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배신을 준비할 때다

입력 2020-07-27 14:36:07

이쌍규 영화기획자·작가

이쌍규 영화기획자·작가
이쌍규 영화기획자·작가

살면서 우리는 배신의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도 되기도 한다. 아마 인류 최초의 배신은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인간 배신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배신의 종류도 다양하다. 개인적 배신, 사회적 배신, 정치적 배신 등이 있다. 최근 부부의 배신을 다룬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옆자리에 누워있는 내 남편을 의심스럽게 바라보는 감정이입의 기폭제가 되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두 사람이 '사랑'이라는 고리로부터 시작하여 '가족'이란 울타리를 만들어 서로의 인생을 공유한다. 너만을 사랑하겠노라고 약속하면서 부부의 연을 맺었다. 그러나 약속은 버려졌다. 사랑의 배신으로 시작된 증오, 이어지는 서로를 향한 복수가 주된 드라마 내용이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다.

"사랑은 무한하지도 불변하지도 않다. 누가 당신을 한번 배신했다면 그 사람 탓이고, 두번 배신했다면 당신 탓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면, 답은 의외로 간단한다. 서로의 결핍을 인정하면서 살아가든지, 아니면 쿨하게 헤어지면 된다. 우리는 적대적인 배신에 분노를 느끼지만, 비적대적인 배신에 슬픔을 느끼지 않는다. 배신을 두려워하지 말자.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내 청춘 내 행복을 짓밟아 놓고 얄밉게 떠난 사랑의 배신자"에게는 무관심이 최고다. 배신당하는 자는 상처 받지만, 배신자는 더 비참한 정신적 상태에 놓인다. 복수란 상대뿐 아니라 자신까지 파괴한다. 다른 사람만을 위해서 살지 말자. 나없는 너, 나없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배신의 원인은 남으로부터 먼저 제공되지만, 치유의 출발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나를 철저하게 배려하면, 배신을 쉽게 당하지 않는다. 설령 배신을 당해도 인생 회복력이 빨라진다.

개인적 배신의 슬픔보다, 주권자로서 당하는 정치적 배신이 우리를 더욱 더 무기력하게 만든다. 누구도 정의와 공정, 나라와 지역의 담대한 발전, 노동의 가치, 계층간의 불평등, 청년의 결핍, 문화의 소외를 말하지 않는다. 자기 잇속 챙기기만 바쁜 침묵의 사회다. 현란한 이벤트만 있고, 구체적인 메시지는 전혀 없다. 그 배신의 선두에 정치권이 당당하게 서있다. '핑크빛은 무능하고, 파란빛은 오만하고, 노란빛은 힘이 없다.' 요상한 나라다. 우리는 의외로 예측된 배신에 잘 속아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쉽게 분노하고, 쉽게 잊어버린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를 '우매한 개돼지'라고 부른다.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것이라고 착각한다. 오만한 권력은 국민에게 탐욕의 비루함을 항상 강요한다. 그러나 강한 자보다 비루하고 뻔뻔한 자가 먼저 승리한다. 이제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배신을 준비할 때다. 그들이 민심의 배신을 느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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