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의 시와 함께] 내 아들의 말 속에는

입력 2020-07-29 16:30:00

내 아들의 말 속에는

최서림(1955~ )

내 아들의 말 속에는 세심해서 상처투성이인 나의 말이 들어있다 거간꾼으로 울퉁불퉁 살아온 내 아버지와 내 아버지의 아버지의 꺼칠꺼칠한 말이 숨 쉬고 있다 조선 후기 유생 崔瑞琳의 漢詩가 들어있다 초등학교 3학년 내 아들의 비뚤비뚤 기어가는 글자 속에는 내 아버지처럼 글자 없이도 잘 살아온 이서국 농부들이 공손하게 볍씨를 뿌리고 있다 눈길을 더듬으며 엎어지며 쫓기듯 넘어온 알타이 산맥의 시린 하늘과 몽골초원의 쓸쓸한 모래먼지 냄새가 박혀있다 바벨탑이 무너진 후 長江처럼 한반도까지 흘러들어온 광목 같은 말에는 우리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흘린 눈물과 피와 고름만큼의 소금이 쳐져 있다 내가 살고 있는 堂고개에는 비린 말들이 60년대 시골김치처럼 더 짜게 염장되어 있다 가난해서 쭈글쭈글한 말들이 코뚜레같이 이 동네 사람들의 코를 꿰고 몰고 다닌다

글씨를 보고 그 사람의 성격을 추론하는 학문이 있다고 들었다. 말투도 그럴 것이다. 손글씨가 멋진 사람들은 늘 부러움의 대상이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글씨를 크게 쓰는 분은 문인수, 김선굉 시인이다. 이분들의 글씨 몇 자는 한 페이지를 꽉 채울 만큼 크고 활달하다.

'열두 살에 죽은 친구의 글씨체로 편지를 쓴다'고 한 신해욱 시인의 글씨체는 어떤 것일까?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지만, 장석남 시인이 돌이나 나무에 새긴 도장을 하나 갖고 싶었다. 그의 성격과 악력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도장을 간직한다는 것은 필정(筆情)을 느끼고 싶다는 말이다.

글씨에 못지않게 중요한 건 그 사람의 말투다. 내가 좋다고 생각한 말투는 나희덕 시인의 것이다. 서두르지 않고, 어렵지 않고,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일정한 보폭으로 정확히 구사하는 것이 참 대단해 보였다.(대부분 시인들은 버벅거리거나 중언부언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버지와 나와 아들로 이어지는 이 시 속의 말들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것은 '꺼칠꺼칠한 볍씨 같은 말이고, 광목 같은 말이고, 눈물과 피와 고름만큼의 소금이 쳐져 있는 말이고, 더 짜게 염장되어 있'는 말이다. 가난해서 쭈글쭈글한 말이지만 곰곰 들여다보면 자긍심이 느껴지는 말이다.

배운 사람들의 말은 위장되어 있지만, 좋든 싫든, 옳든 그르든 못 배운 사람들의 말은 거짓이 없다. 아버지보다 더 배웠지만 늘 아버지보다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말'이다. 아버지의 지혜다. 내가 쓰는 말은 지식과 가까울지는 몰라도 아버지의 말처럼 삶의 지혜와 현답으로 채워져 있지는 않다. 말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보다 경험을 많이 한 사람의 것이 더 옳고 정확하다.

이제 글자를 모르고도 잘 사는 법과 이치를 알던 사람들은 사라졌고 그런 시대도 갔다. 청도군 풍각이랬나 이서랬나, 시인의 고향 사람들이 쓰던 울퉁불퉁한 말이 듣고 싶지만 어쩌랴. 문명의 발전(?)으로 인해 이제 더 이상 말도 글씨도 유전되지 않는 시대가 이미 우리 앞에 와 있는 것을.

시인 유홍준: 1998년 『시와반시』로 등단. 시집 『喪家에 모인 구두들』 『나는, 웃는다』 『저녁의 슬하』 『북천-까마귀』 『너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축복』이 있다. 시작문학상 이형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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