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매일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불망(不忘)/ 최상근

입력 2020-07-20 18:34:05

최상근
최상근

형의 유품이 불타고 있었다. 옷과 책 그리고 구두였다. 유품 더미 위에서 여러 장의 사진도 다투어 타들어 갔다. 그 속에 대학교 개교기념 마라톤 대회 때 형이 선이 누나와 나란히 찍은 사진이 보였다. 불길이 갉아먹듯 야금야금 사진을 태우자, 사진은 온몸을 오그라뜨렸다. 이윽고 아무 미련도 없이 하얀 재로 변했다.
그 사진은 나와도 인연이 있었다. 군 복무 중이던 형이 내게 편지를 보내온 적이 있었다. 학교 다닐 때 술값 대신 맡겨 놓은 학생증을 찾아놓으라는 내용이었다. 당시만 해도 학생증은 현금으로 통했다. 술값이 모자라 학생증을 잡히면 받아주던 70년대였다. 그러나 졸업도 했는데 학생증이 왜 필요한가 싶었다.
영업도 시작 전인 오전 10시쯤, 알려준 술집을 찾아갔다. 주인은 참 희한한 일도 다 본다는 표정을 지었다. 몇 년 전에 맡겨진 막걸리 외상 담보물이 학생증이었다면, 그것이 아직도 남아 있겠냐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외상값 대신 학생증 따위는 받아주지 않는다는 뉘앙스가 주인의 말에서 풍겼다.
주인을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가자, 아가씨 너덧 명이 둘러앉아 저녁때 손님 앞에 내어놓을 술안주를 장만하고 있었다. 땅콩을 나누고 오징어를 잘게 찢던 아가씨들이 나를 보자 일제히 까르르 웃었다. 밖에서 내가 주인아저씨와 나눈 대화를 다 들었던 것 같았다.
주인이 조그만 서랍을 열고, 내용물을 방바닥에 부었다. 두껍게 쌓인 먼지가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크고 작은 동전과 낡은 시계, 학생증도 더러 보였다. 그 가운데 하얗게 탈색된 학생증이 든 비닐 팩 하나가 있었다. 형의 학생증이었다. 비닐 팩에는 학생증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이미 불에 타서 재가 된 그 사진이 함께 들어있었다.
읍네 농업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형은 선이 누나를 좋아했다. 겨울 어느 날 밤, 형이 아랫동네 선이 누나를 만난다며 나가더니, 밤늦게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이불을 푹 뒤집어쓴 채 울었다. 어깨를 가늘게 떨었다. 바깥바람에 문풍지가 파르르 소리를 내고 있었다. 밖에서 일어난 일을 귀띔이라도 하는 듯했다.
선이 누나는 아랫동네에 살았다. 누나네 집은 그리 부유하지는 않았다. 형보다 한 학년 아래였는데, 눈같이 흰 피부를 가진 여고생이었다. 거기다가 인근 동네 또래 중에 단연 뛰어난 미모를 가졌다. 인사성도 밝아 누구에게나 상냥했다. 그런 누나가 무슨 말을 했기에 형을 울렸는지 의아했다. 그러나 영 짐작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누나에게는 이미 좋아하는 대학생이 있었다. 면 소재지에 있는 술도가 아들이었다. 그가 검푸른 색 대학교 교복을 입고 거리로 나서면,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선망의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는 좀처럼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 남의 이목 끄는 것을 그리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직 선이 누나 만날 때만 검은 구두를 신고 동네에 나타나곤 했다.
선이 누나에게는 수요일과 일요일은 특별한 날이었다. 선이 누나가 교회에 예배 보러 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누나 동네에 교회가 있었지만, 신도들끼리 패가 갈려 한쪽 편이 딴 살림을 차렸다. 선이 누나 집은 살림난 교회 편이었다. 새로 생긴 교회는 면 소재지를 거쳐 골짜기 동네에 있었다. 술도가 아들은 그때마다 선이 누나를 살림난 교회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는 저녁 예배가 있는 일요일 저녁이면 동네에 어김없이 나타났다. 그리고 선이 누나 집 대문에 그의 모습이 실루엣처럼 어른거렸다.
교회로 가는 길 도중에 과수원 농막이 있었다. 겨울철이면 농막은 텅 비어 있었다. 거기에는 방과 부엌도 있었다. 술도가 아들과 선이 누나가 교회도 안 가고 그 농막에 들어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둘이 들어가기만 하면 농막에서 연기가 난다고도 했다. 심지어는 농막에 빨래가 널리는 날도 있다고 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
농막은 가끔 동네 처녀 총각들의 야밤 데이트 장소였다. 그들은 배가 출출하면 국수를 끓였다. 미리 집에서 십시일반 가져온 깍두기며 온갖 나물 반찬이 방안에 펼쳐졌다. 거기다 소주까지 마시며 밤새도록 떠들고 놀았다. 동네와 떨어져 있어서 어른들의 감시망을 벗어난 최적의 사교장이었던 셈이다. 바깥은 공기조차 얼어붙을 정도로 찬 바람이 몰아쳤다. 들판의 못이란 못은 얼음으로 뒤덮였지만, 농막 안 방구들은 벌겋게 달아올라 발바닥이 델 정도였다. 농막에서 흘러나온 처녀 총각들의 웃음소리가 혹독한 겨울밤을 녹여낼 것만 같았다. 농막의 용도가 이와 같음을 잘 알고 있는 동네 사람들은 선이 누나와 술도가 아들의 농막 로맨스를 일소에 붙였다.
선이 어머니도 선이 누나와 술도가 아들을 둘러싸고 번지는 별별 소문을 다 들었지만 아무 말이 없었다. 나쁠 게 없다는 태도였다. 돈 많은 술도가 아들이 딸과 가까이하는 것을 오히려 자랑하고 다녔다. 술도가 주인인 박 씨는 소작농을 겨우 면한 선이 누나네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부자였다. 선이 어머니는 갑자기 신분 상승이라도 한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몇 년 전 가뭄이 한창일 때였다. 멀리 대구에서 빨간 소방차 한 대가 온 적이 있었다. 술도가 박 씨의 빽으로 왔다고 했다. 불자동차는 물이 고여 있는 하천에서 허연 물줄기를 품어 올렸다. 바닥이 턱턱 갈라진 논에 폭포처럼 물이 떨어졌다. 사람들은 처음 보는 불자동차의 위력에 감탄하며 일제히 손뼉 쳤다. 선이 어머니는 그때 일을 들먹이기도 했다.
박 씨의 얼굴은 평소에도 늘 붉게 물들어 있었는데, 사람들은 술도가에서 만든 막걸리를 시도 때도 없이 마셔서 오른 술 살이라고 했다. 술 살 오른 박 씨가 껄껄하며 너털웃음을 터뜨리면 남자다웠다. 씀씀이도 후했다. 술도가 박 씨의 위상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모든 상황이 형에게는 현존하는 위협이었다. 술도가 아들은 사실 형이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 박 씨는 면장이나 지서장과 수시로 주막을 드나드는 사이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술도가에서 뻗쳐 나오는 술기운이 면 전체 동네 골짝 골짝에 뻗치던 시절이었다. 어디서고 일하는 데는 어김없이 막걸리 통이 따라다녔고, 그때마다 술도가 술통 실린 배달 짐자전거가 요란하게 길을 달렸다.
형은 은근히 다급했다. 누나에게 고백 한 번 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용기를 내본 것인데,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은 듯했다. 어째서 계란으로 바위 치기 식의 게임을 벌였단 말인가. 우리 집도 중농中農은 되었지만, 술도가에 비하면 턱도 없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을 타파할 방법이 형에게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형은 포기하지 않았다.
육군사관학교를 떠올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육사에 들어가리라. 멋진 육사 제복을 입고 나타나서, 다시 한번 선이 누나의 마음을 움직여보려고 마음먹었다. 비록 읍네 농고였지만, 형은 밤늦게 공부하며, 육사에 합격하려고 투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신체검사에서 불합격하고 말았다. 평발이 원인이었다. 평발은 발 안쪽에 옴폭 들어간 부분이 평평하게 된 것을 말한다. 평발인 사람은 심한 운동을 할 수 없다. 발이 갈라지는 듯한 통증이 발바닥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대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먼 길도 가지 못한다. 군사훈련같이 격렬한 체력단련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신체검사에 대비해 신발 속에 볼록한 나무토막을 넣고 다녔다. 그렇게라도 해서 평발을 면해보려고 애썼으나, 발바닥에 시커먼 멍 자국만 생겨, 발을 절룩거릴 정도였다. 시험에 떨어지고 나자 선이 누나에게 다가가려던 노력은 또다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선이 누나를 생각하는 마음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마음속에만 쌓였다. 악착같이 사는 데 한계를 느꼈다. 구름 위에 떠 있는 것처럼 생활이 느슨해졌다. 노력해서 되는 것은 없다. 체념할 줄 알아야지. 그것이 현실이다. 형은 자포자기했다.
지방 국립대학에 진학했지만, 공부는 뒷전이었다. 대신 운동에 흥미를 느꼈다. 유도 공인 2단의 유단자가 되었다. 등산에 몰입해 3학년 때는 산행 대장을 하며 전국을 누볐다. 친구들과 어울려 막걸리를 마시며 놀기에 바빴다. 산행한 후에는 더 많이 마셨다. 거의 매일 마시는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어느 때는 방 안에서 노래를 불렀다. 오페라 카르멘이었다. 사랑하는 군인 호세와 또 다른 연인인 투우사 에스카멜리오 사이를 오가며 염문을 뿌리는 집시의 여인 카르멘이었다. 카르멘은 악마적 유혹에 능한 치명적인 여인이다. 형의 하모니카 소리는 호세를 애타게 부르는 카르멘의 노래처럼 특별해서 호소력이 강했다. 어딘가에 종속되어 헤어나지 못하는 듯한 비장미가 묻어났다.
사랑은 길들이지 않는 새, 누구도 길들일 수 없어, 누구나 불러도 소용없어, 한 번 싫다면 그만이야, 겁줘도 달래도 소용없어, 한쪽이 입 열면 한쪽은 입을 닫네, 그 다른 쪽이 나는 좋아, 말은 없지만 좋아져, 날 안 좋아하면 내가 좋아할 거야, 내가 좋아하면 조심해야 해, 당신이 잡고 싶었던 새는 날갯짓하며 날아가 버렸네, 사랑이 멀리 있다면 기다려도 되지만, 기다릴 필요 없이 여기 있는 걸, 당신 주위를 휙휙, 왔다 갔다 돌아오네, 단단히 잡았다고 생각하면 달아나고, 달아났다 생각하면 붙잡히네.
노래가 끝나도 한동안 여음이 남았다. 반딧불이가 날아간 선을 따라 채 사라지지 못하고 이어지는 가느다란 불빛과 흡사했다. 카르멘은 선이 누나였을까. 길들일 수 없는 새, 부르거나 달래도 소용없고, 한 번 싫다면 그만이다. 그러나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나는 너를 좋아하리라. 네 주위를 날아다닐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매력 도발의 여인이 호소하는 듯한 목소리로 부르는 애가哀歌는 가슴을 아프게 했다. 형이 부르는 노래에도 그것과 다를 바 없는 감성이 넉넉하게 실려 있었다. 내 마음 어디를 건드리는지 무한한 상상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카르멘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선이 누나를 만나러 아랫동네로 갔던 그 겨울밤의 일을 떠올렸다. 술도가 아들이라는 연적戀敵이 없었더라면 그렇게까지 선이 누나를 마음에 두었을까 싶었다. 먼지를 뒤집어쓴 채 진열대 한쪽 구석에 있던 도자기 한 점이 감정을 옳게 받고 난 다음에 갑자기 귀한 보물 대접을 받는 경우가 있다. 선이 누나 역시 평범했는데 술도가 아들이 나타나자 형의 마음을 끌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동네 가난한 집에 한 처녀가 있었다.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였지만 가는 몸매에 얼굴이 예뻤다. 그 처녀가 빨래터에서 빨래하고 있을 때였다. 지나가던 낯선 대학생들이 그 처녀에게 말을 걸며 웃고 떠들었다. 대학생들은 방학을 맞아 근처 동네 친구 집에 놀러 온 도시 청년들이었다.
처녀는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다. 그 장면을 목격한 우리 동네 청년 하나가 대학생들에게 달려들어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다. 한동네에 살았어도 그 청년이 처녀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싸움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낯선 대학생들이 동네 처녀를 희롱한 데 대한 분노였다. 분노는 청년의 자존심 같은 것이었다.
별 감정이 없었던 처녀와 청년은 그 일로 급격히 가까워졌다. 이듬해 봄이 되자 청년과 처녀는 밤에 몰래 동네를 떠났다. 청년 부모의 반대가 뻔했기 때문이다. 청년은 과수원집 아들이었다.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이였지만 둘은 한 몸이 되었다. 나는 한때 형과 선이 누나 사이에도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염려한 적이 있었다.
형과 나는 자취를 했다. 주말마다 농사짓는 부모님에게 돈 타러 가는 것은 고역이었다. 그래도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버지는 지난주 돈의 사용처를 형에게 물었다. 형은 술값으로 탕진한 돈을 책값과 대학교에서 하는 실습비인 것처럼 말씀드렸다. 국립대학은 전부 국비였다. 따로 실습비라는 게 없었다. 형이 말하는 실습비는 형의 막걸릿값이었다.
아버지의 호통이 이웃집 담을 넘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아버지 곁에서 초점 흐리는 말을 했다.
"자식 손톱 밑에 흙 들어가게 할랑교!"
어머니는 무조건 자식 편을 들었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녹아내릴 듯한 땡볕이 내리쬐는 들판에 벌레처럼 달라붙어 농사일할까 봐 겁이 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동네에 눌러앉아서 일 거드느라 검게 탄 아이들을 그토록 보기 싫어했다. 내 자식이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성내(城內, 도시) 물을 먹어야 하얀 피부가 된다. 사람답게 살아야지. 어머니의 신앙은 자식들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역정에 아버지는 기가 한풀 꺾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정말 형과 내가 받아 가는 돈의 사용처를 궁금해 했다. 도시에서 자취하는 아이들이 우리 집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동네에 또래 아이들이 더러 자취를 했다. 아버지는 그 집 사람들에게서 들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다른 집 아이들보다 턱없이 많은 돈이 들어간다는 것을 알았다.
나와 형은 그저 어머니의 입만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동네의 이집 저집에서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왔다. 어미 새가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것처럼, 형과 나는 어머니가 얻어온 빚을 야무지게 받았다. 얻어온 빚의 자초지종은 묻지 않았다. 어머니는 형과 나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형과 나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나는 간장 댓 병을 들었다. 형은 고구마 몇 개가 들어 있는 쌀자루를 짊어졌다. 막차 버스를 놓치는 날에는 내가 결석해야 할지도 몰랐기 때문에 헉헉거리며 국도를 향해 달렸다. 멀리서 산모퉁이를 돌아오는 버스의 불빛이 보였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마음을 비로소 쓸어내렸다. 가끔은 고장이 나서 막차 버스가 오지 않을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형은 군에서 제대한 후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사회 초년생답게 패기와 희망에 차 있었다. 학생들 앞에서 형은 교사로서의 권위 같은 것은 일찌감치 내려놓았다. 학생들과 동등한 상황에서 수평적으로 소통하고 싶어 했다. 학생들의 감춰진 생각들이 형과의 사이에서 자유롭게 오고 갔다. 겉으로 보기에는 교실 분위기가 흐트러진 듯했으나, 학생들은 형을 진심으로 따랐다. 형은 학생들의 순수한 마음이 기성세대의 감성에 의해 다치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학생들 나이 때 가지는 이성 관계, 친구 문제 등이 갈등의 핵심이었다. 학생들은 그것들을 터놓고 이야기할 곳이 없었다. 공부 이외에는 모든 것이 쓸데없는 잡념으로 취급되었다. 그것이 인격에 미칠 영향 따위는 학교에서 무시되었다. 형은 자연히 학교와 마찰을 빚었지만, 갈등이 심화하지는 않았다.
내가 학교생활을 물으면 형은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렸다. 선이 누나가 간호학과를 나와 모교인 국립대학병원에 근무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남편은 잘나가는 가구회사 사장이고, 아들이 공부를 잘한다고도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며 내가 의아해하자, 소문이 그렇게 났더라며 어색하게 웃었다.
사실 누군가를 마음에 두며 살아간다고 해서 죽을죄를 짓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영혼을 살찌운다. 감성이 풍부해지고 남들과 쉽게 공감하는 능력을 키운다. 이것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과 관계를 형성한다. 나아가 자아가 형성되는 것이다. 비로소 건전한 한 사람이 사회에 뿌리내린다.
TV에서 가수가 옛사랑 떠올리는 노래를 부르자, 따라 부르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았다. 자신도 모르게 손바닥이 아프도록 손뼉 치며 몸까지 흔들어댔다. 그리워하는 마음은 감추려 해도 감춰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들 비슷한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움은 엄연히 실존하는 것이며 실존은 본질에조차도 앞선다고 했다. 사람은 사랑을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다. 그들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가 그 사실을 입증하고 있었다.
대학교 개교 기념 마라톤 대회에서였다. 형은 2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기진맥진해서 그 자리에 주저앉는데, 하얀 수건으로 어깨를 감싸는 여대생이 있었다. 선이 누나였다. 누나는 형과 같은 국립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환하게 웃는 누나의 모습과 엷게 번지는 형의 미소가 묘하게 어울린 장면이 사진으로 남았다.
그 사진을 보았을 때였다. 아직도 미련이 남았냐며 물어본 적이 있었다. 선이 누나는 대회 행사진행요원일 뿐이었다며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고등학교 시절의 그 겨울밤, 울먹이던 형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학이란 곳에는 마주하는 여학생도 고교 시절보다 몇 배 많았다. 사귀기도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그중에는 선이 누나보다 더한 매력의 여학생이 없었다고 장담 못 한다. 그런데도 형은 다른 여학생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도덕적 결벽 같은 것이 마음 깊이 새겨져 있는 듯했다. 내가 여태껏 보아온 형의 모습에는 없었던 또 다른 면이었다.
선이 누나를 잊어버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을까. 형이 가진 모든 기력과 판단력, 폭넓은 포용력을 동원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선이 누나 생각을 지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턱댄 감정의 쏠림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형이 가진 이성의 억제력은 도도하게 흐르는 그리움의 홍수에 속수무책이었다. 형의 마음속에는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 그리움이 배후처럼 버티고 있음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화가가 자연 풍경을 화폭에 담을 때는 몇 가지 화법을 적용한다. 필요한 부분을 더하고 불필요한 부분은 생략한다. 어디까지나 인위적인 아름다움이 작품 속에 녹아 있다. 그래도 충분히 감동적이지만, 걸작이라 하지 않는다. 최고의 걸작은 자연을 가장 자연스럽게 그린 그림이다. 거기서 자연의 향기가 끊임없이 샘솟는다. 자연의 숨결이 느껴져야 걸작이란 칭송을 듣는다. 그리움도 걸작이 된 그림과 같다. 거기서 삶의 에너지가 끊임없이 분출한다.
우리는 늘 만나서 이야기하는 대상 너머에 진정으로 보고 싶은 누군가를 감춰두고 있다. 그 누군가는 밥을 먹거나 길을 걸을 때 문득 떠오른다. 이야기 도중에 생각나 이야기가 엉뚱하게 빗나가기도 한다. 이때는 감정의 변화를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거나 밝아지면 상대방으로부터 정신이 옳지 않다며 빈축을 살 수 있다. 형도 부지불식간에 선이 누나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때마다 찻잔 속의 고독으로 여기며 마음을 추슬렀다. 나에게도 몰래 표정 관리를 했던 것 같다.
형은 선이 누나라는 동굴에 들어가 동면했다. 암흑천지 속에서의 동면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기다림이나 욕망이란 욕망은 다 빠져나간 상태였지 싶다. 누가 와서 잡아가도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을 정도였으리라. 마음은 눈 오는 날의 새벽같이 그칠 것 없을 정도로 희고 적요했다. 동면은 죽은 상태가 아니다. 언제 깨어날지 모를 뿐이다.
형이 간암 진단을 받았을 때였다. 조카의 간을 이식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가족과 친척들은 당연히 간이식으로 소문난 종합병원에 입원하는 줄 알았으나, 형은 엉뚱하게도 국립대학병원에 입원했다. 그 대학병원 간이식 수술 경험은 다른 종합병원에 비해 초보 수준이었다. 실패할 확률이 높아 환자들이 선호하는 병원이 아니었다. 모두 어리둥절해 했지만, 사연을 아는 것은 나뿐이었다. 그 대학병원에는 선이 누나가 수간호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악성 베토벤은 음악으로 사랑하는 여인에게 다가갔다. 그는 젊은 시절 줄리에타 귀차르디라는 여인을 사랑했다고 한다. 그녀에게 청혼했으나 그녀 집안의 반대로 실패하고 만다. 결국 그녀는 다른 귀족 음악가와 결혼했다. 베토벤은 그녀의 결혼 소식을 듣고 자살하려고 유서까지 썼다. 몇 년 후 월광 소나타가 발표되었다. 1악장 분위기는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고 처연하다. 달빛 비치는 호수 위의 조각배 같다는 데서 월광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할 정도다.
월광 소나타 1악장은 그때 실연失戀의 감정을 표현한 곡이 아닐까. 그의 수많은 작품 중에 이토록 애절하게 작곡된 것은 없는 것이 이유다. 명곡의 탄생 이면에는 이처럼 슬픈 사랑의 사연이 녹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의 마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속으로 수많은 월광곡을 선이 누나에게 헌정했을 것만 같았다.
형은 선이 누나로 인해 그리움 외에도 고통을 함께 부여받았을 것이다. 그리움 쪽으로 향하면 할수록 고통도 따른다. 씨줄과 날줄이 얽혀 피륙이 만들어지듯 우리의 삶도 고통과 그리움으로 직조된다. 고통과 그리움으로 삶의 피륙을 짜는 사이에 세월이라는 청룡열차는 쇳소리를 내며 종착역으로 달려가는 것이리라.
우리는 우연히 세월의 청룡열차를 탔을 뿐이다. 그다음의 일은 다 정해져 있다. 마치 버스가 정류장에서 멈춰 섰다가 다음 정류장에 다시 멈추는 것처럼. 간암이라는 차표를 끊고 탔으니 어느 지점에 이르면 내려야 한다. 내리기 전까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차 안에서 멀그니 바깥 풍경이나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보는 것이 형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지 혹은 다른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지를 놓고 선택하는 정도의 자유만 있다.
형과 조카는 간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종합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날은 우리나라와 스페인 간 2002년 월드컵 8강전이 있는 6월의 어느 날이었다. 온 나라가 흥분으로 들떴다. 군중들의 환호와 자동차 경적으로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수술실만 정적 속에 묻혀 있었다. 수술이 시작되었다는 자막이 전광판에 떴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중환자실에서 심장 박동기에 매달린 형과 조카의 목숨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왜'라는 답도 없는 물음을 윷가락처럼 던져보며 나 혼자 지쳐갔다.
선이 누나는 형이 입원해 있는 병동과 떨어진 다른 병동에 근무하고 있었다. 형은 선이 누나에게 자신이 입원한 사실을 알리려 하지 않았다. 오가는 간호사에게 귀띔만 했어도 될 일이었지만, 병원 주위를 산책하며 회복에 신경 쓸 뿐이었다.
"여자는 많다. 세상 사람의 반은 여자다. 선이 누나도 여자일 뿐이다. 버스와 여자는 기다리면 또 온다. 떠난 여자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은 가버린 버스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오지 않을 줄 알면서 기다리다니."
이런 말로 선이 누나를 잊으라고 한다면 잊을 수 있을까. 세월이 흐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것을 두루 살피는 객관적 안목이 생기는 법이다. 과일이 익은 것과 같다. 그러나 익기 까지는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형은 눈앞의 선이 누나가 세계고 전부였다. 다른 것은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바로 앞만 바라보는 근시안적 마음이 사랑인가? 그 사랑도 세월 앞에서는 시들고 만다.
어느 날, 옛 추억의 그 사람을 만났다 하자. 그 시절의 아름다움이 털끝만치의 손상도 없이 그대로 남아 있을 리가 만무하다. 추억이 그려놓은 이미지가 한순간에 날아갈 수 있다. 순식간에 후회하는 마음이 가득 찰 것이다. 추억은 앨범 속에 들어 있는 오래된 사진처럼 그렇게 간직할 수밖에 없다.
나는 형이 선이 누나를 구태여 찾으려 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여고 시절의 단발머리 그 모습 그대로 간직하려는 형의 마음이 엿보였다. 앨범 속 사진처럼 이따금 선이 누나가 쓴 시집을 꺼내 보면서 그 시절로 조용히 돌아가 보았으리라. 멀어져 있다는 느낌은 한순간에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시집은 중년이 된 선이 누나가 틈틈이 쓴 시를 묶어 세상에 내놓은 것이었다. 누나의 친필 싸인이 없어 형이 서점에서 직접 구입한 것 같았다. 그 시집에는 형이 고등학교 시절 쓴 것이 틀림없는 시들이 몇 편 삽입되어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형은 시를 썼다. 각종 백일장에서 여러 번 입상한 경험도 있었다.
그 시절, 형이 사용하는 책상 위에는 두툼한 고무판 깔려 있었는데, 고무판 아래에 시 쓰인 종이가 가득 들어 있었다. 한 장 한 장 쌓이다 보니 고무판 가운데가 언덕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다. 나는 형 몰래 고무판을 들춰서 그중 몇 편 꺼내 읽곤 다시 덮어두었다. 형이 쓴 시를 훤히 외울 정도였기 때문에,. 나는 선이 누나의 시집에서 형의 시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시집은 수십 편의 시가 몇 개의 단락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형이 쓴 시는 시집 맨 첫 단락 '손 떨리던 시절' 편에 들어 있었다. 나는 그 시 중 '너'라는 제목의 시를 좋아했다.

내가 너에게로
네가 내게로
실눈 터지는 눈짓 머물기 전까지는
너와 나는 하찮은 풀이나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었다
차라리 그때가
별것 아닌 그 시절이
그리움이 무엇인지 아픔이 어떤 건지
천지간에 먹통이었던 그때가
세상에 없는 평화였다
좁쌀만 한
정말 먼지보다 작은 욕심이었던지
너를 들여앉히고부터
나는 왜 더욱 허기지는가
너를 기다리는가

형에게 황달 증세가 나타났다. 수술 경과가 좋다고 했지만, 눈의 흰자위가 노랗게 변해 있었다.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황달이 오면 간이식 수술은 실패한 것이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의료진이 무표정하게 오고 갔다. 입원실 벽 한 곳에는 황달을 시시각각으로 기록하는 기록표가 붙어 있었다. 그 표에는 형의 황달 상태가 고스란히 나타나 있었다. 일시적으로 내려간 적은 있으나 전반적으로 꾸준히 오른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퇴근길에 형의 입원실에 들렀다. 나는 누워있는 형에게 황달 수치가 조금씩 내려간다고 말했다. 듣고 있던 형은 눈을 스르르 감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병실을 지키던 조카와 치솟기만 하는 황달 수치에 대해 늘어지게 걱정한 뒤였다. 내 말은 근거 없는 말이 되어 병실에 메아리처럼 떠돌았다.
어색한 분위기를 지우려고 조카가 입을 열었다.
"어제 매일신문 기자가 아빠와 나를 취재하고 갔어요." 하며 오늘 일자 신문을 들어 보였다. 환자복을 입은 형과 조카가 침대에서 활짝 웃는 모습이었다. 당시로써는 간이식 수술이 드물었던 때라 기삿거리가 될 만도 했으나, 억장이 무너지고 기가 막혔다. 웃는 표정이 내게는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형은 눈알이 퀭하게 드러나 유난히 커 보였다. 환자복 바깥으로 어깨 쇄골이 앙상하게 튀어나왔다. 운동으로 단련된 근육질의 몸은 온데간데없었다. 뜬금없이 어린 시절 나를 다독이던 형의 모습이 떠올랐다.
읍네 중학교에 다녔던 형은 하모니카를 잘 불었다. 나는 3살 위의 형을 따라다니며 하모니카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르곤 했다. 잠시 하모니카 불기를 그만두기라도 하면, 생떼를 쓰곤 했다. 그럴 때마다 형은 하모니카 잡은 두 손을 오므렸다 펴면서 더 멋지게 불어주었다. 나는 감정이 한껏 고조되어 감미롭게 들리는 배음에 정신을 빼앗겼다. 까마득한 그때 일들이 당장 내 눈앞에 어른거렸다.
아마도 그때부터 내 삶 곳곳에 형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졌을까. 잠시라도 형이 곁에 없으면 허전했다. 차츰 형의 말이라면 무조건 옳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꼬리처럼 따라다니며 당연하게만 느껴지는 형의 언행을 받아먹고 자라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형을 우러러보게 되었다. 형이 내 앞길을 비춰줄 거야. 나는 그런 믿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내가 성년이 되어 바라보니, 형이 어딘지 모르게 허물어져 있었다. 학교에 대한 불만이 형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현실에 잘 적응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는지, 음주벽까지 생겼다. 나는 형의 중언부언하는 말투에서 거리감을 느꼈다. 무조건 따르며 우상처럼 여겼던 형에게서 흠모의 정이 눈 녹듯 녹아내렸다. 형과 나 사이에 틈이 생기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형의 교직 생활도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형은 학교 재단의 부당한 공금 유용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알고도 눈감는 동료 교사가 많았다. 부조리에 등 돌리는 현실을 견딜 수 없어 했다. 재단이 심지어 학생끼리 장난치다 깨뜨린 유리창 값까지 해당 학부모에게 청구했다. 파손비는 별도 예산이 편성되어 있어서 청구하지 말아야 하는 비용이었다. 형은 크게 항의했으나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없었다.
학부모 모임에서 교장 선생은 학생들을 교육 이념에 따라 성실히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강조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면 불량배가 될 겁니다."라며 학부모 대표와 여담을 나누었다.
깨진 유리창 값 받아내는 것도 전인교육이냐며 항의하는 학부모가 있다면 교장은 또다시 말을 돌려댔을 것이다.
"물건을 아껴야 한다는 의식교육 차원에서지요. 요새 아이들은 물건 귀한 줄 모르죠. 잃어버리면 도통 찾을 생각을 안 해요."
형은 학교라는 사회가 모순과 모순이 엉겨 붙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가식과 모순의 난립 속에 형 자신도 무너져 내렸다. 완전히 내려앉았더라면 그나마 견딜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따금 명치를 타고 오르는 수치심이 각혈하듯 쏟아졌다고 했다.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형은 학교에 사직서를 냈다. 몇 번의 반려가 있었지만 형의 주장이 워낙 완고해 사표는 결국 수리되고 말았다.
당장 생활이 어려웠다. 뭐라도 해야 할 처지에 놓인 형이 시작한 것은 일수놀이였다. 영세한 재래시장 장인들에게 목돈을 빌려주고 매일 이자를 합쳐 수금하는 일이었다. 일정한 직업 없이 놀고 있는 외사촌 동생이 부추긴 사업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시간이 갈수록 형의 돈을 떼먹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끝까지 추적해서 밀린 돈을 받아야 하는데도 그런 일은 하기 싫어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달아나기까지 했겠느냐."
두리뭉실한 일 처리에 화를 내는 나를 형은 이런 말로 오히려 나를 타일렀다.
하루는 형이 내 사무실로 찾아와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부담될 정도로 큰 금액이 아니었는데도 매몰차게 거절했다. 형은 괜한 말을 꺼내서 미안하다며 황급히 일어섰다. 그러더니 염려 말라고 하면서 내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형이 너무 무능해 보여서, 속이 끓었다. 형은 싸늘하게 식은 내 마음도 모른 채, 오히려 나를 염려하느라 쩔쩔맸다.
사무실을 빠져나가는 형은 한겨울인데도 여름용 코트를 입고 있었다. 영락없는 노숙자의 모습이었다. 카키색 코트는 마치 은박지를 이리저리 꾸겨놓은 것처럼 촘촘하게 접혀 있었다. 그 코트의 각진 틈 사이로 햇볕이 스며들자 코트가 물비늘처럼 반짝거렸다. 비참함이 아름답게 보일 때도 있다. 형의 몸은 온통 비극미悲劇美로 포장되었다.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 …. 형이 불어주던 하모니카 소리가 환청으로 들렸다. 찾아온 형의 등을 떠밀었지만, 결코 밀어낸 적 없는 형이 하모니카 소리로 다가왔다. 한여름 당산나무 아래 시원한 그늘이 보였다. 말뚝에 메여있는 황소가 게으른 눈으로 하모니카를 불고 있는 형을 바라보는 풍경까지 헛것처럼 나타났다.
나를 위해 하모니카를 불어주던 형이었지만, 나는 여태껏 어릴 적 하모니카 소리조차 까맣게 잊었다. 바르르 떨며 들리는 소리판의 울림이 내 마음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어린 나를 팔베개 해주던 버릇은 형이 군에 입대할 때까지 이어졌다. 형의 팔베개는 얼마나 편안한지 몰랐다. 나는 형의 팔베개 없이는 깊이 잠들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형은 나의 우상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 우상도 흔한 추억이라며 사소한 것들과 뭉뚱그려 내 무의식의 공간에 부려놓았다.
일수놀이 실패로 떠돌 수밖에 없었던 형은 바닥을 헤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이엠에프 시절이 다가오자, 더는 버틸 재간이 없어 얼굴 내밀만한 곳을 찾아다녔다. 나로부터 면박당한 형은 무슨 생각을 하며 돌아갔을까.
병원에서 급하게 연락이 왔다. 허겁지겁 달려갔다. 인사불성 된 형이 침대 위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의식이 돌아오는지 잠시 조용해지더니 눈을 뜨고 나를 올려다봤다. 그리고는 이내 눈을 감았다. 숨소리가 잦아들었다. 두 번 다시 눈을 뜨지 않았다.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고 이 세상을 하직했다.
형의 나이 53세였다. 사별이란 이렇게도 쉽게 이루어지는가. 형과 나 사이에 수만 가지 추억이 쌓여 있다. 그중에서 빛바랜 추억은 다시 선명하게 하고, 잊힌 것들은 의식의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싶었다. 그러다 보면 형의 옛 우상이 다시 나타나리라. 그러나 이제 와서 그런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형도 가버린 지금 모든 것이 공염불 같았다.
존재하는 것은 사라진다. 사라지지 않는 것은 없다. 어차피 무너질 모래탑을 땀 흘리며 쌓는 꼴이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위해 힘들게 노력하며 고통을 참고 견디는 걸까. 희망을 품어야 하고 달성해야 할 목표 몇 개쯤 가져야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다며 우리 스스로 최면을 거는가.
형이 최면을 건 대상은 선이 누나였다. 선이 누나에 대한 그리움은 호수처럼 깊고 아득했다. 그 아득함이 현실에서 부닥치는 무수한 고통을 잠재웠으리라. 퇴직 후, 온갖 역경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선이 누나라는 버팀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막을 횡단하는 여행자는 오아시스를 만나리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오아시스에는 우물이 있어 마음껏 타는 목을 축일 수 있다. 비로소 쇠잔해진 기력을 회복한다. 우리 역시 그리움으로 목을 축여 삶을 재충전한다. 여행자들이 오아시스를 꿈꾸는 것처럼 우리도 그리움을 찾아 헤맨다. 그리움은 오아시스 같은 것이다. 형의 오아시스는 선이 누나였다.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것처럼 가슴 저미는 상심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가 있다. 이때 멀리서 구원의 등불처럼 깜빡이며 메시지를 보낸다. 그리움이다. 그것이 다시 마음을 추스를 수 있도록 한다. 우리는 비로소 질곡에서 벗어난다. 팍팍한 현실을 초월할 힘은 그리움에서 나온다. 죽음이 다가온다 해도 두렵지 않은 것은 마음속에 그리움을 간직한 때다.
그리워하는 마음은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자라지도, 줄어들지도, 흩어지지도 않는다. 그 어떤 변화도 하지 않는다. 시간의 경과와도 관계없다. 그것은 해와 달처럼 불멸이다. 사라져 떠오르지 않는 기억들이야말로 진정 죽은 것이다. 기억할 수 있거나 회상되는 추억은 죽은 것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 있다. 서로 떨어져 있는 섬도 바닷물 아래서는 한 몸으로 연결되어 있다. 삶과 죽음도 마찬가지다. 시간을 초월한 영원성에서 보면 그것은 서로 이어져 있다. 독립적으로 영원히 갈라서는 것이 아니다. 선이 누나는 여기 있고 형은 저기 있을 따름이다.
형이 임종을 앞두고 얼핏 나를 지켜보던 그 짧은 순간이 떠올랐다.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이라도 기다렸다는 듯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언어 너머에 구체화하지 않는 말인 듯 우물거렸다. 결실도 하기 전 꽃봉오리 째 떨어진 자리. 그 빈자리에 남아 있는 웅성거림 같았다. 그것은 열매를 맺지 못해 앓는 신음이었다. 나는 그것이 선이 누나를 향한 가슴앓이처럼 느꼈다.
형은 그 가슴앓이에서 벗어나려고 술을 마시고 몸을 단련하며 미친 듯이 산을 탔다. 그 순간만은 마약에 취한 듯 모든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선이 누나가 근무하는 병원에 입원한 이유도 이와 같았다. 혹시라도 수술이 잘못되어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선이 누나라는 동굴에서 영면하리라. 꿈같은 일이 아니다. 환상도 아니다. 지극히 현실적이라고 형은 판단했을 수 있다.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도 선이 누나를 생각하는 일이 어쩌면 운명 같다. 운명은 지우거나 바꿀 수 없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디엔에이 같아서, 대체할 수도 없다. 모든 것은 이미 주어진 것이다. 거기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다. 그 테두리를 벗어난다면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우환을 당할 뿐이다. 좋든 싫든 주어진 운명의 그물 안에서 살아야 한다.
그리워하는 마음이 운명인 한, 우리는 그런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
"고국에서 기다리는 애인을 떠올려."
전장에서 죽어가는 병사에게 옆에 있던 전우가 한 말이다. 부상당해 죽어가는 병사에게서 마지막 삶의 의지를 끄집어내기 위해서였다. 병사는 기적적으로 감은 눈을 뜨고 흐릿하게 웃어 보였다. 그 병사의 눈에 무엇이 보였을까. 사랑하는 사람과의 즐거웠던 한때였을 것이다. 병사의 마음은 이미 극도로 밀려드는 공포와 고통에서 벗어나 그녀 곁에 가 있었으리라. 그리움이란 무덤 저 너머에까지 간직하고 가는 영혼일지도 모른다.
베토벤이 죽자 그의 책상 서랍에서 의문의 편지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수신인 불명의 편지에는 어떤 여인에게 고백하는 내용의 애절한 글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의 가슴에만 묻어두려고 일부러 수신인을 밝히지 않았다.
붙여지지 않은 편지는 그 자신을 위해 쓴 연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허무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친 듯이 술을 마시거나 난폭한 행동으로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파괴적으로 변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구해야 했다. 그것은 자신을 달래기 위해 쓴 편지였다는 생각이 든다.
선이 누나를 향해 쓴 형의 편지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어느 집 섬돌 아래에서 부서져 내리는 달빛에 녹아 있을 것이다. 오래 가보지 못한 시골집 방문 문풍지에 남아 바람이 불 때마다 파르르 떨며 울고 있을지 모른다. 혹은 고요한 밤 풀벌레 울음소리에 가뭇없이 흘러나올지도. 이것이 선이 누나에게 쓴 형의 편지일 것이다.
선산 무덤을 벌초할 때였다. 형 무덤 아래에 석등 하나가 있었다. 그 속에 하얀 종이가 보였다. 선이 누나가 막 꼴인 하는 형을 하얀 타올로 감싸는 장면의 사진이었다. 형의 유물을 불태울 때 불에 타 재가 된 바로 그 사진이 틀림없었다. 이럴 수가!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사이 누가 여기를 왔다 간 것일까. 이렇게 멀고 험한 산속. 아니면 아직도 형은 저세상으로 가지 못하고 배회하는 중인가. 꺼낸 사진에 급하게 불을 붙였다.
늦가을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다. 좀 떨어진 곳에서 예초기 소리가 앵앵거렸다. 그 소리가 나를 다그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잠시 꿈속에 있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졌다. 벌초하는 친척들의 말소리, 눈앞에 드러난 떡갈나무와 길게 자란 풀을 보면서 나는 꿈 밖으로 튀어나오려고 했다.
어째서 불에 태운 사진을 또다시 태울 수 있는가. 흘러간 시간과 현재가 겹쳐졌다. 어릴 적 보았던 형의 시가 선이 누나의 시집 속에 들어 있는 것은 또 무슨 까닭인가. 선이 누나라는 동굴에 들어가 동면하는 형을 떠올렸다. 이 모든 징조가 나를 덮어 눌렀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불가사의한 일은 또 있었다.
선이 누나의 사위는 한의사였다. 그가 내 사무실 좀 떨어진 곳에서 개업을 하고 있었다. 나는 고향의 누군가로부터 그가 선이 누나의 사위라는 사실을 전해 듣고 있었지만, 몇 년째 그 병원 앞을 지나다니기만 했다. 몸에 탈이라도 나면 그때 들러볼 참이었다.
형이 세상을 떠나자 그 병원이 예사롭지 않게 보이기 시작했다. 왠지 무단히 지나칠 수 없었다. 어느 날, 나는 불문곡직하고 그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 조금 후에 선이 누나의 사위인 젊은 의사가 나타났다. 나는 그의 장모님 되는 분과 같은 고향 사람이라고 나를 소개했다. 내 이름과 살았던 마을 이름도 알려 주었다. 고향과 인연이 있는 곳이라 찾아왔다는 말도 곁들였다. 그가 반색하며 내게 음료수를 권했다.
나는 그에게 선이 누나의 안부를 물었다. 선이 누나의 아들 근황도 물어보았다. 형이 공부를 잘한다고 자랑하던 그 아들이었다. △△처남은 목사가 되어 몇 년 전 미국에 이민을 갔다고 했다. △△이라고? 순간 내 입에서 형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목사가 된 선이 누나의 아들 이름이 형의 이름과 똑같은 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 긴장되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몇 년 만에 불러보는 형의 이름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 불러서 안 될 이름 같았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의 얼굴을 더는 쳐다볼 수 없었다. 건성으로 몇 마디 말을 더 나눈 후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장모님에게 내 안부를 전해달라고 말했다. 형의 죽음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연락처라도 남겨 달라는 그의 말이 내 등 뒤에서 들렸다.
형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이 세상에서 형은 가진 것 대부분을 잃었다. 직업과 재물, 우상의 몰락. 형의 삶은 세상이란 척박한 토양에 뿌리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선이 누나와의 사랑마저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 사랑은 정말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 되었다. 모든 것은 여전히 진행 중일 뿐이었다.

최신 기사