엄히 다스릴 것을 함장에게 요구했다. 또 말썽을 일으킨 '병든 토끼'는 창고에 가둬야 한다고 했다.
함장은 고심했다. 그는 선한 눈매를 가졌지만, 카리스마가 없다. 하지만 부하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지휘관이었다. 이번에는 달라져야 했다. 초임 장교들의 충정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단일 대오! 단호한 모습을 보여야 했다. 부함장과 핵심 참모의 의견에 무게를 둬야 했다. 부함장은 군부 내 인맥이 두텁다. 게다가 '마음의 빚'이 있는 사람이다. '별'을 달려면 앞으로 그의 도움이 필요하다. 함장은 부함장을 따로 불렀다. "임자 하고 싶은 대로 해, 임자 곁엔 내가 있잖아."(영화 '남산의 부장들' 대사).
며칠 후 반 잠수 상태로 표류하던 잠수함이 발견됐다. 탑승자 모두 질식사한 상태였다. 당국은 사고 원인을 기계 고장이라고 밝혔다. 사람들은 그 발표를 믿지 않았다.
지어낸 이야기다. 그러나 잠수함에 토끼를 태우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잠수함에선 공기 중 산소 농도 유지가 중요하다. 잠수함 내 공기의 질은 승무원의 생명을 좌우한다. 토끼는 공기에 민감한 동물. 산소가 부족하면 사람보다 6~7시간 먼저 죽는다. 잠수함 속 토끼가 이상 행동을 보이면, 잠수함은 수면으로 올라가 산소를 보충했다.
소설 '25시'를 쓴 루마니아 작가 게오르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잠수함 승무원이었다. 어느 날 잠수함에 있던 토끼가 죽었다. 그러자 함장은 감수성이 예민한 게오르규에게 '토끼 역'을 명령했다. 그는 이 특별한 체험을 하면서 통찰을 얻었다. 작가가 바로 '잠수함의 토끼' 같은 존재라는 점. 토끼가 잠수함 내 위기 상황을 몸으로 알리듯, 작가는 병든 세상을 글로 고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토끼와 잠수함'(박범신 작)이란 소설이 있다. 작가는 무단횡단, 음주 소란, 행상 등으로 경찰 호송버스에 잡힌 시민을 토끼라고 설정했다. 당시는 국민 입을 틀어막던 억압의 시대였다. 무더위 속에 창문마저 닫힌 버스에 갇혀 "우리도 사람이라고, 목이 마르면 물을 마셔야 한다"는 잠수함 속 토끼 같은 절규가 지금도 생경하지 않다.
지루하고 음습한 장마처럼 이 나라의 정치와 국정은 지겹고 음험하다. 갈팡질팡하는 부동산 정책, 뜻 모를 사법·검찰개혁, 아리송한 검언(檢言) 유착, 무용지물 인사청문회, 내로남불식 대응. 여기에 다수결의 횡포와 진영 논리까지. 오죽하면 '나라가 니꺼냐'는 문구가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상위를 차지했을까. 내부의 쓴소리에 융단폭격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을 쫓아내려고 한다. 쓴웃음이 난다. 안동 외딴 동네의 비 오는 밤도 '광기의 시대'에서 자유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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